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가족에 권리·의무 부여 ‘생활동반자법’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국내 첫 발의
장애인, 청소년 등 포용하는 개선 필요

세계가정의날을 맞이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가족으로 여기던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토론회를 15일 서울 영등포 국회에서 열었다. ⓒ박상혁 기자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가족으로 여기던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토론회를 15일 서울 영등포 국회에서 열었다. ⓒ박상혁 기자

친구 가족, 노인 공동체, 중장년 동거 커플, 성소수자 커플, 장애 공동체… 결혼이나 혈연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수많은 관계들이 한국에서도 가족으로 인정받는 날이 올까.

세계 가정의 날인 15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가족으로 여기던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국회 토론회를 열었다.

혼인·혈연만 가족? 제도가 현실 반영 못해
국민 10명 중 7명 “결혼 안해도 함께 살면 가족”

이날 패널들은 “결혼한 이성이나 친족만을 가족이라고 여기던 세간의 인식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는 최근 통계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2021년 여성가족부 조사에서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더라도 함께 거주하고 생계를 공유하면 가족이 될 수 있다”에 조사자 61.7%가 동의했다.

통계청 ‘2022년 사회조사 보고서’에서도 전체 응답자의 65.2%가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함께 살 수 있다”고 답했으며, 특히 20~30대 청년층은 5명 중 4명 꼴로 대다수가 비혼 동거에 찬성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인식을 반영하듯 성소수자 커플, 비혼 동거 관계, 노인 공동체, 장애 공동체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들을 법적인 공동체로 인정하는 제도는 없다. 

성소수자 소성욱씨는 2019년 동성 배우자와 결혼식을 올린 뒤 건강보험공단에 사실혼 개념으로 결혼을 신고하고 피부양자 자격을 취득했으나 2020년 자격을 빼앗겨 소송을 진행했다. 뿐만 아니라 주거 지원·의료 상황·장례 처리·세금 혜택 등 결혼 가정에 주어지는 수많은 권리와 의무는 모두 이성 부부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가족 형태에 대한 인식 변화를 발제한 변수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은 변화와 수용의 준비가 돼있는데 제도를 포함한 우리의 사회적 환경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제도 및 정책 변화 등 사회가 이끄는 변화가 반영돼 차별이 감소하는 환경으로 나가야 한다”며 다양한 가족을 포용할 수 있는 제도의 변화를 강조했다.

다양한 가족에 권리와 의무 부여하는 ‘생활동반자법’

세계가정의날을 맞이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가족으로 여기던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토론회를 15일 서울 영등포 국회에서 열었다. ⓒ박상혁
세계가정의날을 맞이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을 가족으로 여기던 기존의 규범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상상하는 토론회를 15일 서울 영등포 국회에서 열었다. ⓒ박상혁

이성 부부가 아닌 다양한 가족들이 법적으로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가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용혜인 의원 외 10인의 의원들은 지난달 26일 ‘생활동반자관계에 관한 법률’(이하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용 의원은 “친밀함과 돌봄을 실천하는 모든 가족을 국가가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법안의 취지를 밝혔다.

생활동반자법은 대한민국 국적 또는 영주권을 가진 두 성인이 상호 합의에 따라 생활을 공유하며 돌보는 관계를 '생활동반자관계'로 규정한다. 생활동반자는 동거·부양·가사·채무·입양·사회보험 등 혈연·혼인에 의한 가족에게만 주어진 권리와 의무를 동일하게 갖게 된다.

예를 들어 생활동반자 당사자는 소득세법 상 인적공제를 받을 수 있고, 국민건강보험법 상 건강보험의 피부양자 자격을 받을 수 있다. 생활동반자의 출산과 질병에는 배우자 출산휴가와 가족돌봄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위급 상황에 생활동반자의 의료결정도 할 수 있으며, 상대자 사망 시 당사자를 연고자에 포함한다.

생활동반자관계 당사자 쌍방 혹은 일방이 관계 해소를 원하거나, 동반자가 사망하거나, 동반자 외 다른 사람과 혼인하는 등의 경우에는 생홛동반자관계가 해소된다.

생활동반자법과 같이 성별과 무관하게 성인 2인 이상의 결합을 인정하는 제도는 프랑스, 독일, 벨기에, 영국과 미국 일부 주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시행되고 있다. 대표 사례로 꼽히는 프랑스는 1999년 PACS(pacte civilde solidarite) 입법 후 공동생활을 꾸리는 성인 2인에 소득세, 출산휴가, 시민권, 상속권, 공동양육권 등 법률혼에 준하는 권리를 보장한다.

해외 사례를 소개한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이번에 발의된 생활동반자법은 혼인과 혈연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가족을 법적으로 보호하는 의미에서 중요한 근거가 될 것”이라며 법안의 의의를 밝혔다.

생활동반자법을 두고 소위 '어른들만을 위한 법'이라는 비판이 나오기도 한다. 가족 제도의 유연화로 인해 쉽게 가족이 해체되거나 출생률이 낮아지고, 동거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버려지는 등 아동의 권리가 낮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순남 가족구성권연구소 대표는 "혼외출생률이 1위인 아이슬란드의 경우 가장 성평등 지수가 높고, 국민의 고립지수가 낮다. 아울러 프랑스의 PACS 제도 역시 혼인 외의 아동을 보호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라며 생활동반자법은 아이들을 보호하는 데 효과적인 정책임을 강조했다.

장애인, 청소년 등 포용하는 개선 필요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장애인복지시설 중심으로 장애복지체계가 운영되는 한 장애인은 일상생활과 가사 공유에 초점을 둔 생활동반자법의 적용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용혜인 의원실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장애인복지시설 중심으로 장애복지체계가 운영되는 한 장애인은 일상생활과 가사 공유에 초점을 둔 생활동반자법의 적용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용혜인 의원실

토론회에서는 생활동반자법이 진정한 의미에서 다양한 가족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여러 차원에서의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고나영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장애인복지시설 중심으로 장애복지체계가 운영되는 한 장애인은 일상생활과 가사 공유에 초점을 둔 생활동반자법의 적용 대상이 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현재 제도로는 장애인이 시설을 나와 일반 가정에서 생활할 때에 소요되는 비용을 동반자가 대부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나영 활동가는 장애인의 생존과 돌봄에 대한 책임이 또 다시 국가의 역할이 아닌 가족의 역할로 전가될 수 있다며 “생활동반자법이 내가 원하는 삶과 관계를 상상할 수 있는 제도로서 실현되려면 탈시설이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 그리고 당사자가 생활동반자 관계를 형성하고 싶을 때 이를 지원할 제도적 기반과 조력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점을 명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활동반자관계 기준을 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현 발의안에 따르면 미성년은 생활동반자관계 적용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그룹홈과 같이 청소년이 포함된 가족은 생활동반자관계로 인정받지 못한다. 또한 노인 공동체, 장애 공동체 등 3인 이상으로 구성된 공동체도 생활동반자관계로 엮일 수 없다. 이에 송효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제도와 정책에서 현 입법안에 포함되지 못한 이들을 포용하는 개선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