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파공작원, 최고의 문명교류사학자, 민족주의자의 인생고백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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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 공작원 '무함마드 깐수'로 유명한 '동서문명교류사'와 '아랍 이슬람학'의 개척자 정수일 박사가 96년 체포된 뒤 2000년 8월 석방될 때까지 아내에게 보낸 옥중편지 90여편을 묶은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창비)가 출간됐다.

이 책에는 일제의 압박을 피해 이주한 유민의 후손으로 태어나 연변에서 일제강점기를 보내고 광복 후 중국의 외교관으로 봉직하다 북녘으로 환국, 급기야 남녘으로 '수의환향'한 저자의 복잡다단한 인생과 학자로서의 포부 및 인생관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리고 체포될 때까지 그를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깊은 아랍계 필리핀인으로 알았던 그의 아내에게 보내는 인생고백서이자 스스로의 삶에 대한 일종의 중간결산서다.

중국에서 25년, 북한에서 15년, 해외에서 10년, 남한에서 12년을 살아온 자신의 드라마틱한 인생여정을 뒤돌아보는 첫 걸음은 학문인생을 정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문명교류학'의 일인자답게 옥방을 연구실 삼아 문명교류학의 핵심적 이론의 기초인 '실크로드학'을 구상하고 문명교류사에 관한 개설서를 집필한다.

우리 겨레의 대외교류사를 연구하는 것이 바로 '시대의 소명에 따라 지성의 양식으로 겨레에 헌신한다'는 삶의 화두의 발현이라는 것과 혜초를 비롯한 선현들의 진취적인 '세계정신'을 밝히는 작업을 (투옥으로 인해) 마무리 짓지 못해 안타깝다는 심경도 고백한다.

'수인의 시간은 정지된 시간'이란 말은 그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편지 곳곳에서 일각을 천금으로 여기고 시간을 아껴 연구에 몰두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저자 스스로 이를 두고 '시간을 무자비하게 혹사했다'고 회고하기에 이른다.

이밖에도 체포 당시 화제가 됐던 동양어 7종(한국어, 일본어, 중국어, 아랍어, 페르시아어, 말레이어, 타갈로그어)과 서양어 5종(러시아어,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에스파니아어) 등 총 12개 언어를 섭렵하게 된 경위도 그의 학문적 발자취와 연관해 상세히 밝히고 있다.

중국 외교부 시절 총리가문 여인과 불발로 끝난 러브스토리와 같은 조선족으로 중국정치협상회 부주석에까지 오른 조남기씨의 한국방문에 관한 단상, 중국의 역사학자 손진기와 논쟁을 벌인 일화 등이 실려 있다.

저자는 편지 말미에서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준 아내에 대해 “인생의 반려자이며 후견인”이라며 “평화와 행복을 짜는 사람이자 인도자”라고 감사의 마음을 적었다.

한정림 기자ub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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