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16일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 개최
‘남성해방’ 저자이자 교육활동가
옌스 판트리흐트 이맨시페이터 대표 강연

네덜란드 남성해방단체 ‘이맨시페이터’(Emancipator)를 만든 남성 페미니스트 옌스 판트리히트 대표가 15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촬영 혜영/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네덜란드 남성해방단체 ‘이맨시페이터’(Emancipator)를 만든 남성 페미니스트 옌스 판트리히트 대표가 15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촬영 혜영/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계집애 같다’는 말이 두려워 ‘남성성’에 집착하는 남성들을 봅니다. 사회 변화에 앞장서는 여성들을 보며 내 역할을 위협받는다는 생각에 불안해하고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죠. 그건 우리가 갈 길이 아닙니다. 성평등은 남성에게도 좋습니다. 남성이 더 많은 기회를 누릴 길입니다.”

네덜란드 남성해방단체 ‘이맨시페이터’(Emancipator)를 만든 남성 페미니스트 옌스 판트리히트(Jens van Tricht) 대표의 일갈이다. 20여 년째 페미니즘이 왜 남성에게 좋은지 알리고 성평등 확산에 힘쓰는 활동가다. 최근 한국에서 저서 『남성해방』을 출간했다.  15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엔 그의 강연을 듣기 위해 150여 명이 모였다. 약 스무 명은 남성이었다.

네덜란드 남성해방단체 ‘이맨시페이터’(Emancipator)를 만든 남성 페미니스트 옌스 판트리히트 대표가 15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촬영 혜영/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네덜란드 남성해방단체 ‘이맨시페이터’(Emancipator)를 만든 남성 페미니스트 옌스 판트리히트 대표가 15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에서 기조강연을 하고 있다. ⓒ촬영 혜영/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판트리히트 대표는 두 가지를 말한다. 하나. 페미니즘과 성평등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그간 스스로를 가둬온 틀을 깨고 함께 자유로워지자는 운동이다. 고로 성평등은 남성에게도 좋다. 둘. 남성은 페미니즘을 통해 자신을 이해하고 더 많은 재능과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 사회 문제가 아닌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여성성’, ‘남성성’은 인간 누구나 지닌 무수히 많은 특질과 잠재능력의 다른 이름일 뿐”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이분법에 얽매여 ‘남자답게’, ‘여자답게’를 고집한다면 우리가 지닌 가능성, 재능을 포기하는 일이다.

“여성과 남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다는 내용의 연구 결과가 많은데요. 알고 보면 성별 간 차이점보다 공통점을 더 많이 지적합니다. 여성과 남성은 서로 단절되고 배타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마다 조금 더 ‘여성스럽’거나 ‘남성스러운’ 부분이 두드러질 뿐입니다.”

‘금녀의 영역’은 하나둘 깨지고 있다. ‘가장=남성’ 공식도 옛말이다. 변화가 낯선 남성들은 혼란스럽다. 페미니즘과 성평등에 대한 ‘백래시’로 이어진다.

“어떤 남성들은 ‘남자로서 나는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대한 답을 전통적 남성성에서 찾으려 합니다. 여성과 ‘남성답지 않은 남성’에 대한 배제, 폭력을 행하기도 하죠. 이건 우리가 갈 길이 아닙니다.” 

‘남자다움’에 갇히기 싫은, 이른바 ‘맨박스’로부터 탈출하고픈 남성들은 많다. 남성들 간 유대 형성을 위해 여성과 소수자를 착취하는 ‘해로운 남성성’에 반대해 목소리를 내는 남성들도 늘었다. “한국 20대 남성들은 이제 ‘강하고, 성공한, 위계질서에 복종하는 전통적인 남성성’을 거부하는 성향이 뚜렷하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

판트리흐트 대표는 ‘돌봄’을 남성들이 필히 배우고 소중히 여겨야 할 가치이자 역할로 제시했다. 육아, 가사노동 등에 남성도 뛰어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여성들이 도맡아 온 돌봄은 사실 인간이 생존하고 생산성을 발휘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기후변화 등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가능한 삶을 살려면 과장된 남성성, 여성성을 깨고 ‘인간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변화를 위해서 나서야 할 남성들은 침묵하고만 있죠.”

판트리히트 대표가 지속적인 성평등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가 만난 소년들은 “평소 ‘남자다워야’ 한단 압박감에 말 못 했던 주제에 대해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판을 깔아주면 아주 적극적으로 나선다”.

“교육은 씨를 뿌리는 일입니다. 누군가는 잊어버릴 수도 있지만, 누군가는 페미니스트로 성장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여성성을 비하하고 열등한 것으로 보는 전통은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지만, 여성운동의 성과는 눈부시다”며 “남성들도 동참한다면 더 많은 개선이 일어날 것”, “침묵을 깨자, 함께하자”고 강조했다.

15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가 열렸다. ⓒ촬영 혜영/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15일 서울여성플라자 국제회의장에서 ‘성별 인식격차 해소를 위한 포럼 잇-다’가 열렸다. ⓒ촬영 혜영/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제공

Q&A 시간엔 “남성해방이라지만 남성들이 폭력을 저지르게 하는 제도와 문화는 그대로 두고, 남성들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주는 데 그치는 것 아닌가”라는 날카로운 지적도 나왔다.

“결국 가부장제를 없애야 한다. (제도적 변화를 위한) 정치세력화도 중요하다. 그 전에 제도와 개인 차원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남성들이) 깨달아야 한다. 남성들은 누르기만 하면 문제가 해결되는 버튼을 원한다. 그런 건 없다. 여러 세대에 걸친 다양한 개입과 노력이 필요하고, 변화는 일상에서 시작돼야 한다.”

조영숙 전 양성평등대사는 “남성이 변화하지 않으면 성평등은 불가능하다. ‘남성해방교육’이 성평등 교육의 또 다른 축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부장적 역풍에 맞서는 남성들의 글로벌 연대’도 강조했다. 

이날 행사는 서울시성평등활동지원센터, 한국-유럽연합시민사회네트워크가 공동주최하고 유럽연합,  젠더교육플랫폼효재가 후원했다. 판트리히트 대표는 이달 말까지 서울, 부산, 제주, 광주를 돌며 북토크를 열고 성평등과 남성성 문제에 관심 있는 시민들과 활동가들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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