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국민대 정치대학원 교수

한국 정치에는 일관성 있게 반복되는 3대 불변의 검증된 경험적 법칙이 있다. 첫째, '정권 실패 반복의 법칙'이다. 문민정부와 국민의정부 모두 초기에는 80% 이상의 압도적인 국민의 지지를 받으면서 출범했지만 그 이후에는 끝없는 지지도 하락으로 정권의 안정성과 효율성이 흔들리면서 실패했다. 현재의 참여정부도 정권출범 1년 6개월이 조금 지난 현시점에서 대통령의 지지도는 초기 70% 이상에서 반토막이 난 상태이다. 반면 미국의 퇴임 대통령의 경우, 레이건과 클린턴은 정권 출범 직후에 받은 지지율보다 정권 퇴임 직전에 받은 지지율이 높았다.

둘째, '정치 소용돌이의 법칙'이다. 우리 정치는 사회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인정하지 않은 채 냉철한 논리와 이성보다는 적당한 명분과 감성에 호소하면서 사회를 한 쪽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이 강하다. '반복적인 편가르기식 정치' '반대를 위한 반대'의 정치가 바로 소용돌이 정치의 단상이다.

셋째, '국민 요구 무시의 법칙'이다. 우리 정치는 국민이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어젠다를 철저히 무시한 채 자신들만을 위한 어젠다에 몰두하면서 국민에게 고통과 절망만을 안겨주고 있다. 최근 정치권을 대격돌의 장으로 몰아가고 있는 국가 보안법 존폐 논쟁과 친일 진상 규명 논쟁에서 보듯이 경제 살리기를 주문하는 국민의 요구는 무시된 채 정치권은 주도권 싸움에만 몰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요한 것은 왜 이러한 법칙들이 한국정치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지 그 근본 원인을 제대로 규명해서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새로운 법칙들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특히 시스템에 의한 정치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은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대두된다. 시스템 정치란 중요한 정치적 결정이 특정 인물이나 우연(偶然)에 의해서 지배되지 않을 때 가능하다. 그런데 한국정치는 원칙과 규칙에 부합하는 '제도화된(institutionalized) 권력구조' 가 아니라 '개인화되고(personalized) 견제받지 않는 권력구조'로 인해 특정 인물의 명령과 지시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대통령이 한 방송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의견을 피력한 지 4일 만에 국가보안법 폐지가 열린우리당의 당론으로 채택되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막는 것이 한나라당의 존재 이유이며 모든 것을 걸고 국가보안법을 지키겠다”고 당 대표가 선언하면서 국가보안법 폐지 반대가 한나라당의 당론이 되었다. 맨 마지막에 의견을 개진해야 할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먼저 나서서 결정을 해버리면 어떻게 일반 의원들이 자율성을 갖고 생산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겠는가. 당 지도부가 특정 현안에 대한 당의 입장을 의원들에게 설명하고 의견을 집약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최종 결정은 의원 스스로에게 맡기는 것이 성숙한 대의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지름길이다.

당론이라는 것이 미리 정해진다면 의원들은 단순한 거수기로 전락하면서 국회는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된다. 더구나 정당들이 당론을 정해 맞붙으면 집권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회는 파행으로 갈 수밖에 없다. 지금이라도 대통령, 여야 지도부, 의원들은 2002년 3월에 개정된 국회법 제114조의 2항 '의원은 국민의 대표자로서 소속 정당의 의사에 기속되지 아니하고 양심에 따라 투표한다'는 자유투표 조항을 읽어보고 그 뜻을 제대로 음미해 보길 바란다. 여기에 한국정치의 새로운 법칙이 만들어질 수 있는 지혜가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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