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우리집 근처에 문을 연 대형 할인마트에 가니 가족을 차에 태우고 온 남성들을 많이 만나게 된다. 주말에 지하철을 타면 아이들을 띠로 메고 다니는 아버지들을 많이 보게 된다. 이제는 직장 동료들과 늦게까지 어울리기보다는 일찍 퇴근하여 가정으로 돌아가는 남성들이 늘어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가족과 관련한 국민 의식조사 결과들에 따르면 남성들의 가정지향적 경향은 커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일견 평등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들의 행동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남성들의 임무는 주로 운전사와 짐꾼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다. 물건을 직접 고르는 사람은 전부 여성이고, 남성들은 잘해야 부인-그 동안 그 부인은 집안 대청소를 하고 있으리라-이 적어준 쇼핑목록을 점검하며 물품을 구입하고 있다. 쇼핑하고 오면 남성들과 아이들은 사온 음식들을 거실에서 꺼내 먹는 동안 여성들은 사온 음식과 물품들을 정신없이 다듬고 정리하고 있다. 남성들은 자녀들을 안고 있다가 아이들이 느닷없이 울음을 터뜨리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할 때가 되면 여성들에게 얼른 맡겨버린다.

이처럼 최근 늘어나고 있는 '가정적인 남성'의 이미지는 남녀 간의 성역할지형을 깨고 있지 못하다. 오히려 여성들의 성역할을 더욱 공고히하는 기제로 작용하고 있지 않는 것은 아닐까. 동네에서 소문난 가정적인 남자 1호는 단지 일찍 퇴근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남성들이 일찍 퇴근하여 저녁식사를 직접 준비하지 않는 한, 여성들의 가사노동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가정적인 남자 2호는 실제로 자녀양육과 집안일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는 자신의 관심을 앞서서 여성들이 더욱 집안일을 꼼꼼하게 행할 것을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들은 말한다. “내가 설거지는 할테니까 맛있는 것 좀 해 먹자고”

남성들이 가족생활에 개입해가는 만큼 여성들이 편해졌다고 느끼지 못한다면 그러한 변화에 대해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남성들의 가정지향적 경향이 여성들의 삶을 제약하는 계기가 되고 여성의 성역할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면, 나는 솔직히 '가정적인 남자들'의 등장이 두렵기만 하다. 남자들이여, 여자들의 가정 밖 활동을 지원하고 요리를 하며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라! 그때야말로 우리는 진정으로 가정적인 남성을 확인하며 우리사회의 평등에 대하여 논할 수 있을 것이다.

조주은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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