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2020년 7월 13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차려진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시민분향소가 철거되고 있다. 사진=뉴시스·여성신문

필자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인간적인 인연이 있다. 젊은 시절 시국 사건으로 감옥에 갔을 때 박 변호사가 변호인을 맡아주었다. 박 전 시장이 정치를 시작한 이후로는 가끔씩 조언을 청하는 등 이런저런 관계가 있었다. 그러니 세상을 떠난지도 여러 해가 지난 고인의 부정적인 부분을 자꾸 들추어 내는 일이 필자로서는 인간적으로 곤혹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가 생의 마지막 시간들 속에서 성추행의 가해자가 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인권변호사로서 존경받으며 살았던 생의 전부가 부정될 일은 아니라고 믿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다시 박 전 시장 얘기를 꺼내게 되는 것은 그의 성추행 사실을 부정하는 2차 가해 행위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박원순 다큐멘터리 제작위원회 '박원순을 믿는 사람들'은 박 전 시장을 다룬 다큐 영화를 오늘 7월에 개봉한다고 밝혔다. 공개된 영화 포스터에는 '세상을 변론했던 사람. 하지만 그는 떠났고, 이제 남아있는 사람들이 그를 변호하려 한다'는 문구가 담겼다. 박 전 시장의 성추행을 부인하고 그를 옹호하는 내용의 영화임을 분명히 하고 있어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우려가 제기된다. 그러나 다큐를 제작한 김대현 감독은 "1차 가해에 대한 여러 의문들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것을 2차 가해로 몰아갈 수 있는 것이냐는 의문이 있다"며 성추행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그런 입장은 과연 합리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일까. 익히 알다시피 박 전 시장은 지난 2020년 7월 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후 국가인권위원회는 6개월 간의 직권 조사 끝에 2021년 "피해자에 대한 박 전 시장의 성적 언동은 성희롱에 해당된다"는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이어 서울행정법원 행정8부는 지난해 11월 박 전 시장의 배우자인 강난희 씨가 인권위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했다. 재판부도 "박 전 시장의 행위가 피해자에게 성적인 굴욕감이나 불편함을 줬다고 보여 피해자가 성희롱을 당했다고 인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첫 변론' 포스터 ⓒ박원순을믿는사람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을 다룬 다큐멘터리 '첫 변론' 포스터 사진=박원순을믿는사람들

한편 김재련 변호사는 2021년 1월 14일 내려진 법원의 판결 내용 중 일부를 최근 공개했다. 이는 박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를 또 성폭행한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에 대한 판결인데, 재판부는 이 판결문에서 박 전 시장의 가해사실을 인정했다. 여기에는 글로 옮기기조차 민망한 구체적인 사례들이 적시되어 있다. 또한 이 판결문은 "박 전 시장이 서울시 특보에게 '피해자와 문자를 주고받은 것이 있는데, 문제를 삼으면 문제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며 "특보에게 ‘아무래도 이 파고는 내가 넘기 힘들 것 같다’라는 텔레그램을 보냈다"고 밝혔다. 극단적 선택을 앞둔 시점에서 했던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가는 상식으로 판단할 수 있는 일이다.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은 사실상 가해 사실의 인정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하지만 곧 개봉하겠다는 ‘박원순 다큐’는 국가기관의 조사 결론, 법원의 판결, 상식의 판단들을 모두 송두리째 부정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이 근거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박 전 시장에 대한 믿음, 좀더 본질적으로 말하자면 자기들은 나쁜 짓을 하지 않는다는 진영의 신념이다. 세상에는 악하기만 한 인간도, 선하기만 한 인간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인간은 선과 악이 혼재되어 그 사이 어디 쯤에 있다고 보는 것이 옳다. 평생을 존경받으며 살아온 박 전 시장의 마지막이 그렇게 끝나버린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고인의 명예를 위해 피해자를 거짓말쟁이로 만들며 다시 고통을 안기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들의 안타까운 마음은 마음 속에 묻고 피해자를 위로하는 것이 그래도 한 시절 ‘진보’를 말했던 사람들이 보여야 할 예의가 아니겠는가. ‘박원순 다큐’는 개봉하지 않는 것이 우리 사회의 퇴행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윤리이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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