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도경 /

<뉴스위크>한국판 편집장

80년대 비축했던 농축 우라늄 처리문제가 마치 죽은 망령이 되살아난 것처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라는 소설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잡초 같은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는 듯한 기묘한 느낌이 든다. 한국 정부는 과연 국제사회 몰래 핵무기를 개발하려는 계획을 중단하지 않았던 것일까. 최근 우리 측의 핵문제를 둘러싼 외국 언론의 호들갑을 보면 이런 혐의가 짙다. 하지만 막상 이에 대한 한국정부의 뒤죽박죽 대응과 관련 기관의 반응을 종합해보면 한국의 핵문제는 '태산명동 서일필(泰山鳴動 鼠一匹)'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커 보인다.

80년대 당시 우리나라가 핵개발을 포기하는 전 과정은 미국에 의하여 감시되고 통제됐다. 한 마디로 전 과정을 지켜보았던 것으로 안다. 또 우리의 방위기술은 공격적인 핵무기로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을 탑재할 능력도 없을 뿐만 아니라 재래식 미사일 기술에서도 오히려 북한에 뒤져있기 때문에 공격용 핵무기를 자체 생산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미국이 잘 알고 있다. 더군다나 노태우 전 대통령은 91년 11월 8일 자발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선언까지 했다. 평화적인 목적의 핵 이용조차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자충수적인 선언이라 국내적으로 비판이 만만치 않았지만, 이런 상황에서 20년간 의구심이 갈만한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은 가능성이 매우 낮은 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이 핵문제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코너로 몰리고 있는 처지가 된 데는 핵개발 그 자체보다 다른 이유가 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이 상황을 보면 100년 전 구한말의 혼돈을 다시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개화파와 수구파가 충돌하는 상황에서 주변국인 일본, 청나라, 러시아는 마치 대한제국의 내분을 기다렸다는 듯이 한반도 내정에 개입해왔다. 1894년의 동학혁명과 청일전쟁, 1904년의 러일전쟁, 1905년의 을사보호조약과 1910년 한일합방에 이르는 과정은 사실상 당시 내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강국들 간의 철저한 약육강식의 논리에 의해 진행됐다. 그리고 한반도는 이들 중 최종 승자인 일본의 손에 넘어갔다.

97년의 IMF 위기도 결국은 외국자본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일어났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국제자본의 도미노적 일시적인 상환요청에 외환유동성 문제가 일어난 것이었고, 국가부도를 막기 위해 불과 60여일 만에 100조 원의 원화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이런 도미노 현상의 시발은 태국에서 손해를 본 일본계 자본에서 촉발됐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100년 전 구한말 봉건왕조가 자신의 안위를 위해 인접국의 군대를 끌어들인 데서 위기의 원인이 비롯됐다면 IMF는 국내 유입된 국제자본이 바로 그 역할을 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떤 행위도 마다하지 않는 국제질서 속에서 한국이 자존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실로 심각하게 생각해볼 시점이 온 것 같다. 최근 남한의 핵개발 문제로 국제사회가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반도에 핵위기가 극대화될 경우 가장 이익을 볼 수 있는 나라는 어느 나라일까를 곰곰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세계 패권을 쥐고 있는 미국의 속셈도 궁금하지만 최근 일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일본은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전범국이라는 원죄로 인해 군사력에 관한 한 아직도 강력한 제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반도에서 핵 위기가 고조될 경우 일본은 재무장의 좋은 빌미를 잡게 된다.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사회에서 한반도에서 불어오는 핵위협 만큼 재무장의 좋은 계기는 없을 것이다.

최근 남한의 핵개발 의혹에 대해 일본 언론이 연일 앞다퉈 1면 톱기사로 지면을 장식하는 모습을 보면 이런 의혹이 더욱 짙어진다. 미국과 일본은 누구보다 남한이 핵개발을 할 능력이 없음을 잘 알법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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