10월7일까지 서울 강남구 오페라 갤러리

열한 살 때 아버지에게 성폭행당했다. 소꿉친구와 일찍 결혼해 자신의 가족을 꾸렸으나, 가부장제와 사회적 억압에 대한 답답함, 친족성폭력의 상처로 수년간 고통받았다. 정신병원에서 처음으로 접한 그림은 그가 세상으로 다시 힘차게 나아가는 통로이자 위로가 됐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Phalle, 1930-2002)은 그렇게 독창적이고 영향력 있는 예술가로 거듭났다. 풍만한 여성을 대담한 색채로 표현한 조각 작품, ‘나나’(Nanas) 연작으로 유명한 프랑스계 미국인 예술가다. ‘나나’는 과거 프랑스에서 여성을 속되게 부르던 말인데, 생팔의 ‘나나’들은 기쁨, 힘, 해방의 상징으로 남았다.



생팔의 주요 작품들이 서울에 왔다. 오페라 갤러리가 연 2인전 ‘새로운 출발, 아이의 눈으로: 카렐 아펠 & 니키 드 생팔’이다. 생팔은 폴리에스터, 레진, 일상에서 발견된 오브제 등 다양한 재료를 사용해 뱀, 새, 여성 등 다양한 형상을 조각으로 표현했다.
새의 머리를 지닌 거대한 여성 같은 생팔의 ‘괴물’들은 수동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상을 거부하는 작가의 메시지를 명료하게 전달한다. 그런가 하면 임신한 여성의 이미지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나나’ 시리즈는 여성의 긍정적인 힘과 생명력을 보여주는 듯하다. 전시장에선 조각 외에도 연, 의자 등 다양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네 명의 각기 다른 인종의 나나를 표현한 ‘분수대의 네 나나 La Fontaine aux 4 Nanas, les quatre baigneuses’도 시선을 끈다.


무한한 상상력과 인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후기 작품 ‘하얀 나무 White Tree’도 인상적이다. 모든 신화의 중심이자, 선과 악이 나뉘는 시작점인 ‘생명의 나무’를 표현했다. 나무 위 해골, 거미, 괴생물체들은 각각 덧없이 짧은 찰나의 존재와 시간의 흐름, 작가의 어머니와 인간 존재의 악함을 상징한다.
전시장에선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조각가, 코브라(CoBrA) 운동의 창시자인 카렐 아펠(Karel Appel, 1921-2006)의 작품도 감상할 수 있다. 전통적인 예술 규범을 벗어나 화려한 색채, 두꺼운 붓 터치, 어린이의 순박한 감성이 담긴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10월7일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