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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년간 ‘젠더갈등의 정치’는 한국사회를 크게 흔들어 놓았다. 갈등의 성격이 무엇이든 간에, 젠더 의제가 주류 정치의 중심에 등장하고, 수많은 청년 남녀가 에너지를 쏟아부었던 참으로 이례적인 시간이었다. 그런데 어느샌가 온라인 커뮤니티도, 언론도 잠잠해졌고, 젠더 이슈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도 뜸해졌다. 뭔가 문제가 해결되어 사그라진 건 아니니 지금의 소강상태를 마냥 반길 일은 아닌 듯하다.

2022년 양대 선거를 거치며 젠더갈등 정치의 주된 프레임으로 ‘페미니즘 대 반페미니즘의 대립’ 구도가 자리 잡았고, 여기에는 페미니스트들도 한 축을 담당했다. 구조적 성차별의 존재와 성평등정책의 필요성을 부정하며 등장한 정치세력을, 페미니스트들은 백래시 세력으로 규정하며 대항했다. 그러나 이러한 프레이밍이 페미니스트 정치의 외연과 깊이를 확장하는 데 성공적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먼저 특정 정당의 정치인부터 이들을 지지한 청년 남성들까지 죄다 ‘반페미니스트’ 세력으로 선 긋는 구도가 페미니스트 정치의 지지 기반을 축소시킨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여러 조사에서 확인된 바, 청년 남성의 상당수는 페미니즘에 대해 부정적이지만, 또 상당수는 젠더폭력 근절, 여성 경력단절 예방 등의 성평등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적극적 조치와 같은 특정 정책에 크게 반대하지만, 여기에는 페미니즘에 우호적인 청년 여성들의 반대도 적지 않다고 보면 페미/반페미 이분법의 단순 적용에는 무리가 따른다.

페미 대 반페미 대립이 구체적인 실체라기보다 ‘상징’으로서의 성평등정책, 여성가족부의 존립을 둘러싼 싸움으로 전개되면서, 그동안 추진된 성평등정책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여가부의 기능과 역할이 적절했는지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이 축소되었다는 점도 안타까운 일이다. 일단 지키는 게 페미니스트 정치의 목표가 되면서, 성평등정책의 혁신에 관한 논의를 개방하여 더 많은 국민의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는 제약될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점은 청년 남녀가 페미니즘 또는 반페미니즘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자기 세대의 곤란을 페미니스트 정치 의제로 충분히 포용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돌이켜 보면 청년 여성과 청년 남성은 모두, 성별과 관계없이 경쟁으로 성취하라는 신자유주의의 주문과 여전히 전통적 젠더관계에 따른 역할과 책임을 강요하는 가족, 기업, 사회제도들 사이의 모순을 들추어 왔다. 그런데도 ‘여자라는 게 더 이상 중요치 않다면서 왜 출산을 강요하냐’는 청년 여성의 불만은 페미니즘의 언어를 빌어, ‘남자다운 게 의미 없어진 시대라면서 군대는 왜 남자만 가야 하냐’는 청년 남성의 불만은 반페미니즘의 언어를 빌어 제기된 상황은 페미 대 반페미 구도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다.

이렇게 보면 젠더갈등 정치는 청년세대 남녀가 자신들과 불화하는 성별화된 낡은 사회제도의 전환을 요구하는 데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의 절박한 외침은 주요 정치세력이 미래사회 성평등의 비전과 더 강력한 실행전략을 마련하도록 하는 데 이르지 못한 채 사그라지고 있다. 이 국면에서 불씨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세력은 아마도 페미니스트일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성급하게 퇴행과 반동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기보다, 젠더갈등의 정치가 기존 페미니스트 정치의 어떤 공백 혹은 의도치 않은 효과를 드러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김원정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성평등전략사업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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