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30인 미만 사업장
성희롱 대응 돕는 ‘위드유센터’ 3년 만에 폐쇄
서울시 “직장 성희롱·괴롭힘·워라밸 등 통합관리”
1일 성과공유포럼 모인 전문가들
“전문성 갖춘 전담기구 필요”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위드유센터)가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소재 스페이스살림 다목적홀에서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 성과 공유 포럼’을 열었다. ⓒ위드유센터 제공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위드유센터)가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소재 스페이스살림 다목적홀에서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 성과 공유 포럼’을 열었다. ⓒ위드유센터 제공

서울 시내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성희롱 예방교육, 사건 대응 등을 지원해온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위드유센터)가 3년 만에 문을 닫는다. 서울시는 센터에 위탁했던 사업을 앞으로 직접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단 직장 내 성희롱 전담 사업이 아닌 직장 내 괴롭힘, 일·생활 균형 등 조직문화 개선 의제와 통합 추진할 계획이다. 현장에선 전문성·능률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투’(#MeToo) 운동 이후 2020년 6월 문을 연 위드유센터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 ▲사건처리 지원 ▲피해자를 위한 무료 법률동행 지원 ▲성평등 조직문화 확산 캠페인 등을 펼쳐왔다. 젠더교육플랫폼효재가 위탁 운영한다. 사업 대상은 30인 미만 사업장이다. 서울시 전체 사업장의 97.8%를 차지하나 성희롱·성폭력 예방체계가 취약한 기업들이다.

미투 운동 이후 정부와 지자체가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관련 대책을 연이어 발표했지만, 주로 공공부문 내 고충처리 관리감독 강화에 초점을 뒀다. 민간기업, 특히 영세 사업장은 여전히 사각지대에 있다. 예방교육은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10인 미만 사업장이라면 자료 배포나 게시로 대체해도 그만이다. 인사노무 전문인력이 부족하고 고충처리 시스템도 빈약하다. 직장 내 성희롱은 법률상 “사업장 내 자율적 분쟁 해결”이 원칙이라 민·형사 사건 지원 등 일반 성폭력 피해 지원책을 적용하기 어렵다. 작은 일터에서 성희롱을 겪은 피해자들이 ‘각자도생’에 나서고, 퇴사로 내몰리는 이유다.

그간 코로나19로 회식 등이 줄면서 직장 내 성희롱 피해도 줄었다지만(여성가족부, 2021 성희롱 실태조사) ‘코로나 엔데믹’ 국면에선 직장 내 성희롱 예방·대응이 다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2022년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접수한 여성 노동자 상담 중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상담이 61.5%(338건)로 가장 많았다. 퇴사 상담 사례의 59.5%(75건)가 ‘직장 내 성희롱’ 때문이었다. 서울 시내 30인 미만 사업장 여성 종사자의 성희롱 직접 피해 경험률(30.7%)은 여가부의 30인 이상 사업장 성희롱실태조사 직접피해 경험률(2018년 14.2%, 2021년 7.9%)보다 훨씬 높다(서울시여성가족재단, 2022).

ⓒ위드유센터 제공
ⓒ위드유센터 제공
ⓒ위드유센터 제공
ⓒ위드유센터 제공

노동·여성 전문가들은 서울시가 소규모 사업장 내 성희롱·성폭력 대응 지원을 더욱 체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인노무사인 최미진 (사)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 자문위원은 1일 서울 영등포구 스페이스살림 다목적홀에서 열린 위드유센터 성과공유포럼에서 “센터 사업을 제외하면 3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정책적 지원은 예방교육만 남게 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피해 당사자들이 가장 필요한 지원으로 꼽은 법률동행지원과 전문정보 제공, 이와 연계된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처리역량 강화를 위한 지원은 지속돼야 한다”고도 했다.

구미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사내 고충처리 절차가 미비한 사업장의 피해자가 ‘각자도생’해선 안 된다. 국가와 지자체가 사회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며 “소규모 영세사업장을 위해 성희롱 예방교육, 컨설팅, 피해자 법률동행 서비스까지 지원하는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서울시가 명칭만 바꿔서라도 사업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직장 내 성희롱 피해생존자 박모(30)씨는 “노무사나 변호사 도움 없이 홀로 사건을 해결하느라 힘들었다. (위드유센터에서) 법률동행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돼 아쉬웠다. 지난해 센터에서 연 에세이 공모전에 참여하면서 혼자가 아니라 사회적 지지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고 말했다.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호주 연방정부는 ‘Respect@Work’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5인 이상 사업장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했고 주정부가 온라인 예방교육을 제공할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호주 연방정부 ‘Respect@Work’ 캠페인 웹사이트(https://www.respectatwork.gov.au/) 캡처
3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많지 않다. 호주 연방정부는 ‘Respect@Work’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미투’ 운동을 계기로 5인 이상 사업장 대상 성희롱 예방교육을 의무화했고 주정부가 온라인 예방교육을 제공할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호주 연방정부 ‘Respect@Work’ 캠페인 웹사이트(https://www.respectatwork.gov.au/) 캡처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위드유센터)가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소재 스페이스살림 다목적홀에서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 성과 공유 포럼’을 열었다. ⓒ이세아 기자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위드유센터)가 지난 1일 오후 2시 서울 동작구 소재 스페이스살림 다목적홀에서 ‘위드유 서울직장성희롱성폭력예방센터 성과 공유 포럼’을 열었다. ⓒ이세아 기자

서울시 “직장 성희롱·괴롭힘·워라밸 등 통합관리”
여성·노동 전문가들 “전문성·능률 저하 우려”

위드유센터가 수행하던 성희롱 예방교육 등 주요 사업은 이달부터 사실상 중단됐다. 서울시는 지난 3월 중순 센터 측에 처음 위탁사업 종료와 센터 폐쇄 방침을 통보했다. 지난해 사업 수행 평가 결과가 우수했고, 경기도, 부산광역시, 인천광역시 등 지자체에서 벤치마킹 문의도 이어지고 있어 실무자들은 센터 폐쇄를 전혀 예상치 못했다고 한다. 정산 작업 등을 위해 센터는 8월31일까지 연장운영한다.

장윤모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양성평등담당관 양성평등안심팀장은 “소규모 사업장들은 당장 생존과 조직 운영 문제 등으로 인해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을) 여력이 없을 수 있다. 조직 내 ‘갑질’, 일·생활 균형 문제 등과 합쳐서 통합적 관점으로 교육·컨설팅을 제공하는 사업을 수행하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라며 “서울시의 네트워크·자원을 적극 활용해 인센티브를 발굴한다면, 기업들이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으면 경영과 생산성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해 더 자발적으로 참여하도록 하는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위드유센터가) 인프라가 없는 상황에서 나름의 의미와 성과를 갖고 사업을 수행해오신 데 감사하다. 앞으로는 물리적인 센터의 형태는 아니지만, 사업 중단이 아니라 한 단계 발전시켜 수행할 수 있도록 계속 의견을 참조하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각 사업의 목표와 방향성이 다른데, 단순 통합해 자칫 사업의 질을 떨어뜨리는 게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됐다. 구미영 연구위원은 “성희롱 사건은 다른 노동분쟁과 다르다”며 고용노동부가 각 고용노동청에 성희롱·성차별 전담근로감독관을 임명하고 성희롱·성차별전문위원회를 설치하도록 한 것, 여가부가 성희롱·성폭력 예방지침에서 성희롱성폭력고충심의위를 별도로 둘 것을 권고한 사례 등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직장 내 성희롱은 관련 전문성을 쌓아야 실효성 있는 예방·구제가 가능하며, 일·생활 양립 지원 정책과 전혀 다른 영역의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심선희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도 “자녀 양육·가족 돌봄에 중점을 둔 일·생활 균형 지원사업과 조직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대응 지원사업을 동일선상에서 접근하기엔 한계가 있다. 각각의 안정적 물적 토대를 기반으로 각 사업 세부 내용과 방향을 검토하며 고유한 사업 영역을 개발·확장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포럼엔 130여 명이 참석했다. Q&A 시간에는 “대안 없는 폐쇄 아니냐”, “조례에 근거해 만들어진 센터가 갑자기 폐쇄되는 이유를 밝혀 달라” 등 날 선 질문이 이어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협의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 8월31일 안으로 외부 공시나 보도자료 등을 통해 밝히겠다”고만 답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