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일 1인 시위 후 탄원서 제출

5월 31일 12시에 대법원 앞에서 5월 릴레이 1인시위가 마지막으로 진행됐다. ⓒ한국여성의전화
최말자씨가 5월 31일 서울 강남구 대법원 앞에서 5월 릴레이 1인시위를 진행하고 활동사들과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56년 만의 미투를 외쳤던 최말자 씨가 재심 개시를 촉구하며 탄원서를 제출했다.

‘56년 만의 미투’는 수사·사법기관이 성폭력 피해자가 성폭력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방어행위를 ‘고의에 의한 상해’로 보고 구속 수사 및 유죄 판결을 내려 피해자가 56년이 지난 2020년 5월 6일 재심을 청구한 사건이다. 피해자는 중상해죄로 6개월여간 구속된 채 수사·재판을 받았고, 징역10월 집행유예 2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피해자는 당시 수사·재판 과정의 문제점을 알리며 자신의 방어행위를 정당방위로 인정받기 위해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재심 청구에 대해 부산지방법원, 부산고등법원은 본 사건이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변명과 함께 연이어 기각 결정을 내렸고, 현재 대법원의 최종 판단을 앞두고 있다.

5월 2일, 재심을 청구한 지 약 3년을 맞아 대법원에 재심 개시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 인정을 위한 재심 개시 촉구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 진행 후 대법원 앞에서 당사자 최말자 님의 1인시위를 시작으로 5월 한 달간 시민들이 참여한 릴레이 1인시위가 진행됐다. 1인시위에는 최말자 님을 비롯, 42명의 시민이 참여했다.

1인시위 진행 후, 릴레이 1인시위 및 5차 서명 캠페인을 마무리하며 당사자 최말자 님과 최말자 님의 가족·지인 등 20명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및 시민 참여 서명지(5월 31일 현재까지 15,685명 참여)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1인시위 진행 후, 릴레이 1인시위 및 5차 서명 캠페인을 마무리하며 당사자 최말자 님과 최말자 님의 가족·지인 등 20명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및 시민 참여 서명지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1인시위 진행 후, 릴레이 1인시위 및 5차 서명 캠페인을 마무리하며 당사자 최말자 님과 최말자 님의 가족·지인 등 20명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및 시민 참여 서명지(5월 31일 현재까지 15,685명 참여)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 전화
1인시위 진행 후, 릴레이 1인시위 및 5차 서명 캠페인을 마무리하며 당사자 최말자 님과 최말자 님의 가족·지인 등 20명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및 시민 참여 서명지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한국여성의전화

5월 31일 12시에 대법원 앞에서 5월 릴레이 1인시위가 마지막으로 진행됐다. 1인시위 진행 후, 릴레이 1인시위 및 5차 서명 캠페인을 마무리하며 당사자 최말자 님과 최말자 님의 가족·지인 등 20명이 직접 작성한 자필 탄원서 및 시민 참여 서명지를 대법원에 제출했다.

재심 개시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시민들은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방위를 인정해주세요", "반드시 재심 개시하여 공정한 판결을 할 것을 요청합니다", "과거의 재판부의 잘못을 현재의 재판부가 바로잡아야 합니다", "'당시의 시대 상황'은 말이 안되는 핑계입니다. 어떤 시대이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재심을 개시하고, 꼭 정의를 실현했으면 좋겠습니다" 등의 의견을 표했다. 

31일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최말자 씨. ⓒ한국여성의전화
31일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최말자 씨. ⓒ한국여성의전화

다음은 최말자씨가 대법원에 제출한 탄원서 전문. 

탄 원 서

- 탄원인: 최 말 자

대한민국의 검사는 헌법을 토대로 남녀의 평등과 인간 존엄을 근본으로 삼아 죄를 구별하고 그에 대한 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나의 사건에서 검사는 엄연한 성폭력 피해자를 과잉 저항이라고 오히려 가해자를 만들어 감옥에 보냈습니다. 그리고 2021년 부산지방법원은 “본 사건이 당시의 시대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실로 부끄러운 변명으로 재심 청구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모든 재판이 시대 상황에 따라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내 사건과 같은 재판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부끄러운 대한민국의 법의 체제를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1964년 사건 당시 아버지는 농사만 지을 줄 아는 무지한 농부였고, 저는 18살 아무것도 모르는 미성년이었습니다. 누구도 나를 지켜줄 수 없었고 검사의 일방적인 폭언, 압박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경찰에서는 수사를 통해 성폭력 피해 사실을 밝혔고 무죄로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그러나 검사들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빼고 성폭력 피해 사실이 빠진 나의 사건에 고의로 멀쩡한 남자의 혀를 자른 중상해죄를 씌워 감옥으로 보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아니고 여러 사람의 힘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시대적인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일일 뿐이었습니다. 그 결과 미성년의 18세 성폭력 피해 소녀는 6개월 12일 동안 감옥에 보내졌고,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판결을 받았습니다. 판결을 받고 석방 당시의 심정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대성통곡을 해야 했지만 어두운 밤, 구속 당시 입었던 옷을 입고 들판과 산길을 아버지 뒤를 따라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사건은 전혀 사소하지 않았습니다.

국가로부터 받은 폭력은 제 삶을 평생 죄인이라는 꼬리표로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 그 소녀의 삶은 평생을 살면서 억울했고 분노하게 했습니다. 56년 만에 재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고, 항소 역시 기각되어 할 말을 잊고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대법원 역시 3년이란 시간이 흘러가고 있지만 답변을 주지 않아 이 자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단지 시대 상황에 어쩔 수 없는 판결이었다는 부끄러운 변명이 아니라 억울한 판결로 한 사람의 인생이 뒤집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제라도 정의로운 판단으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땅에 떨어진 재판부의 명예를 회복하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이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은 한국여성의전화, 그리고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의 격려와 응원 덕분이기도 합니다.

너무 긴 시간에 몸이 지치다 보니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후손들을 떠올리면서 지금 바로 잡지 못하면 이런 일이 또 되풀이될 것이고,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사건의 재심을 다시 열어 명백하게 피해자와 가해자를 다시 정의하고 정당방위를 인정하여 구시대적인 법 기준을 바꿔야만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성폭력으로부터 자신을 지켜내며 더 이상 성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국가는 나의 인권에 대한 책임을 보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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