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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파이'는 태어날 때부터 '환영받지 못한 아기'였다. 대를 이을 아들을 간절히 원하는 족장 집안, 엄마는 출산 도중 쌍둥이 오빠와 함께 숨을 거두고 여자아이인 파이만 살아남은 것. 아빠는 이 때의 충격으로 집을 떠나고, 파이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산다.

전설에 따르면 파이의 조상은 먼 곳에서 고래의 등을 타고 이 바닷가 마을에 온 '파이키아'. 자전거 앞자리에 손녀를 태우고 달리는 할아버지는 사랑과 정이 넘쳐나지만 위대한 조상의 대를 잇지 못한다는 죄책감과 절망으로 '내겐 파이가 필요 없다'고 거침없이 내뱉기도 한다.

그래도 파이는 할아버지를 사랑한다. 이해하려 애쓴다. 할아버지는 마을의 장남들을 모아 지도자 훈련을 시작하고, 그 자리에서 파이는 바깥으로 쫓겨난다. 여자니까. 창 밖에서 몰래 듣고 배우며 파이는 뛰어난 능력과 노력으로 남자아이들이 해내지 못한 지도자의 통과의례를 거뜬히 넘어선다. 물론 할아버지 모르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바닷가에 고래 떼가 밀려와 죽어 가는 일이 벌어지고 마을 사람들은 수호신인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려 애쓰지만 역부족이다. 이 때 파이가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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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영화를 보며 세 번 울었다. 잠시 다니러 온 아빠가, 할아버지로부터 '필요 없다'는 말을 들은 딸을 위로하며 잃어버린 아내와 아들, 족장 가문의 장남으로 져야 했던 짐을 이야기하며 울 때 함께 울었다. '환영받는 아기'로 태어났을 아빠와 '환영받지 못한 아기'로 태어난 딸. 마주 앉아 울 수밖에 없는 그들의 상처가 몹시 아팠다. 또 한 번은 파이를 아빠한테 보내기로 하고 작별 인사를 하는 할아버지 얼굴 때문이었다. 모자란 것 없는 손녀지만 남자가 아니기에 내칠 수밖에 없는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가슴은 눈물로 넘쳐났을 터, 그래도 아무렇지도 않은 척 돌아선다. 할아버지 대신 객석에 앉은 내가 운다.

마지막은 파이가 사랑하는 할아버지께 바치는 웅변을 할 때였다. 여럿이 훈련을 받으면 지도자가 길을 잃을 때 도움이 되고 우리의 힘도 강해질텐데 왜 나는 안되느냐고, 조상 '파이키아'도 분명 길을 잃었던 적이 있었을 거라며 항변하는 파이.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되는 여자,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넘어설 수 없는 벽,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울었고 또 울고 있을까.

고래 등에 올라탄 파이는 “가자!”고 속삭인다. 결코 큰 소리로 외치지 않았으며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오기나 반항, 무모함이 아닌 사랑이었다.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 부족에 대한 사랑, 오래 전 이 땅에 뿌리를 내린 선조에 대한 사랑이었다.

뉴질랜드 특유의 구음(口音)을 들으며 나는 '환영받지 못한 아기'로 태어난 여자들을 생각했다. 파이는 어린아이지만 자기가 여자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통찰력을 지녔기에, 목숨을 걸고 고래 등에 올라타 사랑을 보여주었고 부족을 구할 수 있었던 것. 내 둘째딸도 영화 속 파이와 같은 열두 살, 영화 이야기를 빨리 해주고 싶은 탓에 집에 오는 길이 그렇게 더딜 수가 없었다.

(원제 Whale Rider, 2002 / 감독 니키 카로 / 출연 케이샤 캐슬 휴즈, 라위리 파라텐느, 빅키 홍튼, 클리프 커티스, 그랜트 로아 등)

유경 사회복지사

treeapp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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