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윤석열 정부 1년을 맞아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인 ‘윤석열 정부 1년 정책 평가 및 제언 토론회 - 표류하는 성평등 정책 방향키 잡기’를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총론 △젠더폭력 △노동 △가족/돌봄/복지 △평화 △정부를 주제로 발제했다. 토론회에서 나온 발제를 요약해 싣는다.

지난 1년 동안 110대 국정과제와 예산안, 법·제도 관련 정책을 통해 드러난 윤석열 정부의 복지 방향은 ‘정상가족’, ‘선별복지’, ‘시장중심’을 가리키고 있다.

‘정상가족’은 자본주의가 사회유지를 위한 사회재생산 영역을 여성에게 전가해 온 개념으로 ‘이성애·남성’ 노동자를 생산(임금)노동자의 표준으로 삼으며 남성지배를 뒷받침해왔다. 그리고 ‘정상가족’ 중심의 국가 행정체계는 실재하는 사실혼가족·동성파트너십·비혼동거·한부모가족·비혈연가족 등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차별을 양산하고 있어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에는 가족의 정의를 확대하는「건강가정기본법」개정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110대 국정과제에서 ‘누구 하나소외 되지 않는 가족, 모두가 함께 하는 사회 구현’을 내세운 윤 정부는「건강가정기본법」현행 유지로 입장을 번복했다. 또한 가부장제의 잔재로 성차별적인 사회규범을 재생산하는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기 방침도 철회하며 시민사회가 만들어 온 성평등의 진전을 되돌렸다.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국한부모연합이 한부모가족의 날 맞아 '건강가정기본법 하루 빨리 개정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한국한부모연합이 한부모가족의 날 맞아 '건강가정기본법 하루 빨리 개정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홍수형 기자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복지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보편적 복지와 공공성 강화라는 사회적 요구와 합의 속에서 확장되고 있었다. 사회구성원을 빈곤과 취약성을 기준으로 선별하여 구제하고 지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구성원 모두의 존엄한 삶을 보장하기 위한 개념으로서 복지를 지향해왔다. 그런데 윤 정부는 효율과 재정 건전성을 이유로 그 흐름을 거스르고 있다. ‘선별복지’를 통해 필요한 사람에게 두툼하게 지원하겠다고 말하지만 2023년 예산안에서 사회복지부문 예산의 증가는 국가가 법률에 따라 지출해야 하는 법적의무지출 분야가 대부분이었고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재량지출은 오히려 감소되었다. 기업과 부자들을 향한 감세는 있으나 복지 재원의 확충은 보이지 않는 예산편성에서 촘촘한 복지의 실현은 어렵고 이때 ‘선별복지’는 복지 축소나 다름없다.

복지 분야 이외 다른 정책들에서도 드러난 윤 정부의 정책 방향은 ‘효율적 운영’을 통한 ‘다시 성장’을 향하고 있다. 이러한 기조 속에서 복지정책 또한 성장을 바탕으로 한 ‘생산적 복지’를 지향하고 있다. ‘생산적 복지’란 고용을 통해 성장과 선순환하며 복지를 지속가능하게 하겠다는 의미로 국가는 민간이 복지영역에서 주도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바로 ‘시장중심’ 복지, 복지의 민간주도화이다. 그런데 낮은 질의 사회서비스와 종사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민간 어린이집과 사립유치원의 비리, 장기요양 시설과 사회복지시설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 교육과 건강, 돌봄에서 벌어지는 양극화 등 한국사회가 복지영역에서 직면하고 있는 문제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민간주도였다. 민영화와 시장화로 인한 공공성의 공백이 어떤 후과를 가져오는지는 코로나19 팬데믹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가족으로 여기던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토론회를 15일 서울 영등포 국회에서 열었다. ⓒ박상혁 기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가족으로 여기던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토론회를 15일 서울 영등포 국회에서 열었다. ⓒ박상혁 기자

제20대 대선은 불평등과 양극화, 기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치러졌다. 유례없는 감염병의 전지구적 발병과 기후위기, 생태계 파괴의 피해는 여성들과 취약한 계층에게 더 가혹했다. 그 주요한 원인으로 자연과 주변부를 착취하고 수탈하며 성장을 쫓아온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지목되었고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서는 더 이상 지난 사회경제 시스템을 답습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과 대안을 위한 사회적 논의들이 대두되었다. 그런데 지난 1년간 윤 정부가 ‘생산적 복지’ 기조 아래 보여준 ‘정상가족’, ‘선별복지’, ‘시장중심’이라는 방향은 시대적 요구와 어긋난다. 남성 가부장의 지배를 가능하게 하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차별하는 ‘정상가족’ 개념은 폐기되어야 한다. 성별, 장애, 국적, 성적지향, 연령, 가족형태 등 개인을 구성하는 조건들이 차별과 혐오에 무방비로 노출되도록 용인해 온 사회시스템을 바꿔나가는 성평등 복지가 필요하다.「건강가정기본법」개정과 부성 우선주의 원칙 폐기는 물론 차별금지법제정과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필요한 때이다.

그리고 한국사회가 당면한 불평등과 양극화는 그동안 경제성장을 위해 미루고 방치해 온 분배 부정의에 기인한다.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이러한 구조적 불평등의 문제를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만들며 자신을 확장해왔다. 사회재생산의 위기, 기후위기, 초국가적 불평등과 양극화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한계와도 맞닿아있다. 생산에 기대어 다시 시장이 주도하고 국가는 소위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복지로 현 사회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 분배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복지정치가 국가의 역할로 요구되며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존엄한 삶의 보장과 직결되는 주거와 의료, 교육 등에서 격차를 줄이기 위해 공공성 강화를 고민할 때이다.

끝으로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핵심 가치는 ‘돌봄’이다. 자본주의가 탈각시킨 돌봄노동의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 돌봄은 여성만의 일이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필요하고 사회재생산의 위기를 가져온 요인이자 위기를 헤쳐나갈 핵심 키이다. 여성과 남성, 시장과 가족, 개인과 국가라는 이분법적 경계를 넘어 서로가 서로를 돌볼 수 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만들어가는 성평등 돌봄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

110대 국정과제 4쪽, 시대적 소명과 국민의 요구에는 “국민은 이제 무엇이 ‘잘’ 사는 것인지, 어떻게 함께 잘 살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고 요구. 국민은 자신의 삶이 나아지기를 절박하게 원하고 있음” 이라는 구절이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방향이 틀렸다. 평균적 수치로 ‘잘’ 사는 삶에 동의할 수 없다. 그 방식은 공존이 아닌 불평등과 양극화를 강화해 왔기 때문이다. ‘어떻게’, ‘함께’, ‘잘’ 살지에 대한 고민을 다시 시작하기를 바란다.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본인 제공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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