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추진력의 리더십

- 이혜경 여성문화예술기획 대표

연대와 교육으로 세계적 리더 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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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문화 운동의 대모라 할 수 있는 여성문화예술기획(이하 여문기획)의 이혜경(51) 대표는 여성주의 연극 운동을 통해 세상에 여성주의 문화를 알렸다. 버지니아 울프의 원작을 각색한 '자기만의 방'을 비롯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아마조네스의 꿈' '마요네즈' '버자이너 모놀로그' 등 그가 기획한 작품은 흥행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1년에 한 작품밖에 할 수 없는 연극만 가지고는 많은 여성예술인, 여성들과 만날 수 없다는 한계에 부딪쳐 기획한 것이 서울여성영화제다. 97년부터 시작된 서울여성영화제는 올해까지 여섯 번의 잔치를 벌였다. 박경희, 박찬옥, 임순례, 정재은 등 젊은 여성감독들도 세상 밖으로 내보냈다.

“영화는 영향력이 가장 큰 매체이고 영화제는 세계 여성과 연대할 수 있는 축제의 장이다. 당분간은 서울여성영화제에 주력할 것이다. 더 많은 여성감독과 영화인을 지원하고 싶은 게 나의 바람이다”

이 대표는 앞으로의 여성문화 운동의 중요한 과제로 '국제연대'와 '차세대 인력양성'을 꼽는다. 그가 서울여성영화제에 힘을 쏟는 이유도 영화제를 통해 많은 여성들과 만나고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한편으론 일년 365일 내내 여성문화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수많은 여성문화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교육을 통해 젊은 여성주의자들을 키워낼 것이다. 그것이 곧 여성문화 운동의 제도화로 갈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우리가 키워낸 영 리더들이 각 정부 부처, 지역사회, 문화 현장에서 여성문화운동을 제도화하고 이끌어 나갈 것이다”

여문기획을 이끌어온 지 10년이 넘은 지금 이 대표는 콘텐츠가 아닌 공간에 대해 고민한다.

“수많은 여성예술가들의 작업을 어떤 공간에서 보여줄 수 있는지가 문제다. 앞으로는 여성주의 문화공간에 대한 구체화 작업을 해나가겠다”

비주류 감성의 리더십

- 박영숙 페미니스트 사진작가

여성성 피사체화대안적 사회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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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세대 페미니스트 사진작가 박영숙(60)씨의 출발은 의미심장했다. 75년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의 해' 기념사진전이 곧 그의 사진 데뷔전이었다. 이후 83년 '또 하나의 문화'에 합류하면서 페미니스트 세례를 받게 된다.

박영숙씨는 자신의 사진작업은 “99년 6월과 2001년 8월에 전시된 '미친년'프로젝트에서 보이듯이, 남성성에 의해 왜곡되지 않은 원시적인 여성성을 끄집어내도록 교육하는 것에 있다”고. 이러한 그의 사진작업은 99년 6월과 2001년 8월 '미친년' 프로젝트를 통해 나타난다.

그는 '미친년'이란 남성들의 입맛대로 움직여지고 수정된 정체성을 강요하는 문화와 제도, 도덕에 대해 반항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성들이라고 정의했다. 나아가 여성정체성을 갖게 된 '미친년'은 더 이상 미친것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는 초기 작품세계에서 남성의 시선에 의한 왜곡되지 않은 여성 삶의 경험-출산, 유방암, 수술흔적 등-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는 여성의 '몸'의 현실을 표현했다. 이 작업은 계간지 '이프'의 1년에 4번, 만 2년간의 표지작업 제작으로 이어졌다.

특히 박영숙씨는 62년 숙명여대 재학 당시 '숙미회'를 조직하고 98년 '한국여성사진작가협회'를 창설하는 등 사진활동을 통해 여성들을 조직하고 교육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

현재는 자신의 작업공간 '제3의 공간'에서 주부사진동호회 '민들레'를 운영하는 한편, 여문 기획 '문화아카데미'원장으로 여성주의 사진 교육에 힘쓰고 있다.

최근 헤이리 페스티벌 '우마드'전을 통해서도 박씨는 “분노, 풍요, 사랑, 죽음의 네 여신의 기둥이 만들어 내는 공간 속에서 지구의 문제를 풀 수 있는 대안으로서의 여성성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며 페미니스트 사진 작업활동에 계속 열정을 보이고 있다.

당당한 여성정체성의 리더십

- 윤석남 페미니스트 화가

어머니 '아픔' 화폭불평등 대중 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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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남(65)씨는 한국 최초의 페미니스트 전시회 '반에서 하나로'전을 연 여성주의 화가이자 설치미술가이다.

윤석남씨는 전업주부로 지내다 40세의 늦깎이 나이에 미술을 시작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미술활동과 함께 여성들의 모임과 활동에 관심과 열의를 가진 그는 여성신문 창간준비호의 표지를 맡았고, 97년 계간지 '이프' 창간 당시 발행인을 맡았다.

윤씨는 자신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93년 '어머니의 눈'전을 꼽는다. 그는 “전시된 어머니에게 보이는 여성의 아픈 역사는 관람자의 경험과 중첩되어 결국 불평등함에 대해 감지하는 눈을 갖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이것이 윤석남 작품활동의 모토이다. 그는 “여성으로 예술활동을 한다는 것은 작가 개인의 비전, 쾌락, 미적 감각의 프리즘을 통해 여성에 대한 불평등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그는 남성중심의 배타적 화단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페미니스트 미술가'라며 당당히 드러내왔다. 이러한 그의 일관된 여성주의적 작품세계는 기성 화단의 두꺼운 벽을 뚫었다.

윤석남씨는 96년 국무총리상과 97년 제8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며 남성중심의 주류 화단에 우뚝 서게 되었다.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철저히 비주류로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주류 화단에 발을 디딘 것에 대해 그는 “대중에게 어필할 미술의 형식에 대한 치밀한 고민 때문이었다”며 “미술활동은 전시회에서 관람객과 '소통'하는 작업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20∼40대 여성작가들로 구성된 후배그룹 '입김'의 보다 많은 작품 전시를 바란다는 윤석남씨는 “3년에 한 번씩이라도 전시를 하고 싶다”고 한다. 전시회를 통해 페미니스트 미술가들을 결집시키는 활동의 장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공존과 크로스오버의 리더십

- 김혜순 시인

남성중심 문단에여성언어를 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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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 나의 전범이 될 여성시인을 찾아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문단에는 남성의 권위, 남성의 표현, 남성의 언어가 난무했다. 여성의 몸으로 시를 쓴다는 것은 여성의 언어를 되찾는 작업이었다”

김혜순(49·서울예대 문창과 교수) 시인은 한국 문학계에서 보기 드문 '여성주의 시인'이다. 여성으로서, 여성의 삶 속에서 발견한 진실과 다른 사람, 존재와의 공존을 중요시하는 창작 작업을 해왔다.

“나의 삶과 내 안의 수많은 여성이 작품 속에 투영된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나와 다른 사람의 공존을 모색한다. 그것이 곧 남성주의의 산물인 권력을 배제하는 것이다”

김 시인은 80년대 초반부터 여성주의 예술가들과 공동작업도 꾸준히 해오며 여성주의 예술의 크로스오버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설치 미술가 윤석남, 사진작가 박영숙, 화가 정정엽, 여성학자 김영옥, 영화평론가 권은선 등이 그의 창작 동지다.

“여성 예술가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서로의 작품에 대해 평가하고 의견을 나누며 서로를 자극한다. 장르 간의 결합은 여성주의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결국 타자와의 공존을 모색하는 길이 되기 때문이다”

10월 10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평화선언 2004 세계 100인 미술가'전에 김 시인과 윤석남씨의 공동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김 시인은 윤석남씨의 '피 흘리는 집'에 평화를 기원하는 시구를 써넣었다.

문학계에 여성주의의 생명력을 불어넣은 김 시인은 문학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영상시대가 되어버린 지금 “시가 기능하지 않는 문화예술은 천박해지기 때문에 여성주의예술 운동가들이 시를 많이 접하고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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