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책] 신호위반 하는 배달 기사 뒤엔 ‘AI’와 ‘플랫폼’이 있다
[이주의 책] 신호위반 하는 배달 기사 뒤엔 ‘AI’와 ‘플랫폼’이 있다
  • 이수진 기자
  • 승인 2023.05.11 17:25
  • 수정 2023-05-14 16: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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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
박정훈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배달노동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인근에서 라이더유니온이 개최한 '2023 라이더대행진'에 참가해 용산대통령실까지 가기 위해 출발하고 있다. ⓒ뉴시스
배달노동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인근에서 라이더유니온이 개최한 '2023 라이더대행진'에 참가해 용산대통령실까지 가기 위해 출발하고 있다. ⓒ뉴시스

배달 라이더들은 우리의 소중한 한 끼를 전달해주는 고마운 존재였다가도, 도로에서 만나면 위험천만한 무법자들이라며 손가락질의 대상이 된다. 상반되는 평가 아래 라이더들에 대한 혐오도 커졌다. 라이더들의 사고 소식에도 “보나마나 신호위반 했을 텐데 죽어도 할 말 없다” “내 앞에서 얼쩡거렸으면 밀어버릴 텐데”라는 댓글이 달린다. 배달 라이더들은 왜 욕먹는 무법자가 돼버렸을까.

배달을 하는 치킨집에서 일했던 경험이 있다. 사장은 라이더들이 배차를 받고도 10분이 지나도록 오지 않으면 늘 “전화하라”고 했다. 빨리 오라고 독촉하라는 거였다. 이미 바쁘게 오고 있을 그들에게 위험 운전을 부추기는 것 같아 내키지 않았지만, 사장이 지켜보고 있으니 별수 없었다. 매번 미안한 마음으로 “혹시 어디쯤 오고 계신가요” 조심스레 물으면 라이더들은 항상 달리는 오토바이 소음을 배경으로 “곧 도착해요” “최대한 빨리 가고 있어요”라고 답했다.

이처럼 ‘빨리빨리’를 요구하는 가게 점주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추려면 라이더들은 ‘무법질주’를 하는 수밖에 없다. 신호와 중앙선 등 교통법규를 전부 지키면 아무리 숙련된 사람이라도 ‘빠른 배달’을 할 수는 없다.

지난 5일 배민플랫폼노조 라이더들의 파업에 이어 10일, 라이더유니온이 서울 여의도 일대에서 용산구청 앞까지 파업 도로 행진에 나섰다. 업계에 미치는 타격은 미미하다는 게 주된 평가지만, 계속해서 길거리에 피켓을 들고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이들의 ‘작업장’인 도로가 여전히 안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달플랫폼기업은 도로를 “죽음을 생산하는 배달공장”으로 만들었다. 2022년 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77명 중 배달노동자가 절반 이상인 39명이다(고용노동부 ‘산업재해 발생’ 현황, 2023년 2월 발표). 난폭운전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대부분은 난폭운전을 할 줄도 모르는 초보 라이더들이다. 서울시가 2021년 라이더 101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사고 경험이 있는 764명 중 400명이 1년 미만 종사자로 가장 비중이 높았다.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박정훈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박정훈 지음, 한겨레출판 펴냄) ⓒ한겨레출판

일각에서는 “왜 욕심을 부려서 여러 건을 묶어 배달하냐”는 지적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배민’ ‘요기요’ 등 배달 플랫폼이 개발되며 라이더들은 최저시급이 아니라 건당 배달 수수료 3000~3500원만 받으며 일하게 됐다. 플랫폼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서 최저시급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은 안전을 배달하지 않는다』를 쓴 박정훈 작가에 따르면, 한 건을 배달하는 데 평균 20분 정도가 소요된다. 한 번에 한 건씩만 배달한다면 1시간에 많아야 1만500원을 번다. 월 400~500만원은 번다는 구인광고를 보고 뛰어든 라이더들은 좌절한다. 그리고 이내 5건씩 묶어 정신없이 휴대전화 화면을 누르며 ‘콜’을 받고 배달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라이더들을 위험으로 내모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배달플랫폼기업은 AI 알고리즘을 이용해 라이더들의 노동 환경도 통제한다. 주문량이 적고 라이더 숫자가 많은 지역은 배달료를 최저로 낮춰 근무지 변경을 유도하는 식이다. 기업만이 알 수 있는 이 정보에 기반해서 배달료가 수시로 바뀌기 때문에, 라이더는 자신이 수행하는 노동의 대가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박 작가는 이를 “알고리즘이 설계한 도박판”이라고 꼬집는다.

위험이 클수록 딸 수 있는 판돈이 커진다는 점 역시 도박과 닮았다. 비나 눈이 오는 날에는 높은 배달료를 받을 수 있지만,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날에는 배달료가 낮다. ‘1시간에 3건 이상 배달하면 5000원, 일주일에 275건 이상 배달하면 65만원 지급’과 같은 조건을 내건 프로모션도 라이더들을 위험으로 내몬다.

배달노동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인근에서 라이더유니온이 개최한 '2023 라이더대행진'에 참가해 생종권보장이라 적힌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배달노동자들이 10일 오후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인근에서 라이더유니온이 개최한 '2023 라이더대행진'에 참가해 생종권보장이라 적힌 손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시스

배달플랫폼기업은 배달노동을 ‘외주화’하면서 과거 기업들이 짊어졌던 안전과 같은 책임을 라이더 개인에게 떠넘겼다. “배달 경험 없어도 누구든지 쉽게!”(쿠팡이츠 배달파트너 앱)라는 광고 문구처럼, 초보 라이더를 최대한 많이 유입시키려고 한다. 여기서 안전과 숙련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당연히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 박 작가는 이같은 현상을 두고 “도시와 시민을 사유화하면서도 책임은 지지 않는 플랫폼”이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현실을 개선하고자 라이더유니온은 이날 파업을 통해 △라이더자격제 및 대행사등록제 시행 △라이더 생활임금 보장 △알고리즘 협상권 보장을 요구했다. ‘라이더자격제’는 유상운송보험도 안 들고 배달할 수 있는 상황, 안전교육도 받지 않아도 되는 현재의 배달 시장의 상황을 극복하고 최소한의 자격(보험, 안전교육 등)을 갖춘 라이더가 배달할 수 있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알고리즘 협상권’은 배달 플랫폼이 사용하는 AI 알고리즘의 데이터 하나하나를 생산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주체인 라이더들이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빠른 배달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은 플랫폼기업의 욕망, 안전하게 도로와 도시를 이용하고 싶은 시민들의 권리, 빠르게 음식을 배달받으려는 소비자의 욕망, 빠른 배달을 통해 많은 수익을 올리고 싶은 라이더의 욕망이 도로라는 물리적 공간에서 충돌할 때 사고가 발생한다.

안전하고 행복한 라이더가 있어야, 이들의 존재로 편의를 누리는 시민도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다. 교통법규를 위반하는 라이더 개개인을 욕하는 것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이익을 누려온 기업이 안전이라는 가치를 위해 노력하지 않는 한 라이더들은 계속 무법질주를 해야하고 배달 사고는 반복될 것이다. 이제는 기업이 외면해온 책임을 져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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