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 유연성, 관용, 대안공동체'를 설정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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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신효인>

지난 5월 초 여성신문에선 '가정의 달' 특집기획의 주제를 남성이 아닌 여성 주도 하에 이루어질 가족의 해체와 재편을 진단, 전망해보는 '신모권 사회'로 잡았었다.

'가족'의 라틴어 어원은 '한 남자의 소유물로 (그 남자가) 마음대로 힘을 휘두를 수 있는 모든 노예들'을 뜻한다. 가족이란 단어 자체를 현재 혹은 미래 의미에 맞게 새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은 힘들겠지만 시대와 인식의 변화에 따라 가족 어원 자체의 의미는 이미 사문화됐음은 너무나 분명하고, 어원에 따른 가족구도 역시 해체되고 있음은 확연하다. 그러나 아직 가족 재편구도는 가능성의 윤곽만 드러내 보일 뿐이다. 이 '과정'의 접점에 착안해 기존 가족구도를 완전히 뒤집어 보는 역발상으로, 여성이 중심이 돼 가족재편을 이끌어가는 '신모권'을 새로운 키워드로 설정했고, 그 참신함으로 많은 주목을 받았었다.

이제 여성신문은 창간 16주년과 지령 800호를 앞두고 연속 특집기획 3회 중 첫 시리즈를 다시 '가족'으로 택했다. 왜일까?

2004년 10월 현재 한국사회에서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여성 이슈의 가장 큰 부분 중 하나는 바로 가족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정책 대상으로도 여성과 묶인 가족이 구체적으로 떠오르고 있다. 가족만큼 다양한 화두와 담론이 가능한 이슈도 흔치 않기에 기존 담론과는 차별화되는 새로운 담론을 생산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도 솔직히 적지 않았고, 그만큼 무모한(?) 용기를 빌려야 하는 시도이기도 했다. 사실, 전문가들조차도 지금 쏟아지고 있는 가족 현상과 담론 분석에만 매달리기에도 벅찬 일인데, 이처럼 사회 변화가 광속도로 진행돼가고 있는 시점에서 '가족'처럼 민감한 이슈에 대해 30년 후를 전망한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기도 하다.

이번에 여성신문이 성찰하게 될 한국사회의 가족 자화상은 현재의 2030세대가 중·장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접어들 30년 후의 비전이다. 그 때쯤 되면 현재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저출산율, 고령화, 청년실업, 만혼, 비혼, 재혼 등의 문제에 동성애, 공동체, 국제결혼 등 아직은 수면 위로 뚜렷이 떠오르지 않은 요소들이 겹쳐 새롭고 다양한 가족 형태와 라이프 스타일이 연착륙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는 이 새로운 가족군의 키워드를 '다양성, 유연성, 관용, 대안공동체'로 잡았다.

미래학자들은 디지털 사회의 개화와 함께 등장한 '디지털 노마드(유목인)'를 들어 21세기를 (민족과 국가를 뛰어넘는) '신유목민 시대'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최대 특징을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유동성'과 '유연성'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신유목인시대 가족은 첨단 과학기술과 정보통신으로 소외되는 무력한 단위가 아니라, 관심과 의지를 가지고 이를 적극 활용한 네트워크로 공동체적 유대감을 다시 회복해가는 역동적 단위가 될 것이라 읽어내고 있다. 이때 '박애'와 '관용'이야말로 이 새 시대를 열어가는 데 등대가 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여성신문이 미래 가족 비전으로 설정한 키워드와도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다.

편집국 일부에선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등 미래 가상소설에서처럼 “과연 30년 후 '가족'이란 단위가 존재하기나 할까?”란 회의를 표하기도 했지만, 가족의 미래에 대한 상상은 묵직하면서도 역시 즐거운 작업이란 점엔 이의가 없었다.

(특집기획은 현재의 상황과 자료를 토대로 각 분야 전문가들의 조언에 기자들의 상상력을 빌려 구성됐음을 밝힌다)

박이은경 편집국장ple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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