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 직접 물어보니]
이재명·박광온 등 지도부 ‘묵묵부답’
2차 가해에 침묵 이유? “애도·모순·총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광온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광온 원내대표 등 지도부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여성신문·뉴시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을 부정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처음으로 입을 연 민주당 국회의원은 “민주당 소속 인사의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침묵하는 이 상황을 총선에서 국민은 반드시 평가할 것”이라고 말했다.

2차 가해 비판하던 의원들도 “묵묵부답”

여성신문은 박 전 시장의 성폭력을 부정하는 내용의 다큐멘터리 ‘첫 변론’에 대한 의원과 당의 입장을 묻고자 더불어민주당 소속 현직 국회의원 총 18인에 전화·문자메시지·이메일·의원실 등을 통해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들은 이재명 당 대표와 박광온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로서 중책을 맡고 있거나 여성 정책을 심의하는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속, 과거 박 전 시장 지지자들에 2차 가해 중단을 요구한 의원들이다.

의원에 전화와 문자메시지를 병행해 인터뷰를 요청한 경우에는 어떠한 응답도 받을 수 없었다. 전화를 끊고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문자 메시지를 보내주세요”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낸 의원에게 곧바로 문자로 내용을 전달했으나 읽기만 할 뿐 답장을 주지 않았다.

의원실에 인터뷰를 요청했을 땐 “답변을 하기 어렵다”고 거절하거나, “의원실 내에서 회의해보고 연락드리겠다”며 통화를 종료한 뒤 답신을 주지 않았다.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내라는 의원실에는 질의서를 제출했으나 돌아오는 답변은 없었다.

여성가족위위원회 소속 민주당 국회의원 전원에는 이메일로 질의서를 보냈으나 단 한 명도 답장을 주지 않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박 전 시장의 가해 사실을 인정하고 2차 가해를 비판하던 의원들도 전부 침묵했다. △타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박 전 시장의 성폭력을 인정했던 의원 △박원순·오거돈·안희정 세 광역자치단체장의 권력형 성범죄를 사과하며 대책을 약속한 의원 △“자신이 아는 박 전 시장이라면 피해자 비난을 멈춰주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라며 피해자에 대한 도 넘은 비판을 중단할 것을 요청한 의원 모두가 다큐멘터리 제작에는 말을 아꼈다. 

유일하게 목소리 낸 민주당 의원 “국민이 반드시 평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지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며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달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지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며 사과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인터뷰를 요청한 18명의 민주당 국회의원 중 단 한 명 만이 ‘박원순 다큐’를 둘러싼 침묵에 대해 자성의 목소리를 냈다. 익명을 요구한 A 의원은 “박원순 다큐가 나왔다는 사실은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한 번 더 무너지는 일”이라며 “자당 소속 인사의 사건에 대해 민주당이 침묵하는 이 상황을 국민은 반드시 평가하실 것”이라고 지적했다. 

A 의원은 “처음 박 전 시장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당이 조금 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상식에 맞는 조치를 했더라면 적어도 이번 다큐로 불거진 비판을 거세게 받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초기 대응에서 부족했던 부분이 분명히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벌써 사건이 발생한 지 2년여가 지났다. 불가능하겠지만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초기에 민주당이 조금 더 나은 대처를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굉장히 진하게 남는다”며 “개인적으로 지금의 논란은 당시에 미흡한 민주당의 대처에 대한 여진 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당의 침묵이 총선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측했다. “정당과 정치인이 평가받는 것은 결국은 표”라며 “어떤 평가라고 단정 지을 순 없지만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반드시 국민의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도·모순·총선… 의원들이 2차 가해에 침묵하는 이유

박지현·이수정·최혜정·류호정 ⓒ여성신문
박지현·이수정·최혜정·류호정 ⓒ여성신문

민주당이 박원순 다큐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성신문이 만난 각계 전문가들은 각자 다른 해석을 보이면서도 민주당이 침묵을 깨고 피해자의 곁에 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박지현 전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현 상황에 “본인들이 30년 넘게 함께 활동한 분들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기 위해 침묵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침묵을 애도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침묵은 묵인이고 묵인은 피해자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며 “정치인은 약자, 피해자 옆에 서야 하는데 민주당 정치인들은 그 본분을 다하지 않고 있다는 걸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공적과 과실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학교 교수는 “박 전 시장의 공적은 공적대로 인정하고 과실은 과실대로 인정하면 되는 거다. 처음 성추행 사건이 공론화됐을 때 ‘피해 호소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입장을 명확히 밝히지 못한 태도가 지금까지 민주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행적을 ‘모순’으로 정리하는 의견도 나왔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민주당에서 지난 5년 간 성폭력에 엄정히 대처하겠다는 노력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다. 다만, 정작 민주당 내부의 문제가 되면 성폭력을 부인하고 피해자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 왔다”며 “전대 미문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2차 피해를 갱신하고 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해온 여성단체 출신 의원들까지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박 전 시장 지지자들에 “먼저 사람이 되시라”고 일갈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은 “다큐멘터리를 언급해서 콘텐츠를 생산하면 피해자에게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이어서 조심스러운 면도 있을 거다”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도 “이미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 돼버린 거라면 피해자 곁에서 지지의 말을 해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당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박원순·최강욱 등 계속해서 발생하는 성추문 사건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그 결과로 주류 세력의 거센 공격에 시달리게 됐고, 이 상황을 지켜본 의원들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고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침묵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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