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영화 ‘정이(JUNG_E)’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 사진=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SF 영화 ‘정이’. 사진=넷플릭스 제공

정(JUNG, affection)이라는 정서(emotion)

‘어머니’라는 제목의 시를 낭송하다가 북받치는 감정을 누르지 못해 주저앉아 우는 몇 젊은이들을 본 일이 있다. 한 자리에서 여러 사람이 그랬는데 필자로서는 참 서운하고 야릇한 정서에 휩싸이던 순간이었다. ‘이미 어머니의 역할을 한 사람이라서’라는 내 감정에 대한 변명과 함께 그들의 감정이 신기했던 것도 분명하다. 받은 애정을 돌려줄 대상(자녀)이 아직 없는 사람들이라서 가슴에 차 있는 것이 눈물로 넘쳐나온 것일까. ‘부모에게서 받아 자식에게 준다’ 하지 않던가.

영화 ‘정이’의 우리말 제목만으론 추론이 어렵지만 넷플릭스에 공개된 영문 제목(JUNG_E)을 보니 연상호 감독이 관객에게 의미 추론 게임을 제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목을 던져 놓고는 미로를 설정, 뻔히 보이는 길이지만 ‘감독의 문제의식’이라는 시원한 출구가 보이지 않는 미로를 장시간 헤매야 한다. 그러다가 영문 제목(상품명)을 다시 보면 영화 속 AI의 이름이라기보다 AI도 인간과 같은 정서를 가질 수 있는지 묻고 있음을 본다. (정_Emotion)

인간이 있는 곳에 현실적으로 상존하는 신파적 요소가 미래를 배경으로 한 SF 영화 속에 있다 해서 안 될 것은 없다. 신파적 요소가 불가해한 정서에서 비롯되는 한, 부재를 원해도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는 배우 강수연의 유작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정이’는 배우 강수연의 유작이다. 사진=넷플릭스 제공

자의식 경험과 행동의 예측

복제 뇌를 장착한 안드로이드를 생산하는 회사 크로노이드의 AI 연구팀장 윤서현(강수연 분)이 받는 윤리 테스트의 항목은 ‘경험’에 관한 질문으로, 인간과 AI를 구분하면서 AI 연구원으로서 적합한 성향 여부를 테스트한다. 우수한 전투 용병이었던 어머니 윤정이(김현주 분)의 뇌 복제 연구를 하면서 긴 세월 동안 냉정을 유지해왔고 여덟 번의 윤리 테스트를 통과한 서현이 시한부 삶을 목전에 두고 일으키는 심경의 변화와 갈등은 윤리가 아닌 개인의 도덕 체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해당 영역이 다르다. 경험(행동)을 묻는 테스트로는 예측할 수 없는 ‘미확인 영역’의 돌발 행동은, 두 개체 사이에 특별하게 존재하는 ‘정’이라는 정서가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정서(emotion)가 인간의 고유물인지도 연구 대상이겠으나 ‘딸에 대한 기억은 다 지웠음’에도 불현듯 떠오른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이 가져다 준 모녀의 특별한 애정 행위(부비부비)는 그래서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팀장님, 윤리 테스트 어느 회사에서 받으셨어요?” AI 연구소장 상훈(류경수 분)의 질문은 테스트의 항목 혹은 항목에 대한 평가가 하나로 통일된 것이 아니라 ‘회사’마다 다름을 시사한다. 그 자체가 ‘인간’의 ‘다양성’이자 아직 ‘발견’ 진행 중인 영역에 해당하는 일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관객을 불편하고 우울하게 하는 것은 관객의 ‘자의식’이다. 뇌 복제로 재생한 자신을 상상하는 일이 불가능할 뿐 아니라 자신을 능가하는 복제 인간을 상상하는 건 더 어렵기 때문이다. 상상도 경험의 산물이다.

20세기 공상과학 소설들이 이미 고민한 인간과 로봇의 공존이 이미 현실이 됐는데도 인간은 AI보다 우위에 있다고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의 두뇌를 장착한 AI 상훈을 회장은 ‘적당히 쓰다 버리는’ 장난감으로 여기지만 상훈이 품고 있는 회장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그저 픽션(fiction)일 수만은 없다. 

넷플릭스 영화 ‘정이’ 속 뇌복제 AI 전투 로봇. 사진=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영화 ‘정이’ 속 뇌복제 AI 전투 로봇. 사진=넷플릭스 제공

욕망과 죽음 사이에서 ‘플래닝(planning)’하는 인간

크로노이드 회장의 안드로이드인 상훈이 A 타입(인간의 권리를 지닌)이라면, 서현에게 윤리 테스트를 진행하고 죽기 전에 B 타입 뇌 복제 시술을 권하는 이 AI 의사의 모습이 바로 B 타입이다. 뇌의 활동만 있을 뿐 한 곳에 붙박이로 고정돼 공적 기능을 수행하는 AI. 과학자인 서현 역시 뇌 복제를 택할 경우 자신의 미래를 눈앞에서 보고 있는 셈이다.

복제 뇌를 의체로 옮기는 시술의 세 가지 선택지는 결국 현세 인간의 삶의 질의 복제와 반복이라는 아이러니와 냉소를 보여준다. 문명과 복지에 대한 냉소이기도 하다. 재생을 향한 욕망의 충족이라기보다는 경제력에 따라 이미 정해져 있는 길 혹은 확실한 죽음이 ‘선택’일 수는 없다. 반면 딸의 삶을 위해 자신의 삶과 죽음 조차 포기(C 타입, 복제 뇌의 상품화)한 정이에게 ‘딸에 대한 기억이 삭제’된 자신만의 삶을 돌려주는 일은 서현이 인간다운 ‘플랜’으로 행한 ‘선택’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관객의 상상 안에 있는 공감 가능한 일이므로 비로소 안도하게 된다.

희망의 서사는 관객의 몫

아버지의 부재, 성(윤)이 같은 모녀, 엄마를 해방시키는 딸이라는 상황의 ‘통일성’은 페미니스트 시각을 전제하면서, 영화가 끝나는 순간, 관객으로 하여금 탈출한 정이 AI에게는 모종의 눈부신 활동과 흥미로운 일상, 나아가서는 사회 공익을 우선하는 AI 개발회사 등등 여운과 아쉬움, 기대를 갖고 일어서게 한다.

배우 강수연을 위해 서둘러 한 편을 찍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하더라도, 어렵지 않은 메시지를 들고 관객에게 다가와 대화를 청하는 감독이 친근하다. 뛰어난 배우들이 인간 내면에 대한 연구와 상상력으로 캐릭터를 표현해내고 감독은 시나리오의 아웃라인 밖으로 나가지 않게 재능껏 통제하는 게 영화 작업의 기본 틀이라면 ‘정이’는 흥미를 일으키기에 적절하다.

크로노이드 회장의 성격이 과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안드로이드인 상훈은 그래서 조금 부족해 보이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회장 자신이 상훈에게 애정을 갖고 있지 않은 것, 상훈이 회장에 대한 과잉 애정으로 서현 모녀와 대적하는 씬은 복제 뇌로 태어나는 안드로이드에게 연민마저 느끼게 한다. 21세기의 사분의 일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인간과 AI의 공존의 문제가 동시대인들의 현실적인 문제임을 떠올리게 한다.

필자: 문수인 작가. 시집 '보리밭에 부는 바람' 저자. 현재 SP 영화 인문학 강의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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