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명절 캠페인 ‘웃어라, 명절!’ 6년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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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여성민우회는 99년 ‘나의 여성차별 드러내기’캠페인을 통해 가장 많은 여성들이 경험하고 느낀 생활 속 차별이 ‘명절, 제사상의 성차별’임을 알 수 있었다. 이에 99년 추석부터 평등한 명절을 지내자는 캠페인을 기획하고 ‘좋은 명절 만드는 다섯 가지 방법’지침서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남자도 명절을 바꾸고 싶다’‘함께 일하고 함께 쉬는 신나는 명절’‘남성들이여, 설거지부터 시작하자!’등의 대안명절 만들기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웃어라, 명절!’ 캠페인은 명절과 제사의 문제를 사적인 공간에서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사회가 함께 대안적인 명절문화를 고민하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했다.

우선 언론에서의 변화는 눈부시다. 과거 방송에서는 전통가옥과 함께 남성들은 차례를 지내고 여성들은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모습에서 지금은 평등한 명절을 보내는 가족의 모습을 담은 현장을 보여주기도 하고 여러 대안명절 사례를 찾아 보여주기도 한다.

민우회로 전화를 걸어오는 일반 시민들의 반응은 더욱 현장감이 있다. ‘전통 파괴’라며 호통 치는 사례도 있지만 가족, 이웃과 함께 보겠다며, 아이들 학교교재로 쓰겠다며 평등명절지침서를 보내달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현재의 답답하고 힘든 명절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만큼 현실에서의 명절문화도 그에 따라 확 바뀌어야 하지만 아직도 그 길은 멀리 있는 듯하다.

2002년 민우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명절이 변해야 한다는 의식은 높지만(77%) 여전히 명절노동에서 여성들의 몫이 대부분이라고 한 응답이 80%나 차지한다.

명절문화 바꾸기 캠페인은 우리들의 의식을 바꾸어내고 그것을 실생활에서 실천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웃어라, 명절!’캠페인의 6년 성과로 의식의 변화는 상당 부분 진전됐지만 실천의 모습을 찾기란 그리 쉽지 않다. 아직은 머리 속에 그리며 용기 있게 먼저 나서서 바꾸는 것이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여전히 평등명절캠페인은 계속돼야 한다.

좋은 명절, 평등명절을 지내는 일곱 가지 내용 중에 올 추석엔 하나라도 실천한다는 다짐을 해보자

① 온 가족이 웃는 명절계획을 세워보자!

② 명절 일은 남녀 모두가 함께 해보자!

③ 형편에 따라 형제자매, 시댁과 친정 구분

없는 명절을 지내보자!

④ 음식과 차례상은 간소하게 하자!

⑤ 조상 모시기는 고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⑥ 모두가 함께 즐거운 명절놀이를 찾아보자!

⑦ 이웃과 정을 나누는 명절을 만들어보자!

김선화 한국여성민우회 회원참여팀 팀장

우리집은 어떤가

미혼-정애리 (39·간호사)

“한적한 직장에서 보내는 명절도 괜찮아요”

딸만 6명, 아들 1명을 둔 우리 가족은 여섯째인 나만 빼고 모두 결혼해 자식을 두었다. 서른 살이 됐을 때부터 친척들은 나만 보면 집요하게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한살 두살 더 나이를 먹게 되니 명절 때마다 만나는 친척들이 반가움보다는 거북한 느낌을 주는 사람들이 되었고, 어느새 나는 명절 때 고향집(부산)을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게 됐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는 직장을 핑계로, 명절 무렵이 되면 휴일 근무를 자원하게 됐다. 명절날 병원에 있는 나를 보고 동료들은 안됐다고 생각했는지 음식을 싸들고 와서 위로해 주었지만, 나는 솔직히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정말 마음이 편했다. 결혼하지 않고 독신으로 있는 나를 뭔가 모자라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휴일날 한적한 사무실에서 갖는 여유로움도 즐길만했기 때문이다. 명절을 일주일 정도 앞두고 고향집에 다녀오니 고속도로 체증으로 인한 어려움도 겪지 않는다. 나로서는 일석이조인 셈이다. 서른다섯 살이 넘고 나니 스스로 독신이란 점이 어색하지 않았다. 지난 구정 땐 서둘러 기차를 예매해 고향집에서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잠시 우리 집에 들른 친척들은 이제 더 이상 내게 결혼계획을 묻지 않았다. 내년이면 나도 마흔에 접어든다. 삶의 방향이 명확해지는 것 같다. 내가 온전히 나 자신을 인정할 때 친척들을 비롯해 다른 사람의 시선은 별 의미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새댁-이지현(31·회사원)

“달력에서 2월, 9월이 없어졌으면…”

공기업에서 일하는 나는 직장생활 6년 경력의 커리어우먼이면서 결혼생활 2년째를 맞고 있는 새내기 주부다. 지난해 11월에 결혼했으니 결혼생활은 만 1년이 안됐다. 결혼 뒤 내게 2월과 9월은 가장 두려운 달이 됐다. 왜냐하면 2월과 9월에 설과 추석 명절이 끼어있기 때문이다. 남들은 휴일이 많아서 좋다고 할지 모르겠지만 내게는 ‘지옥의 달’이다.

새해 첫날과 설 명절을 모두 남편 고향인 대전에서 보냈다. 이번 추석 역시 시댁에서 보낼 예정이다. 남들은 연휴를 이용해 휴식을 취하러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는데 나에게는 꿈 같은 얘기일 뿐이다.

평소 두 시간이면 갈 거리를 배가 넘는 4시간, 6시간 동안 가는 것도 고역이지만 낯설기만 한 시댁식구와 함께 연휴를 보내는 것도 마음이 편치 않다. 둘째 며느리라서 차례준비를 도맡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설거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스트레스다. 무엇보다 연휴 마지막 날 밀리는 귀경 차량 대열에 끼여 서울로 돌아와 쉬지도 못한 채 바로 출근을 하게 되는 것이 가장 힘이 든다. 추석을 앞둔 지금은 차라리 서울에 남아 출근을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정도로 남편 고향으로의 귀향이 싫다.

결혼 10년차 -안명숙 (40·직장여성)

형제들 명절 이제 그만, 자매들이여 도발하자

명절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시댁의 지나친 형제애에 어깨가 결리도록 감동하고 와야 할 것이다. 결혼 초 아이가 없을 때는 남편은 나름대로 평등가장(?)이었다. 추석을 쇠러 시집에 갔을 때에도 기름투성이 접시들 설거지와 걸레 빨아 방도 닦더니 어찌된 일인지 아이를 낳아 일거리가 배로 늘자 그는 나보다 더 먼저 명절에 지쳐갔다. 결혼 10년차 되기 훨씬 전부터 추석 명절에 그는 시댁에서 귀여운 막내동생으로 방바닥에 누워 골아 떨어져 버린다.

“나 일하는데 애 좀 보지”하면 미안한 듯 뒤척이는 남편을 내려다보며 큰 시아주버니 한 마디 하신다. “놔두세요, 피곤해하는데, 제가 하죠 뭐”

아, 지나치게 눈부신 형제애에 눈살이 찌푸려지지만 나의 피곤함과 분노는 엉뚱한 곳으로 화살을 돌린다. “너, 엄마가 동생이랑 싸우지 말랬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하며 사촌 동생과 장난감을 사이에 두고 전을 부치며 날려진 밀가루와 기름 낀 장판에서 뒹굴고 있는 아들을 닦달한다. 그 때 손위 동서 말하기를 “애들이 그렇지 뭘 그래, 동서 걸레 좀 빨아, 방 닦게”라고 일손을 재촉하고 속으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자기보다 더 먼저 와서 일했는데 왜 명령하고 난리야.

명절은 따뜻한 가족애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증은 결혼 10년이 되기 훨씬 전부터 사라져버렸다. 지금의 가족으로는 추석이 포근한 감색 계절의 황금연휴일 수 없다. 적어도 내겐. 가부장들을 영합하고 단결시키는 의식으로서의 명절이 해체되기 위해서는 자매애의 도발이 간절히 필요하다. 이번 추석엔 말해보려 한다.

“형님, 남편들과 추석 일거리 반반씩 나눠서 우리 것만 하고 애들 놔두고 영화나 한편 때리고 오지? 어때 오케이?”

지방여성-이성혜 (48·주부)

“여자는 인간이 아니구나…탈출구는?”

9월 달력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쉬었어요. 웬 연휴가 그렇게 긴지”

5남매 중 넷째 며느리인 영천시 청통면에 사는 이성혜씨는 추석을 생각하니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다. 그러나 근무날짜를 확인한 그는 묘한 미소를 띄운다. 지난 5월부터 출산육아휴직 대체인력으로 비록 비정규직이지만 일을 하게 되었는데, 마침 추석날이 근무였기 때문이다.

“시어머니께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어요. 뭐라 하실지 무서워서요. 동서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지만 사실 한숨 놓았어요”라는 이씨. 추석 전날 아침부터 시댁에 들어가 늦은 밤까지 음식준비 하고 다음 날 아침 차례를 지낸다.

“솔직히 힘은 들지만 입 밖으론 내지도 못해요. 입 다물고 성난 거처럼 일만 해요. 솔직히 내 조상도 아니고 남편의 조상을 모시는 건데, 정작 남자들은 사우나로 바둑으로 심심하다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는 꼴을 보면 정말 화나죠”

더구나 서울에 사는 두 명의 손위 동서들이 ‘늦게 나타나 일찍 사라지는 전법’을 쓰는 바람에 더더욱 돌아버린다는 대목에서는 나도 공감했다.

아니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었다. 밥 먹을 때가 더욱 문제였다.

상은 기본 세 개. 시아버지와 맏조카인 종손이 한 상, 남자어른들만 한 상, 시어머니와 조카들이 한 상인데 이 상에는 여자아이는 앉을 수가 없다. 덕분에 여대생인 조카는 남녀차별이 너무 심한데 반발하여 화도 내고 사정도 했지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자 결국 명절날에는 오지 않고 있다. 그러면 여자들은 언제 밥을 먹느냐고? 세 개의 상에서 사람들이 다 일어나면 각 상의 남은 반찬으로 밥을 먹는단다.

그래서 이씨는 명절이 너무 싫은 가장 큰 이유로 “집안에서조차 여자는 정말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구나를 새삼 절실히 느끼게 된다”는 것을 주저 없이 꼽는다.

경북=권은주 경북여성 긴급전화 기획관리부장

ejskwo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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