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여성곤충학자의 '곤충·책'

곤충 변태과정 밝혀 생태학 서막 열어

수리남 원시림 식물·곤충 생태 관찰기록, 글 동판화로 남겨

바로크시대 이후 300년간 판 거듭하며 '걸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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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이 지배하던 17세기 바로크 시대. 막 과학적 성향이 태동하기 시작한 당시 사람들은 애벌레, 구더기, 파리 같은 것들 속에는 작은 악마가 살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애벌레나 구더기는 더러운 오물에서 나온 것이라 여겼으며 나비를 비롯한 곤충들이 그것들로부터 변태의 과정을 거쳐 생겨나리라고는 꿈에도 짐작 못한 미개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곤충·책'(마리아 지빌라 메리안 지음/윤효진 옮김/양문/1만2000원)은 바로 그 시대를 살았던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이라는 독일의 여성과학자이자 화가가 남긴 역작 '수리남 곤충의 변태'의 일부를 옮긴 책이다. 이 책에는 수리남에 서식하는 식물과 이 식물을 먹고사는 유충과 벌레의 일생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묘사한 그림과 기록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이 책의 저자 메리안은 쉰이 넘은 나이에 딸 헬레나를 데리고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수리남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식민지 지배자들의 편견, 살인적 기후, 말라리아 등 남성들도 견뎌내기 힘든 악조건에서 2년여 동안 다양한 식물과 곤충의 변태를 관찰한 후 수백 점의 스케치와 표본을 만들고 동판화 작업을 거쳐 마침내 1705년 수리남 곤충과 식물의 신비를 담은 동판화집을 완성했다. 그 기록이 바로 300년간 판을 거듭하며 최고의 걸작으로 남은 '수리남 곤충의 변태'다. 일부 남성 과학자들은 메리안의 관찰기록이 거짓이라고 비난했지만 후일 곤충과 식물의 분류체계가 확립되면서 메리안이 옳았음이 입증됐다.

메리안은 여성이 불평등한 대우를 받던 바로크시대에 유럽의 대표적 동판화가 마테우스의 서출로 태어나 '후처의 자식'과 '여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열세살의 소녀 메리안은 곤충과 식물을 관찰하는 일에서 작은 기쁨을 찾았고 곤충의 변태를 직접 그림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어린 소녀의 관찰은 누에는 성체가 되면서 안쪽부터 남김없이 먹힌 후 빈 껍데기만 남는다는 사실과 보기 흉한 단조로운 형태의 나비들은 야간활동을 하는 반면 화려한 색깔의 나비들은 낮에 날아다닌다는 사실도 입증해냈다. 하지만 그의 자연에 대한 애정어린 관심은 어머니에게는 혐오감과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사회적으로 '마녀'에 몰릴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하지만 메리안은 당시 사회를 지배하고 있던 보편적인 인식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학문적 길을 묵묵히 찾아갔다.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르렀던 17세기 고학적으로 무지몽매한 시대에 독일 곤충학의 새로운 장을 개척했던 메리안의 얼굴은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 독일의 500마르크(약 30만원) 지폐를 장식했고 그가 발견한 나비들 중 한 마리에는 그의 이름을 딴 'Inga Merianae'라는 학명이 명명됐다.

전기작가 프리드리히 칼 고트롭 히르시는 메리안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역사가 남긴 수많은 인물 중에서 지속적인 명성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한 몸에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여성이 있다면 그는, 그 누구보다 마리아 지빌라 메리안일 것이다”

한정림 기자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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