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더하는 말풍선]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이 글은 작품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삶을 긍정하는 것. 그것은 생애에 걸쳐 일어난 다사다난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일이자, 이 모든 일을 감내한 자신에게서 희망을 발견하는 일이다. 그리고 삶이 가치 있다는 말에 ‘그렇다’고 동의하는 일이다.¹

2020년 연재를 시작한 웹툰 ‘도무지, 그애는’은 많은 것을 긍정한다. 작품은 크고 작은 불행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며 살아가는 여성의 삶을 긍정한다. 판촉 시식 도우미에 따라붙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 ‘남들에게 보이기 부끄러운 일’이라는 사회적 편견이 감추고 있던 기쁨과 보람을 긍정한다. 삶의 어느 순간에도 노동을 멈추지 않았고 노동자로서 울고 웃었던 청년, 중년, 노년의 여성들은 이 작품의 주역이다.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스물아홉 여성 도무지는 자신을 돌볼 여력이 없다. 아픈 엄마를 부양하고 생활비를 버느라 꿈은 요원해졌다. “알바로는 안 해본 게 없는 것 같아요”라고 말하지만, 그가 할 수 있던 일은 제한적이었다 (69화). 청소나 편의점 아르바이트 같은 저임금 단순노동. 전형적으로 여성의 일이라고 여겨지는 식당 설거지 담당과 시식 도우미. 집 안에서도 노동은 계속된다. 청소하고, 요리하고, 세금을 내는 것 모두 딸인 무지의 책임이다. 무경력자여서, 비정규직이어서, 여자여서, 딸이어서, “뭐든 할 수 있는 나이라지만 뭘 할지 고를 수는 없었다” (45화).

새로이 시작하는 ‘오!해피마트’의 판촉 시식 도우미 아르바이트 역시 비슷한 결의 일자리다. 무지는 장시간 같은 자세로 서 있어 “발바닥이 터질 것 같”다고 느낄 때까지 강도 높은 육체노동을 해야 하고 (3화), 언제나 웃는 얼굴과 상냥한 목소리로 고객을 맞이하는 감정노동 역시 감당해야 한다.²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그런데 도무지 활기찰 수 없을 것 같던 무지의 일상이 복작복작해지기 시작한다. 일에 대한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선배 노동자들을 만나면서부터다. 중년 여성이 주로 종사하는 판매노동 업계의 특성상, 일하는 시간은 곧 다양한 여성 선배들과 교류하는 시간이다. 선배들이 무지에게 알려주는 시식용 음식을 맛있게 조리하는 법, 영업 멘트, 마트 단골들이나 어린이들을 대하는 요령 등은 마치 현실의 대화가 그대로 재현된 듯 생생해 독자의 이목을 끈다.

늘 무언가 요리하고 있고, 큰 소리로 고객을 부르고, 항상 웃고 있는 마트 아줌마들. 이들은 사실 보통 아줌마들이 아니다. 쉬지 않고 일해 세 명의 자녀를 키워낸 엄마 (54화), 언젠가 책을 쓸 미래의 작가, 자기 이름을 건 의상실을 운영했던 전직 사장 (59화). 모두 생계를 건사하느라 꿈과는 멀어졌지만, 여전히 삶을 긍정한다. 가족이 삶의 전부는 아니겠으나, 가족을 먹여 살릴 능력이 있다는 것은 이들의 자부심이다.³ 이들은 삶을 긍정하고 있고, 때문에 다시 꿈꿀 수 있다.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외로웠던 무지에게 선배 노동자들은 좋은 동료가 돼 준다. 기운이 없는 무지에게 마실 것을 건네주며 응원하는 조력자고, 꼼꼼하게 일을 가르쳐 주는 “스승님”이다 (25화). 자신을 믿어주고 이끌어 주는 연장자가 있다는 사실은 큰 위로와 소속감을 선사한다. 선배들과 교류하며 무지는 점차 밝아지고, 스스로는 물론 남을 돌볼 마음의 근력 역시 다지게 된다. 이 일을 초라하거나 일시적인 일이 아니라, 몰입하고 긍정할 수 있는 ‘지금’으로 경험하게 된다.

‘도무지, 그애는’은 노동의 어려움과 보람을 동시에 보여준다. 사회가 인정해 주지 않을 때도 여성들은 최선을 다해 돈을 벌고, 가족을 먹여 살리고, 삶의 보람을 찾아왔다. 하지만 여전히 시식 도우미를 비롯한 많은 직종의 육체 및 감정노동이 충분히 보상받고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작품을 통해 더 많은 시민들이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일하는 여성들에 대해 사유할 수 있다면 좋겠다. ‘도무지, 그애는’은 올여름 시즌2로 돌아올 예정이다.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게코 작가 웹툰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참고문헌

¹ 표준국어대사전은 ‘긍정하다 [肯定하다]’를 ‘그러하다고 생각하여 옳다고 인정하다’라고 정의한다. 영어 단어인 ‘affirm’의 경우 맥락에 따라 의미가 세분화되는데, 그 중에는 ‘삶의 가치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활동을 통해 확고히 하거나 강화하다’는 뜻도 있다 (Oxford English Dictionary, “affirm, v.”).

² 송다솜‧손승영. “20·30대 파견판촉직 여성의 노동경험과 젠더 특수성: 국내 3대 대형할인점을 중심으로.” 젠더와 문화> 제9권 2호, 2016, 85-113쪽. 

³ 경향신문 젠더기획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 휴머니스트출판그룹, 2022.

 게코. ‘도무지, 그애는’ 네이버웹툰, 2020~.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761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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