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여성 최초 국내 공식경기 참가

나화린 선수 ⓒ뉴시스·여성신문
나화린 선수 ⓒ뉴시스·여성신문

사이클 나화린(37·철원) 선수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한 트랜스젠더 여성이다. 이달 국내 공식 경기에 트랜스젠더 선수 최초로 공개 참가했다. “논란이 되고 싶었다”, “(트랜스젠더의) 존재를 알리고 싶다”고 당당히 밝혔다. 스포츠계의 굳건한 성별 이분법에 도전하는 파격이다.

사실 한국 엘리트 스포츠 관련 규정엔 트랜스젠더 관련 내용이 없다. 제대로 논의가 이뤄진 적도 없다. 나 선수가 쏘아올린 질문이 소모적인 ‘공정성’ 논란으로 끝나선 안 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트랜스젠더 선수의 스포츠 참가가 공정한가의 문제는 과학·생물학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사회가 얼마나 소수자 포용적인가의 문제다. 

① 트랜스젠더 선수는 출전할 수 없다?
국내 공식경기 공개 참가 첫 사례
2관왕 차지...전국체전 출전권 획득

나 선수는 2022년 10월 성전환 수술을 했다. 어릴 때부터 여자가 되고 싶었고 36년을 기다려 독립할 기반을 마련한 후 병원을 찾았다. 지난 4월 법원 허가를 받아 법적으로도 여성이다. 강원도체육회가 체전 참여 자격을 제한하지 않아 여자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다. 결과는 2관왕. 나 선수는 지난 3일 강원 양양군 사이클경기장에서 열린 제58회 강원도민체전 여자일반1부 경륜 경기와 이튿날 여자일반1부 스크래치 경기에서 우승했다. 오는 10월 전남 목포에서 개최되는 전국체전 출전권도 따냈다.

출전목표는 “논란이 되는 것”이었다. 1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그는 “내가 상을 받으면 대중의 공감과 인정을 받지 못하고 결국 명예로울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며 “하지만 남자였다가 여자인 내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을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첫 경기 직후 3일 연합뉴스 인터뷰에서도 “나의 출전으로 상대 선수들이 기권하면 어떡할까 하는 걱정에 긴장해 2시간밖에 못 잤다”면서도 “논란을 만들고자 출전을 결심했지만, 자전거를 타면서 운동 자체가 다시 즐거워졌다. 모든 경기에 가장 높은 곳까지 가고 싶다”고 밝혔다.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 선언도 이어졌다. “한국 스포츠계가 얼마나 성소수자 집단에 보수적이고 폐쇄적인지는 나화린 선수가 더 잘 아시리라 생각한다. 낙인과 문턱을 함께 넘어섰으면 좋겠다”(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나 선수는 트랜스여성이자 한 명의 사이클 선수로서 한국 사회, 특히 스포츠 영역에서 공고한 성별이분법에 커다란 물음표를 던졌다”(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트랜스젠더도 삶의 모든 영역에서 동등한 권리를 누리고 참여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공고한 성별이분법에 균열을 내고 기꺼이 논란을 만들어 새로운 길을 내는 나 선수의 질주를 응원한다.”(한국여성민우회)

‘트랜스여성의 여성부 경기 출전은 ‘공정’한가’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트랜스젠더 여성 나화린 선수. 사진=채널A 뉴스 캡쳐
‘트랜스여성의 여성부 경기 출전은 ‘공정’한가’에 대한 논쟁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트랜스젠더 여성 나화린 선수. 사진=채널A 뉴스 캡쳐

② 트랜스여성의 여성부 출전, ‘공정’한가
“생물학적 남성이니 분리·배제”하자?
‘차별 철폐’ 스포츠 정신과 어긋나
낡은 남성/여성 이분법 강화 우려도

나 선수의 도전은 트랜스여성의 여성부 경기 출전이 ‘공정’하냐는 논란으로 이어졌다. 불공정론자들은 ‘생물학적 차이’를 논한다. 나 선수의 키는 180cm, 몸무게 72㎏, 골격근량 32.7㎏. 체격부터 다른 여성 선수들을 압도한다. 2012년 제47회 강원도민체전 때 남자 일반 1부 1km 독주, 4km 개인추발 등에서 4관왕에 오른 실력자다.

일부 페미니스트들도 ‘생물학적 차이’를 이유로 나 선수의 도전을 비판한다. 트랜스젠더 배제적 페미니스트들(TERF)은 시스젠더 여성이 ‘생물학적 남성’인 트랜스여성과 경쟁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트랜스젠더 여성은 진짜 ‘여성’이 아니고, 트랜스여성의 여성부 경기 출전은 ‘남성이 여성 영역에 침범해 여성의 권리를 위협하는 행위’이니 분리·배제하자는 주장이다.

이는 특정 정체성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 ‘스포츠 정신’과 충돌한다. 오히려 페미니즘이 비판해온 성별 이분법과 여성 억압을 강화할 뿐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트랜스젠더 선수를 “사기꾼”으로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트랜스젠더는 자신들이 트랜스젠더이기 때문에 오는 어려움을 극복한 점, 더구나 트랜스젠더포비아적인 스포츠 세계에서 커밍아웃한 점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 트랜스젠더 여성들 중 극소수가 정상급 대회에 참가할 수 있는 재능과 환경을 가지고 있다. 시스젠더 여성도 마찬가지다. 무척 적은 수의 선택된 사람들만이 극히 드문 수준의 재능과 높은 수준의 코치, 훈련 환경을 누리는 행운으로 정상급 무대에 선다. 이것은 공정한 것인가?” 이타니 사토코 일본 간사이대 준교수가 2020년 일본 내 트랜스젠더 선수 배제적 ‘페미니즘’ 담론에 던진 반론은 지금 한국 상황에도 유효하다.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 부문에서 우승한 이래로 성별 논란에 휩싸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선수 카스터 세메냐가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 800m 결승에서 우승한 뒤 세레모니를 하고있다.  ⓒAP/뉴시스
2009년 베를린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800m 부문에서 우승한 이래로 성별 논란에 휩싸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육상선수 카스터 세메냐가 2016년 리우올림픽 여자 800m 결승에서 우승한 뒤 세레모니를 하고있다. ⓒAP/뉴시스

애초에 ‘여성’과 ‘남성’ 운동선수를 나누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기준이 존재하느냐는 의문도 남는다. 10년 넘게 ‘성별 논란’ 중심에 선 남아공 육상선수 캐스터 세메냐 선수가 대표적이다. 생물학적 여성,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지만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 수치가 다른 선수보다 월등히 높다는 이유로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의 여성 선수 남성호르몬 수치 제한 규정에 걸렸다. 세메냐는 ‘여성’이 아닌가? 당사자는 연맹에 맞서 싸우다 2019년 사실상 은퇴했다.

“(여성부 경기 참여 자격을) 호르몬 수치로 정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의견도 있다. 의료인문학자 최은경 경북대 의대 조교수는 “테스토스테론이 신체 능력과 직접적 연관 관계가 있다는 증거는 없다. 국제 스포츠 연맹들이 제시하는 여타의 과학적 기준에 대해서도 과학계에서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트랜스젠더 선수의 경기 참여가 공정하느냐고 묻기 전에 ‘공정함’의 기준이 타당한지 뒤집어봐야 한다”이라고 지적했다.

사토코 준교수도 “스포츠에서 여성 배제가 기반하고 있는 논리는 예나 지금이나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에 대해 끈질기게 매달린다”며 “스포츠계의 성 통제는 (세메냐 선수처럼) 서구의 의학 당국이 설정한 젠더 기준에 딱 들어맞지 않는 여성들에게 많은 해를 끼쳐 왔다”고 주장했다.

③ 스포츠계 트랜스젠더의 설 자리는
더디지만 포용 확대...국제대회 출전 늘어
한국 체육계, 아직 공식 논의도 없어
사회적 대화로 시대에 맞는 규정 마련해야

스포츠 세상도 점차 트랜스젠더 선수들을 포용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다만 속도가 더디다. 국제대회에서 트랜스젠더 선수가 공식적으로 설 자리가 생긴 게 2004년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그해 5월 ‘스톡홀름 합의’를 통해 트랜스젠더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했다. 단 성전환 수술, 법적 성별 정정, 최소 2년간의 호르몬 치료 등 조건을 붙였다. 2021년에야 테스토스테론 수치 대신 경기력 우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제시하라는 권고안이 나왔다. 또 성전환 선수들을 포용하되 이들에 대한 출전 자격 기준은 종목별 IF(국제연맹)의 자율에 맡겼다. 그해 올림픽 사상 최초 트랜스젠더 국가대표 선수가 등장했다. 2020 도쿄올림픽에 참가한 뉴질랜드 트랜스젠더 여성 역도선수 로렐 허바드다.

여전히 많은 종목이 ‘형평성’을 이유로 트랜스젠더 여성의 경기 참가를 막거나 호르몬 수치 기준을 제시한다. 세계육상연맹(WA)은 남성으로서 사춘기를 겪은 트랜스젠더 여성 선수의 여자부 세계랭킹 포인트 대회 출전을 지난 3월 금지했다. 월드 럭비(WR)는 트랜스젠더 선수의 여자부 국제대회 출전을 금지했고, 국제수영연맹(WA)도 12세 이전에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선수만 여자부 경기에 출전할 수 있게 했다. 2022년 3월 영국에선 트랜스젠더 사이클 선수 에밀리 브리지스가 테스토스테론 수치 기준을 충족하고도 국제사이클연맹(UCI)으로부터 대회 참가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한국은 어떨까. 대한체육회와 전국체전위원회, 각 종목협회의 경기인, 선수 등록 규정에는 트랜스젠더 선수 관련 내용 자체가 없다. 달라진 시대에 맞게 전문가들의 의견을 청취하고 규정을 정비할 때다. “중요한 것은 트랜스 여성의 경기 출전의 공정 여부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이 아니라, 나 선수가 제기한 것처럼 한발 더 나아간 질문에 관한 더 많은 사회적 대화”다(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나 선수가 쏘아올린 논쟁이 트랜스젠더 당사자에 대한 과도한 공격이나 인권 침해로 치닫는 사태도 막아야 한다. 그는 경륜 경기 후 함께 출전한 두 여성 선수에게 “죄송한 마음을 담아” 음료를 전했다고 한다. 7일 여성신문 인터뷰에서도 “(2관왕을 했지만) 아무래도 다른 선수들에게 피해를 준 것에 대해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고 밝혔다. 성소수자들의 설 자리를 위해 용감하게 자신을 드러낸 그가 지나치게 무거운 짐을 지지 않기를 바란다.

최은경 경북대 의대 조교수는 이번 사안을 과학이나 생물학의 문제라기보다 인권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트랜스젠더도 당당하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고,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나 선수를 지지하는 목소리들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참고문헌

이타니 사토코. (2020). 스포츠 분야 트랜스젠더 배제(Trans-Exclusion)에 대한 “페미니즘” 담론, 일본비평(Korean Journal of Japanese Studies), Vol.23, pp. 178.

최은경. (2019). 테스토스테론 수치로 성별을 구분할 수 있을까?: 세메냐의 성별 구분 논란을 중심으로. 과학잡지 에피 9호. 이음.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