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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딸아이가 엊그제 학교에서 받아온 가정통신문에는 '폭력 및 안전 사고 예방'이라는 제목이 붙어있었다. '이유 없는 폭력을 당하면서 폭력에 굴복하며 사는 것은 자제력과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로 시작하는 가정통신문은 자신의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폭력을 당했을 때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용기임을 강조하면서, 자기보다 약한 사람에게 폭력을 휘둘러 굴복시키는 일은 자신에게 처참한 일이고 또한 그런 사람일수록 자기보다 강한 사람에게 비열한 행동을 하는 법이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그 아래쪽에다가 학생과 학부모가 함께 유념할 '폭력 예방 지침'을 적어 놓았다. ①평소 모욕적인 말투, 잘난 체하는 행동을 삼간다 ②상호 예의를 지킨다 ③검소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다 ④청소년 출입금지 지역이나 유흥업소에 출입하지 않는다 ⑤운동장 구석, 후문, 어두운 골목길 등 외딴 곳에 가지 않는다 ⑥등·하굣길에는 친구들과 함께 큰길로 다닌다 ⑦불량 서클이나 폭력 선배의 유혹을 받으면 용기 있게 뿌리친다 ⑧사소한 협박이나 폭행이라도 부모님, 선생님과 의논한다 ⑨밤늦게 골목길, 공원 근처를 걷거나 이성 친구와 함께 외진 곳을 가지 않는다 ⑩학급에서 5명 이상의 친구를 반드시 사귄다 ⑪금품을 보여 주지 않고 귀중품 및 많은 돈을 갖고 다니지 않는다

아이와 함께 꼼꼼하게 읽고 나서는 냉장고 문에 자석으로 붙여 두었다. 2학기 접어들어서야 겨우 초등학생 티를 벗고 있는 아이가, 생각지 못한 상황과 맞닥뜨리면 무척 혼란스럽고 당황하겠구나 싶으면서 텔레비전이나 신문 혹은 들려오는 이야기로만 접해온 청소년 폭력이 바로 내 아이의 문제라는 실감이 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득 신체적인 폭력까지는 아니지만 동년배 친구들이나 노인대학 동급생 사이에서 소외되고 무시당하는 어르신들 생각이 났다. 흔히 쓰는 말로 '왕따' 당하는 어르신들 말이다. 청소년 폭력 예방 지침에서 몇 가지를 골라 나 혼자 '노년 왕따 예방 지침'을 만들어 보면서 '아이고, 직업은 못 속이는구나' 혼자 비죽이 웃음을 빼물었다.

노년 왕따 예방 지침을 최초로 공개한다.

하나, 평소 모욕적인 말투나 잘난 체하는 행동을 삼간다. 나보다 못 배우고 덜 가졌다고 무시하며 모욕을 주거나 잘난 체 턱을 치켜들면 자신에게 돌아오는 것은 외로움뿐이다. 친구에게만이 아니라 며느리를 비롯한 자식들에게도 모욕감을 느끼게 하면 그것은 노년의 고독이 되어 돌아온다.

둘, 예의를 지킨다. 부모와 자식, 가까운 친구 사이라 해도 상식적인 행동의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말과 행동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면 그 누구에게도 사랑 받지 못한다.

셋, 검소하고 단정한 옷차림을 한다. 노인복지관이나 노인대학은 나름의 질서를 지닌 공동체이다. 지나친 몸치장과 도를 넘는 옷차림은 위화감을 조성하며 거리감을 갖게 한다. 모이는 사람들의 수준에 자신을 적절하게 맞추는 것 역시 노년의 지혜이다.

넷, 5명 이상의 친구를 반드시 사귄다. 어려운 일이 생겼다고 가정하고 도움을 청할 가까운 친구 이름을 꼽아본다. 5명 안쪽이라면 서둘러 친구 관계 점검에 나서야 한다. 10명을 꼽았을 때 2명 이상이 10년 연상이거나 연하라면 세대차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다섯, 가진 것을 자랑하지 않는다. 돈이든 건강이든 자식이든 명예든 지나친 과시는 질투를 불러일으키며 사람들을 멀어지게 만든다.

아, 청소년도 어르신들도 서로 왕따 시키거나 왕따 당하지 않고 사이좋고 행복하게 잘 살면 얼마나 좋을까.

유경/

사회복지사,

어르신사랑연구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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