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약 습관 공유하는 ‘거지방’ 등장
“경제 상황 힘들지만 놀이로 극복”
익명성에 기대 짠물 소비관 공유
무지출 챌린지·디지털 폐지 줍기 등
제4의 짠테크 문화 나올 가능성도

거지방 대화 내용 재구성. 일러스트=이은정 디자이너
거지방 대화 내용 재구성. 일러스트=이은정 디자이너

Q “5월 연휴 때 여행 가고 싶어요” 
A “여행 유튜버 영상 보세요”, “구글맵 로드뷰로 구경하세요” 

최근 SNS상에서 우후죽순 생기고 있는 절약 오픈채팅방인 ‘거지방’에 여행을 가고 싶다고 쓰자 들은 답변이다. 스스로 거지를 자처하고 소비 전 허락을 구하거나 지출 내역을 공유하는 거지방이 인기다.

고물가가 이어지며 짠테크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하루 동안 단 1원도 쓰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부터 온라인상에서 푼돈을 긁어모으는 ‘디지털 폐지 줍기’, 절약 습관을 타인과 공유하는 놀이 형태의 오픈채팅인 ‘거지방’까지 등장했다.

3일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는 ‘거지로 살아남기’, ‘계획적 소비를 위한 거지방’, ‘안 먹고 안 쓰는 거지방’ 등 다양한 거지방 수백 개가 운영 중이다. 

최근 기자가 들어간 거지방에는 1100여명의 회원이 있다. 연령층은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했다. 거지방에선 지켜야 할 사항이 있다. 이모티콘을 사용할 때는 직접 그린 것 혹은 무료 이모티콘만 써야 한다. 거지방에서 돈 자랑을 하거나 구걸 하면 강퇴(강제 퇴장) 당한다. 고가의 음식 사진을 공유하는 것은 금지지만 직접 요리한 음식은 자랑할 수 있다.

거지방 한 회원이 “아이패드를 사고 싶은데 따끔한 조언 부탁한다”고 말하자 다른 회원들은 “수첩 없냐”, “볼펜 한 자루와 종이로도 충분하다”, “어차피 사봤자 유튜브만 볼 텐데 왜 돈을 쓰냐”고 일침을 가했다. 무선 헤드셋인 에어팟 맥스를 사고 싶다는 회원에겐 “유선 이어폰이나 사라”, “여름 다가오는데 어차피 더워서 애물단지 된다”, “사치다”라고 말했다.

반려동물·효도 비용은 OK

그러나 거지방에서도 반려동물, 효도 등에 쓰는 것은 아끼지 말라고 조언했다. 한 회원이 “부모님 생신 선물 -245,000원”이라고 하자 “효도는 인정합니다”, “이건 지출 인정입니다”라고 칭찬했다. 또 다른 회원이 “돈을 아끼고 싶은데 강아지 간식값은 아끼기 미안하다”고 하자 “반려동물한테는 아끼지 말자”, “강아지랑 고양이 먹이는 것은 사치가 아닙니다”, “반려동물도 가족입니다”, “나는 굶어도 반려동물은 못 굶긴다”라는 답들이 쏟아졌다.

거지방에선 절약 노하우를 공유하며 웃음을 주는 대화가 오간다. “샐러드 -12,000원”이라고 하자 “한강 가서 풀 뜯어 먹어라”라고 하거나 “노래방 가고 싶다”는 글엔 “에코가 야무진 화장실을 추천합니다”, “유튜브에 노래방 검색해서 부르세요” 등의 의견이 이어졌다.

거지방이 오픈채팅이라는 익명성에 기대 자신의 경제관념에 대해 솔직한 생각을 전할 수 있는 창구라는 의견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아직도 인스타그램을 보면 ‘욜로’(YOLO·현재 자신의 행복을 가장 중시하고 소비하는 태도)다. 여전히 명품 자랑 게시글이 많다”며 “인스타그램은 익명이 아니기 때문에 이른바 자신의 구질구질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명품을 올린 사람 모두 경제 사정이 좋다고 볼 수 없다. 연출된 사진들도 분명히 있을 것”이라며 “반면 거지방은 익명이 보장되기 때문에 자신의 진실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거지방의 탄생 원인에 대해 “욜로에 대한 반감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현실을 직시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서로 절약 정보를 주고 소비에 대한 평가·조언도 주고받는다. 현실은 힘들지만 재미있게 극복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교수는 무지출 챌린지·디지털 폐지 줍기·거지방 이후 제4의 짠테크 문화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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