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정부 1년 젠더정책 평가] (끝)

윤석열 정부 집권 1년이 되었다. 각계에서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와 규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지만 시민사회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제스추어는 일체 보이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예상대로 법무부장관을 필두로 장ㆍ차관급 기관장들과 대통령실, 국무총리실, 국정원, 금감원 등 권력기관의 요직에 검사와 검찰 출신 인사들을 대거 등용하면서 ‘검찰에 의한 지배체제’를 구축했다.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국정원과 방첩사 권한 강화, 대통령실 공직감찰반 신설 등으로 대통령실의 직접 장악력을 강화하는 한편, 시행령 개정 등을 통해 검찰 조직과 검사들의 권한 강화도 추진했다. 심각한 것은 ‘검찰 편중 인사’가 전통적인 권력기관을 넘어 정책 전문성이나 경험이 중요한 분야들까지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더해 여권 내에서는 2024 총선에서 수십 명의 ‘검사공천설’이 끊임없이 떠돌고 있다. 검찰국가가 탄생했다는 탄식이 과장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이유다.

한편, 지난 3년 여간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전 세계가 국가책임과 공공성에 더 주목하게 되었지만, 우리 정부는 사회안전망의 최후의 보루라 할 수 있는 의료와 보육, 돌봄의 영역마저도 시장화, 산업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주변국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면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려는 미국의 전략에 편승해 전쟁위기를 키우고 있는 것도 위험천만한 일이다. 강제동원 문제나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에 대한 태도에서 보듯이 민주주의, 인권, 평화에 반하는 일방적인 종속외교 등 정치, 외교,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퇴행적 조치를 감행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것이 퇴행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때에 지난 1년, 윤석열 정부의 특징적인 장면들을 돌아보고, 시민사회가 부당한 권력의 행사, 정의에 반하는 정책 추진에 어떻게 대항할 것인지 제안해보고자 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새해 첫날인 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장면 1# 불통과 독선의 서막, 대통령실 졸속 이전 윤 대통령은 대선 엿새만에 당선인 신분으로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전격 발표하고, 여러 우려와 반대에도 이전을 밀어붙였다. 두달 안에 국방부와 합참, 청와대 경호처와 경비부대 등 여러 기관이 연쇄적으로 이동해야 하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한 차례 토론도 없이 당선인의 말 한마디로 결정하고 집행한 것이다.

장면 2# 검찰 만능주의, 검사 편중 인사 이는 수사와 기소기관인 검찰 출신이 국정 전반을 담당할 수 있다는 오만과 독선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정부 정책과 국정 운영이 검찰주의적 시각에 편중될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성이 크다. 게다가 검찰 조직은 수직적인 상명하복과 검사동일체 원칙이 여전히 살아 숨쉬는 조직이다. 검사 편중 인사가 다양성과 전문성의 훼손은 물론, 사회적 합의나 토론, 설득, 협력과 연대의 설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핵심적인 이유이다.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 옆에서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10·29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청 옆에서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10·29이태원 참사 시민대책회의가 '10·29 이태원 참사 100일 시민추모대회'를 개최했다. ⓒ홍수형 기자

장면 3# 국가 책임의 실종과 신뢰의 붕괴 10.29 이태원 참사는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핼러윈 축제에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이 사전에 예측됐고, 참사가 발생하기 4시간 전부터 이미 압사를 언급하는 시민들의 신고 전화가 접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 대응 등에 70개 기동대를 투입하면서도 이태원에 인파를 관리할 경찰력 투입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대통령이 재난안전 주무 장관인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해 159명이 숨진 이 참사에 대한 그 어떤 책임도 묻지 않고, 도리어 국가안전TF의 단장으로 임명하면서 재신임한 것이다.

장면4# 적대 정치와 퇴행하는 거버넌스 대선 과정에서 확인된 것처럼 노동시민사회에 대한 적대적인 인식과 태도는 취임 이후 더욱 노골화되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시민단체 부당이득 환수, 노조 부패 척결 등을 내걸고 노조와 시민단체를 공공의 적으로 묘사하면서 배제와 혐오, 왜곡과 매도, 갈라치기를 서슴지 않았고, 노조와 시민단체를 겨냥한 조사와 수사도 날로 확대되는 모양새다.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말에서 확인되듯이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몰이해, 시민사회와의 민주적 소통과 협력에 대한 무개념을 아낌없이 보여주고 있다.

장면5# 한미일 편중외교와 한반도에 불어닥친 전쟁 위기 윤석열 정부는 ‘힘을 통한 평화’를 주창하고 상대방을 군사적으로 굴복시킬 수 있을 것처럼 말해왔다. 그러나 힘의 과시는 긍정적 효과 대신 부작용만 낳고 있다. 북한은 ‘대북적대정책’을 핑계삼아 ‘핵 무력’을 강화 발전시키고 있고, 한반도는 전쟁발발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균형을 포기한 ‘한미동맹 올인’ 외교, 군사동맹 강화 추진으로 한반도 평화도, 비핵화도 현실적인 목표에서 멀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시민운동은 무엇을 해야 하나?

쉽지는 않지만,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냉소와 절망감을 떨치고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상상을 집요하게 이어가야 한다. 또 약자들과의 연대, 민주주의와 권리를 지키기 위한 행동에 더 많이 나서야 한다. 윤석열정부가 법치주의를 내세워 칼날을 겨누는 대상은 역설적으로 그동안 차별받아 왔거나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집단들이다. 그럴수록 시민운동은 공적 책무를 다하지 않아 희생되고 권리를 침해당한 이들과 연대하면서 시민의 권리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권력의 권한 남용에 맞서고, 압수수색과 수사 기소를 통해 끊임없이 공공의적과 범죄 집단을 만들어 내는 ‘윤석열식 수사통치’가 국민을 분열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알리고 함께 대응해야 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정치의 양극화, 극단화 상황에서는 그 어떠한 개혁도 진전도 기대하기 어렵다. 2024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도 개혁 논의가 아직도 갈지자를 그리고 있지만 대의 정치의 한계를 더는 묵인해선 안된다. 다양성이 보장되고 소수자의 목소리가 더 적극적으로 반영되는 정치를 만들기 위한 연대와 행동에 더 적극 나서야 한다.

권력자들의 입에서 되레 조장 확산되고 있는 차별과 혐오를 극복하기 위해 차별금지법 등 제도적 대책의 수립을 더 적극적으로 촉구하고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정치를 심판할 수 있도록 차근차근 준비해야 한다.

위협받고 있는 시민의 기본권, 집회시위의 권리, 표현의 자유 확보를 위한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여러 이유같지 않은 이유와 논리를 만들어가며 시민의 권리를 위축시키고 억압하는 퇴행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 된다.

퇴행과 폭주의 1년을 고통스러운 심정으로 목도하고 있지만, 절망하지 않고 연대와 협력으로 다시 힘을 모아보자고 감히 제안해본다.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 ⓒ본인 제공
이지현 참여연대 사무처장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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