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사람을 살리는 일,
부엌은 누군가의 헌신 필요해 

사진=pixabay
사진=pixabay

 

딸이 취직해 독립한 지 몇 개월, 요즘은 직접 만든 음식들을 종종 SNS 가족 단체방에 올린다. 신입 사원의 박봉으로 매 끼니 사먹는 것도 부담이지만, 평생을 아빠 밥에 익숙해진 탓에 식당 밥도 밀키트도 성에 차지 않아 직접 해 먹기로 했단다. 난 속으로 박수를 보내주었다. 바쁜 직장생활에 시간, 노력도 여력이 없다 해도 자기 양식은 자기 손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요리는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는 일. 그 일을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온전히 맡길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아내한테서 반강제로 주방을 빼앗은 지 벌써 20년이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다짐으로 벌인 일이 어느덧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로 자리를 잡았다. 요리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 식당, 편의점, 밀키트 전문점…. 얼마든지 돈과 편의를 맞바꾸며 살 수 있지만 난 가급적 재료 하나하나를 직접 가꾸고 직접 다듬고 요리를 한다. 된장, 고추장도 담가 쓰고 식재료는 대부분 텃밭이나 산야에서 구한다. 물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만드는 음식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부엌 형태는 다양하고 다양하지만 그곳에 공통된 가치가 하나 있다면 아마도 사랑과 가족을 위한 헌신이리라.

다만 내 딸에게도 나와 같은 삶을 선뜻 권하기는 어렵다. 옛 어머니들처럼, 통념에 따라 무조건 주방으로 내몰릴까 두렵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위한 헌신도, 요리하는 공간도 중요하지만, 그 소중한 일이 누군가에겐 억압이 되고 족쇄가 된다. 그 공간을 관습이라는 이름으로 어느 한 사람, 특히 여성의 전유물로 강제한 탓이다.

이 사회는 여전히 살림을 자본주의 경제 활동에 필요한 보조 수단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경단녀,” “부엌데기”라는 이름의 차별과 혐오도 우리의 의식, 무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식의 인식이 부엌, 주방을 비천한 공간으로 만들고 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행복을 짓밟다. 가정에서 음식을 차리는 일이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그 일을 하는 사람이 불행하다면 과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과거에는 요리하는 공간과 밥상을 받는 공간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었다. 부엌은 여성들이 음식을 만드는 곳, 안방은 남성들이 밥상을 받는 곳이다. 남성은 절대 부엌에 들어가지 말아야 하며 심지어 여성들이 부엌 부뚜막에서 따로 식사를 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세상이 바뀌어 부엌은 주방으로 바뀌고 생활공간으로 편입되었건만 자신의 의사, 살림이라는 이름의 성 역할은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여성들의 몫으로 떨어지고 만다.

난 막 요리를 시작했다는 딸에게 조심스레 한마디 건네 본다.

“얘야, 네가 후일 가정을 꾸린다 해도 절대 네 의지에 반하는 선택은 하지 않도록 해라. 사회적 통념은 후회를 부르고 후회는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들 뿐이야. 네가 가족의 식사를 책임져야 한다면 네 의지로 선택하고 그 일을 소중하게 여기려무나. 어쨌든 부엌은 누군가의 헌신을 필요로 한단다. 타인이 그 일을 맡는다면 그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절대로 잊지 말거라. 너를 건강하게 해주고 네가 원하는 일을 하게 해주고 네 삶을 지켜 주는 분이니까. 언제 어디서 어떻게 살며 누구의 밥을 먹게 되던, 밥상뿐 아니라 그 상을 챙겨 주는 사람의 마음까지 함께 받아야 한다.”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조영학/ 번역가, 『상차리는 남자! 상남자!』 저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