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수도특별법 위헌판결을 보면서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경국대전'이 판결근거 유감

지금 정국은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헌재의 위헌판결로 시끌시끌하다. 특별법이 결정될 때만 해도 조용히 여야 합의로 결정되었던 안이 17대 국회 들어오면서 논란의 대상이 되더니 급기야는 헌재에까지 가서 특별법이 과정에 있어 '위헌'이라고 결정이 나고 만 것이다. 이러니 신행정 수도지를 정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들을 진행하고 있던 정부나 지역주민들에게는 큰 충격이고 나아가서는 정부의 공신력이나 의회의 역할을 흔드는 중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여러 가지를 고려치 않고 성급하게 일을 추진했던 정부도 원망스럽고 충청도 지역민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여러 가지 착잡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 중에서도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헌법재판소 판결의 근거이다. 헌재의 판결문을 보면 특별법을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근거로 관습헌법과 '경국대전'을 들고 있다. 즉, 서울이 관습헌법으로 우리에게 수도로 인식되어 왔다는 것과 그 출처는 '경국대전'이라는 것이다. 많은 국민이 현대의 법 상식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판결의 근거를 보며 우리가 무식해서 이런가 싶기도 했지만, 한다 하는 헌법학자들도 이에 대해 이견을 내놓고 있으니 꼭 국민들의 무식이 몰이해의 원인은 아닌 듯하다. 혹 정치적인 판단에 억지로 갖다 붙인 근거는 아니었는지.

'관습'이라는 말은 정말로 우리 여성들이 싫어하는 말이다. 보수적인 남성들이 여성의 행동에 대해 따지다가 할 말이 없으면 내놓는 근거가 관습이다. 만약 이렇게 조선시대의 경국대전이나 관습을 우리 판단의 근거로 삼게 된다면 조선시대의 관습에 거스르고 있는 수많은 우리의 행동들은 어떻게 하며, 새로운 법 제정들은 어떻게 할까. 이 판결이 있고난 후 어느 모임에 가서 “이렇게 남자, 여자가 모여서 밥 먹고 이야기 하는 것은 관습헌법에 어긋나지 않습니까?”라는 농담을 던졌지만, 이는 농담이 아니라 실제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이미 호주제 폐지나 성매매방지법이 우리의 오래된 관습에 위배된다고 위헌제소를 하겠다고 벼르는 보수그룹들이 있다고 한다. 잘못하면 세상은 거꾸로 가게 생겼다.

여성 관련법 퇴보할까 우려

헌재는 과연 이러한 혼란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일개 판사의 판결도 아니고 헌법학자의 해석도 아닌 우리 법의 최고 판단기구인 헌법재판소라면 좀더 신중하고 상식적이며 시대정신에 알맞은 판결을 내렸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헌법재판소의 구성원들이 적합하게 국민의 법 상식을 대표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도 따져보아야 한다. 소수의견을 낸 전효숙재판관의 의견을 보며 그나마 이런 헌재재판관이 한 명이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또 이 위헌판결을 듣고 천진난만(?)하게 박수치며 좋아하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태도는 그야말로 우리의 정치, 정치인에 대한 불신을 고조시킨다. 이 특별법은 지난 회기에 국회에서 여야합의로 결정을 본 법안으로 헌재의 위헌판결은 의회의 결정을 하루아침에 뒤엎는 것이다. 아무리 16대에 결정한 사안이라 하더라도 자신들이 자의적으로 결정한 법안이 잘못되었다고 결정하는데 승리라며 환호하는 모습은 정말 우리 정치에서 의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그들이 내리는 결정의 근거는 어디에 있는지 회의를 품게 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혹은 그룹이 제기하는 문제면 그 내용에 관계없이, 또는 이전에 내가 그 사안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취했는지 관계없이 반대한다라는 지극히 인격과 결부된 정치적 판단은 도저히 21세기를 사는 현대 정치인들의 행태라고 보기는 어렵다.

서울·지방 다 잘사는 대안 찾아야

행정수도 이전은 그 사안이 정치적으로 변질되고 양쪽에서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바람에 헌재의 위헌판결까지 받고 이제는 거의 실현이 불가능하게 되었지만 사실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위한 중요한 시도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70년대부터 끊임없이 이 문제가 제기되었고 그때마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또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이루어질 수 없었던 사안이기도 하다.

위헌 판결이 있고난 후 어느 서울 시민이 신행정수도특별법이 위헌으로 판결나서 환영한다며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던진 말이 “그래도 분권은 해야지요”다. 그런데 무슨 수로? 서울 집값도 떨어뜨리지 않고, 모든 중요한 기관은 서울이나 수도권에 다 그대로 있어야 하고 조금도 손해는 볼 수 없으면서 무슨 수로 분권을 이룩할 수 있겠는가. 온 국민이 전부 서울로 모여들고 끊임없이 지금과 같은 개발이 계속되어서 드디어 인간이 도저히 살아갈 수 없는 도시가 되었을 때나 분권은 가능할는지. 이제 땅값, 집값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서 서울사람들의 삶의 질, 지방사람들의 삶의 질을 근거로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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