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윤석열 정부 1년을 맞아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인 ‘윤석열 정부 1년 정책 평가 및 제언 토론회 - 표류하는 성평등 정책 방향키 잡기’를 마련했다. 참가자들은 △총론 △젠더폭력 △노동 △가족/돌봄/복지 △평화 △정부를 주제로 발제했다. 토론회에서 나온 발제를 요약해 싣는다.

‘여성가족부 폐지’를 앞세운 윤석열 정부의 여성/성평등 정책은 사실 평가할 만한 것이 없다. 정책 자체가 가치와 목표는 물론 사업 단위까지 소실되었거나 축소되었고, 간신히 명목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추진의지나 예산을 볼 때 별로 기대할 바가 없기 때문이다. 국회의 반대로 정부조직법에서 여가부 폐지는 이루지 못했지만, 실질적으로 여가부의 기능은 무력화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윤정부의 여성/성평등 정책 1년의 결과는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을 지우고 ‘성평등’을 삭제한 정부.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을 정리하면 그렇다. ‘여성’을 지웠다는 것은 정책의 목표와 과제에서 ‘여성’을 주체로 호명하고 수혜자로 불러낼 정책을 축소했거나 삭제했다는 것, 정책의 기획과 집행·평가의 전 과정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파트너로서 여성단체와의 협력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성평등’을 삭제했다는 것은 여성가족부를 포함한 전 부처 정책의 비전과 목표에서 성평등 이념을 철회했다는 것, 그럼으로써 성평등 사회의 실현이라는 민주주의의 지향점을 상실했다는 것,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되돌림으로써 젠더와 성(섹슈얼리티)에 관한 정체성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소수자집단을 배제한 채 이분법적인 성별 대립구도를 강화시켰다는 것을 뜻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윤석열 대통령이 26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러한 정책의 퇴행은 2023년 여성가족부 업무추진계획이나 예산, 「제3차 양성평등정책 기본계획」(2023-2027)에서 명확하게 나타난다. 「업무계획」은 추진방향으로 ‘동행, 미래, 혁신’을 제시하고, 3대 목표로 ‘약자에게 더 따뜻하고 안전한 사회 조성’, ‘저출산·저성장 위기를 극복할 미래인재 양성’, ‘촘촘하고 든든한 지원을 위한 사회서비스 고도화’를, 6대 핵심과제로 ‘다양한 가족을 촘촘하게 지원’ ‘5대 폭력 등 범죄피해자 보호·지원 확대’를 설정하고 있다.

그런데 제목만 보면 어떤 부처의 계획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추진방향은 어떤 구체적인 가치나 지향을 담고 있지 않으며, 3대 목표는 여성가족부라기보다 보건복지부의 목표에 가깝다. 핵심과제에서도 여성가족부의 정체성이나 고유의 책무성을 찾아보기 어렵다. 이유는 과제명의 어디에도 ‘여성’도 ‘성평등’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5대 폭력’ 과제에서는 ‘여성폭력’ 대신 ‘폭력’을 사용함으로써 의도적으로 ‘여성’을 지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직면해 왔다.

이러한 비판은 여성운동과 여성정책공동체의 주체로서 ‘여성’ 집단을 더 이상 국가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 성평등민주주의에 대한 여성들의 목소리를 공적 담론의 영역에서 소거시키고 여성의 집단적 존재를 드러나지 않게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여성의 사회적 인정, 경제적 분배와 재분배, 정치적 대표성의 문제를 따져 묻는 젠더 정치를 공적 맥락에서 밀어내고, 여성을 취약계층으로 보고 잔여적 복지의 대상으로 축소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평등’ 가치가 여성정책의 비전으로 등장하기 이전 요보호여성 정책으로의 회귀와 같다.

2023년도 최종 확정된 여성가족부 예산은 1조 5678억원으로 전년도에 비해 5.8% 증가했다. 여가부의 예산은 당초 정부가 제출한 안보다 국회 여가위 예결산소위를 거치면서 증액된 것이다. 정부안에서는 주요 사업의 예산이 전년 대비 감소됐고 특히 성평등 정책 의제 개발, 성인지예산제도 운영, 온라인상 악플이나 혐오표현을 개선하기 위한 양성평등 인식 개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한 국제회의를 위한 예산이 감축되거나 삭제되어 있었다. 그 결과 “이런 예산서는 본 적이 없다”, “부처에서 나서서 예산을 받지 않겠다는 것은 이례적” (이보라, <한겨레21: 법 만드는 법> 1440호.)이라는 지적을 받았다.

윤정부의 이러한 퇴행은 젠더관계의 불평등성에 대한 구조적인 이해를 차단하고 개별 사안에 대한 일시적인 처방으로 정책을 제한한다. 성별 임금격차는 노동시장과 조직 내 성차별과 성별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노력보다는 여성의 직업훈련 확대 같은 처방으로 개선될 수 있다는 인식으로 축소된다. 스토킹 같은 성폭력도 성별(젠더)과는 무관한 개인들 간의 우연한 범죄 사건으로 정의된다. 그 결과 성평등 가치와 성인지적 관점은 소실되고, 노동시장과 가족 내 성별 격차나 젠더폭력이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에서 발생하며 다시 성별 격차나 젠더폭력을 재생산하는 요인이라는 사실은 보이지 않게 된다. 그러한 퇴행의 최종 결과는 노동시장과 가족 등 사회 전반에서 확대되는 성별 격차로 귀결될 수 있다.

윤석열 정부 1년이 이제 막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 4년이란 시간 동안 여성/성평등 정책은 어떤 퇴행을 거듭하고 어떻게 변질될 것인지 예측조차 어렵다. 퇴행하는 정책의 폐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여성들과, 그들과 같은 문제의식을 가진 남성들이 이 문제를 모를 수 없다. 그러므로 분노와 저항도 거세지고 있다. 윤정부의 ‘젠더게임’에서 당장의 승자가 누구인지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더 많은 국민들을 등 돌리게 하는 이 정책의 결과는 긴 호흡에서 보면 자명하다. 그런 점에서 윤정부의 여성지우기는 실패했고 또 실패할 것이다.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본인 제공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본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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