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얽힌 언어의 고찰 풀어낸 작가 이유하천

신간 소설 '내가 증오한 사랑'으로 가부장제 사랑이데올로기의 허구성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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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유하천 씨의 작품엔 독특한 매력이 있다. 책을 여는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행간에 스며있는 분노와 열정, 이 때문에 신작이 나올 때마다 독자는 결코 예전 작품을 기억할 수도, 또 어느 정도 익숙해질 틈도 없다. 93년 '조용히 쓸어라, 대지는 깊이 잠들지 않는다'를 시작으로 '불타는 대지'(97), '나는 제사가 싫다'(2000)가 다 그러했다.

최근 출간된 그의 장편소설 '내가 증오한 사랑'은 파격적인 편집과 함께 사랑에 대한 여성역사를 마치 서사시를 읊조리듯 독자에게 음미케 한다. 물론 그 역사는 승리보다는 패배의 역사지만, 그 가운데서도 '생존'의 가능성은 희망처럼 제시된다. 한 남자의 끈질긴 구애에 결혼 문턱을 넘어선 젊은 여성이 남편의 배반과 죽음을 딛고 새로운 사랑을 만나지만, 그도 남성적 사랑의 이중성으로 결국 진정한 사랑으론 거듭나진 못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상처는 여주인공을 한층 강하게 성숙시킨다. 어찌 보면 단순한 플롯인데, 사랑의 복잡다단한 메커니즘이 빼곡히 들어차 있을 수 있는 것은 왜일까.

“20대 초반에 결혼해 10여 년이 넘는 세월을 남편의 유학을 위해 외국(캐나다)에서 보내고 귀국한 후 문화적 충격으로 10여 년간 칩거생활을 했다. 그 후 소설 창작을 시도하면서 우리나라가 마치 내 몸을 칭칭 동여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근데 그게 바로 '가부장제'였다…그 고통으로 온 몸이 활활 불타는 것 같았다”

글 쓰는 행위는 이 작가에겐 한 외국 작가의 표현처럼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과정'이다. 그리고 구체적으론 (가부장 사회관행에 익숙해진) 어머니와 시어머니의 '패배'적 언어를 탈출해 당당한 '승리'의 언어를 독립적으로 구사해나가는 작업이다. 언어는 바로 '정신의 먹이'이기 때문이다. 작가의 분석으론, 여성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패배'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은 바로 남성들이 이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며, 간혹 '승리'의 언어를 구사하는 여성과 마주치게 되면 남성들은 돌연 긴장하고 경계하면서 이런 여성을 경원시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곧바로 한국의 남성 위주의 문단 풍토와도 직결된다고 작가는 생각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한 중견 남성작가가 인터뷰에서 “아내가 나더러 '당신은 여자를 몰라'라고 했다”는 말을 버젓이 하더라며, 여자의 감성과 언어를 이해 못하는 것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는 사회에 대해 강한 질타를 보냈다.

“어렸을 때부터 우리 사회에서 늘 쓰는 언어인데도 왠지 듣기만 하면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원숭이처럼 팔짝 팔짝 뛰었으니, 난 참 우리 어머니에겐 감당 못할 딸이었을 것이다. 이후 나의 언어를 새롭게 발견하는 작업은 곧 나의 땅을 발견하는 작업이었으며, 이를 통해 나는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그래서 작가는 '내가 증오한 사랑'에서 가부장제 언어의 폭력성을 “내 가슴에는 수많은 못이 박혀 있다”고 읊는다. 결혼에 실패한 딸을 '부러진 손가락'으로 인식하는 어머니가 던지는 남성적 언어행위에 대해 “이상하게 어머니가 입만 열면 튀어나오는 패배적 언어에 점점 나 자신이 증발해 버릴 것 같은 위기감마저 느낀다”고 하소연한다. 그래서 그에겐 남성 사회에 길들여져 타자화된 어머니의 언어는 바로 “수천 개의 언어의 대창”이다.

평론가 황광수씨는 “작가가 이 소설을 쓰면서 (길들여지고 타자화된 언어를 해방시켜 자기 언어를 만들어가니) 너무 너무 행복했겠다”고 부러워한다. 책 말미에 “이제 절대로 도망 다니거나 방관하지 않겠다고 나 자신과 굳게 약속을 했지요”라고 재차 다짐하는 작가. 그의 다음 작품에 한층 격렬해진 행복감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박이은경 기자pleun@

“여자의 사랑은 왜 더 아플까"에 대한 따뜻한 러브레터

가부장 사회 '사랑'진단서 <내가 증오한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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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랑을 꿈꾸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정작 진정한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의 사랑은 진실하다고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우리들의 사랑의 진정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소설이 있다. 이유하천의 최근작 '내가 증오한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 사회가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느끼지 못하고 있던 가부장제의 모습과 모순에 대해 깊은 성찰을 보여주었던 작가가 이번에는 사랑을 얘기한다.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그러나 가부장제와 사랑이라는 전혀 별개의 문제가 사실은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고 해석될 수 있다는 충격을 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여성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꿈꾼다. 그러나 그 사랑이 대부분 변해가고 때에 따라서는 사랑으로 인해 좌절하게 된다. 이기적이고 권위적인 마음이 가슴 속 깊이 박혀 주어진 기득권을 아무 비판 없이 누리려고 하는 남자들과, 그런 남자들에게서 왠지 모를 피해의식을 느끼면서도 때로는 남자들의 권위 하에서는 면죄되는 의무로부터 도피해서 적당히 안주하려는 이중적인 마음의 여자들이 나누는 사랑이 온전할 수 있을까? 애초에 진정한 마음이 부족한 상황에서 우리의 사랑이 출발한다고 작가는 보고 있다. 그래서 특히 여자인 나의 사랑이 어려울 수밖에, 아플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진정한 사랑에 어려움이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려움을 겪고 난 뒤에 맞이하게 되는 상황이 인간으로, 여자로, 남자로서 자유롭고 성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많이 가지고 있느냐 하는 여부가 관건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내가 증오한 사랑'은 사랑에 대한 막연한 믿음과 기대를 여지없이 깨는 신랄한 통쾌함이 있다. 동시에 진실하다고 생각했던 내 사랑이 어쩌면 진실되지 못할 수 있다는, 나를 완전히 뒤집어 보기도 해야 하는, 아무런 편견과 제약 없이 나와 주위를 들여다 봐야하는 당혹감과 어려움을 안겨주기도 한다.

놀라운 사실은 작가가 여자를, 남자를, 사랑을, 자식을, 부모를, 사회를 가부장제적인 맥락에서 바라본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가부장제는 권위와 권력의 구조가 무비판적으로, 일방적으로 작용하는 현상을 지칭한다. 가부장제의 극복이라는 주제에 대해 작가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과제인 것이다. 남자도 여자와 똑같은 피해자요 가해자이고 단지 여자에게 더욱 직접적인 피해가 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남녀 간의 문제뿐만 아니라 부모자식, 친구, 동료, 사회구성원 간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존재한다. 가부장제는 집안에만 존재하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을 작가는 지적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 그냥 여자와 남자가 아니다. 현실을 버겁게 살아가는 복잡한 마음과 심리를 가지고 있는 존재로서의 여자와 남자이다. '내가 증오한 사랑'은 그런 소중한 마음과 경험들이 모여 만들어야 하는, 우리가 당당하고 아름답고 행복하게 나눌 권리가 있는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언젠가 누군가에게 썼던 것과 같은 간절한 러브레터이며, 우리 주위에 널려있는 사랑이 지닌 모순과 한계를 보여주며 참된 자유와 성숙을 주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해주는 글이며, 우리 사회를 향한 진지한 외침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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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영 부산대학교 평생교육원 외래교수

'책읽기를 통한 정신치료연구실'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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