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에밀리 리스트를 다녀와서

조현옥

여성정치세력민주연대 대표

추석 전 다녀왔던 미국연수여행에서 여성후보를 지원하는 단체인 에밀리 리스트를 방문할 기회를 가졌다. 에밀리 리스트(EMILY´s LIST)는 한국에서 여성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특히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운동을 하는 이들에게는 잘 알려진 조직이다. 무엇보다 여성후보들에게 가장 힘든 부분인 초기 정치자금을 지원한다는 의미에서 일반적인 지지운동을 한 발 앞서 나가는 단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성정치인 양성 '시드 머니'

11월 대선을 앞둔 에밀리 리스트는 꽤 분주한 모습이었다. 선거캠페인 때문에 바빠서 손님 맞을 틈도 없다고 하여 우리가 방문했던 시간은 그야말로 에누리없는 한 시간이었다. 짧은 시간의 브리핑과 질문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기부금을 어떻게 모으고 있는가, 짧은 기간에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등이었다. 85년에 앨런 맬컴을 비롯한 25명의 여성이 상원이나 하원, 주지사 등에 더 많은 여성들이 진출해야 한다는 의지를 가지고 모였던 이 조직은 가장 먼저 착안했던 것이 미국의 정치상황에서 여성 후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초기 선거자금 지원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인 에밀리도 미국여성의 흔한 이름이기도 하지만 'Early Money Is Like Yeast' 즉 '초기자금은 이스트와 같은 효과를 가진다'라는 의미를 가진 문장의 첫 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기도 하다.

독립된 비영리 기구

현재 에밀리 리스트는 회원과 지지자들로부터 기부금을 매년 3500만 달러 정도 모금한다고 한다. 3500만 달러면 우리 돈으로 400억원 정도의 돈으로 그야말로 우리의 여성단체에서는 꿈도 꿔볼 수 없는 액수이다. 이러한 기부금은 후보 지원과 교육사업, 여성유권자 사업 등 다양하게 사용되며, 재정자립 덕분에 비록 민주당의 여성후보들을 지원하기는 하지만 민주당과는 독립된 별도의 비영리기구로 활동하고 있었다. 기부금을 걷는 방법은 주로 편지를 이용한다고 한다. 회원들이 대부분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에 오프라인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편지를 보내 그 자리에서 수표를 끊어 기부금으로 보내도록 설득하고 있었다.

지금 정부의 프로젝트 기금을 받느냐 안 받느냐로 시비를 당하며 항상 재정문제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의 시민단체들로서는 먼 나라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기부문화는 정말 벤치마킹 해 오고 싶은 부러운 점이었다.

의 에밀리 리스트 기대

또 하나 에밀리 리스트의 성공요인은 구체적인 한 가지 주제에 집중했다는 점이다. 에밀리 리스트는 '프로 초이스(pro-choice)'라는 슬로건을 걸고 민주당 여성후보로 낙태허용을 지지하는 후보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물론 유럽에서 낙태문제는 여성의 자율성 및 독립성을 인정토록 하는 대표적인 여성문제로 인식되고 있고 따라서 프로 초이스는 단순한 하나의 여성사안이라기보다는 여성성을 지향하는 여성후보를 지원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쨌든 25명의 여성이 모여 친구들에게 100달러씩의 기부를 요청하며 시작된 에밀리 리스트는 현재 미국에서도 중요한 정치단체로 성장하였으며, 이 조직의 지원을 통해 하원에 55명, 상원에 11명, 주지사에 7명의 여성을 당선시켰다고 한다.

한국의 여성 정치세력화 운동이 이제까지 제도적 지원에 힘써 왔다면 여성 후보 발굴이나 지원사업을 위한 활동의 모델로서 에밀리 리스트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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