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앞에 정신분열증 앓는 사회
'시험'앞에 정신분열증 앓는 사회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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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시험과 성적이라는 말과 제도를 두고 우리가 벌이고 있는 야단법석을 보면 우리는 사회 전체가 정신분열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생긴다. 대학 진학이나 각종의 취업시험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공부란 곧 시험 준비이고 시험 준비는 시험문제 푸는 훈련과 동일시된다. 반면에 하급 학교 교육에서는 시험은 아예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며 전교조는 교육정책 수립에 필요한 자료를 얻기 위해 교육부가 전국의 초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력측정 시험을 실시하는 것조차 반대하고 있다. 우리의 대입 신입생 선발제도가 파행을 거듭하는 이유도 시험에 대한 이런 분열증적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어린이들을 시험에서 오는 중압감에 시달리게 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시험 없이 교육이 가능한가. 시험은 반드시 반교육적 부작용을 낳게 마련인가?



학업수준 높을수록 평가 불가피



시험의 핵심은 교육효과의 측정에 있다. 학생들이 배운 것을 얼마나 소화해 냈는가를 알기 위해 시험이 필요한 것이며 그 결과를 토대로 교사는 가르칠 내용과 가르치는 방법을 조정한다. 시험은 또한 학생들에게 공부를 독려하는 데 결정적 효과를 발휘한다. 하지만 그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효과이다. 제대로 된 교육이라면 학생들은 배우는 내용이 재미있어서, 또는 자기에게 필요한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공부를 하는 것이고 성적은 학생들보다 교사나 부모들이 더 큰 관심을 가지는 문제이다. 시험의 내용이나 수준, 성적 평가 방법은 모두 교육과정을 통해 학년별, 학과목별로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가에 따라 결정되어야 한다. 교육목표에 대한 고려 과정에서 무시험 평가나 성취도의 절대 수준이 아니라 노력을 통해 크게 성적을 향상시킨 학생들을 표창하는 방법도 채택할 수 있지만, 학업의 수준이 높아질수록 필답고사의 성적으로 평가하는 것이 불가피해진다.



시험과 성적평가 제도의 마지막 기능이 진학 또는 사회진입을 위한 경쟁 과정에서 전형에 필요한 자료로 활용되는 것이다. 이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피동적 기능으로서 그 자료를 어떻게 활용하는 가는 해당 대학이나 고용기관의 재량에 맡길 일이며 교육과정에 맞추어 고안되어야 하는 시험의 내용이나 성적 평가 방식이 그 용도에 따라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



시험 취지는 스포츠맨십과 같다



우리나라에서 시험과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과 불신이 동시에 심해진 것은 교육정책 결정과 집행 과정에서 시험제도가 가지는 여러 가지 기능들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집혀 선발자료 기능이 그 전부인 듯한 착각이 일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학부모들의 욕심과 허영, 그리고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 부족이 큰 몫을 해왔음을 무시할 수 없다.



시험의 본래 취지가 산다면 그것의 교육적 효과는 양궁이나 골프와 같이 개인의 역량에 따라 승패가 결정되는 스포츠 경기와 다를 것이 없다. 치열한 경쟁을 위한 훈련과 싸움은 궁극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이지 남을 의식한 잔꾀 부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력에 따라 여럿이 만점을 받을 수도 있고 성적 차등이 심하게 벌어질 수도 있다. 같이 훈련받는 동료들은 경우에 따라 경쟁자가 될 수도 있고 같은 팀의 동료가 될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는 소수점 차이로 등수가 매겨지지만 투명한 게임법칙에 따라 운영되는 심판제도의 결과를 탓하는 사람은 없다. 흠모에 기초한 경쟁을 하는 동안 팀 전체의 실력과 스포츠 자체가 발전한다.



변별력과 교육생산·공정성 비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정규 교육과정과 별도로 돌아가는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제도, 학부형들의 아우성에 따라 해마다 시험의 난이도를 조정하고 출제 취지나 경향을 미리 발표하는 관행, 객관식이니 주관식이니, 필답이니 논술이니, 시험의 형식을 놓고 벌이는 소모적 논쟁, 시험 성적은 부유층 자녀들에게만 유리하므로 전국적으로 성적이 비교되는 시험은 금물이라는 주장 등, 이런 것들은 모두 공부는 기본적으로 자기와의 싸움이며 진정한 실력은 어떤 방법으로 측정해도 언젠가는 드러나서 삶의 동력이 되게 마련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망각한데서 오는 비생산적 착각들이다. 부잣집 자녀들이라고 다 성적이 좋고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일찍이 터득한 가난한 시골 출신이라고 깊이 있게 실력을 측정하는 시험에 불리할 것인가. 고등학교 졸업생의 성취도를 측정하는 시험은 변별력이 높을수록 교육적으로 생산적이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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