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해외입양인 작가 30여 명
해외입양 70년 맞아
‘모국’ 주제로 80여 점 전시
5월2일까지 인사동 마루아트센터

리사 울림 셰블룸, ‘Palimpsest’, 2016 ⓒ이세아 기자
리사 울림 셰블룸, ‘Palimpsest’, 2016 ⓒ이세아 기자

리사 울림 셰블룸(Lisa Wool-Rim Sjöblom) 작가의 그림 속 한반도는 거대한 자궁이다. 잠든 아기의 살갗에 수십 명의 이름이 새겨졌다. 한국을 떠나 해외로 입양된 아이들의 이름과 일련번호, 이들이 거쳐 간 국내 아동기관 목록이다.

눈 덮인 숲길을 홀로 걸으며 중얼거리는 사람의 그림이 그 옆에 걸렸다. “도둑맞았어. 나는 도둑맞았어.”(Stolen, I was stolen).

리사 울림 셰블룸, ‘Stolen’, 2022 ⓒ이세아 기자
리사 울림 셰블룸, ‘Stolen’, 2022 ⓒ이세아 기자

셰블룸 작가에게도 ‘도둑맞은’ 정체성이 있다. 한국 이름 정울림. 두 살 때 스웨덴에 보내졌다. 자기 뿌리를 찾다가 한국의 해외입양 산업 구조를 추적해 알리는 활동을 하게 됐다. 20년간 친생가족 찾기 과정을 그린 그래픽 노블 『나는 누구입니까』(2018)도 펴냈다. 지난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 해외입양 과정에서의 인권침해 여부 조사 신청서를 제출한 입양인들 중 한 명이다.

해외입양 70년을 맞아 국회와 서울 인사동에서 열린 전시에도 참여했다. 주제는 ‘모국’(motherland). 그를 포함해 미국, 독일, 캐나다, 덴마크, 프랑스,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 등 세계 13개국 입양인 작가 30여 명이 작품 80여 점을 선보였다.

작품 하나하나 깊은 감정이 담겼다. 그래서 눈길을 오래 붙든다. 낫지 않은 상처를 드러낸 작품이 많아 보는 마음이 시리다. 지난 23일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 행사엔 100여 명이 모였다. 작가들은 연민과 고뇌를 작품으로 승화시킨 이야기, 다른 입양인들과 소통·연대하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지난 23일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 행사 현장. 사진작가 임안나 상명대 교수가 인삿말을 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지난 23일 인사동 마루아트센터에서 열린 작가와의 대화 행사 현장. 사진작가 임안나 상명대 교수가 인삿말을 하고 있다. ⓒ이세아 기자
아나 블레이즈, Floating with the river ⓒKADU 제공
아나 블레이즈, Floating with the river ⓒKADU 제공

아나 블레이즈(Anna Blades) 작가는 “연기처럼 정처 없이 떠다니고 삶의 균형을 잡으려 발버둥 치는” 자신을 그렸다. 1963년 스웨덴에 입양됐다. 뿌리를 모른다는 당혹감, 백인들과 다른 외모 때문에 불우한 유년을 보냈다. 20대 때인 1986년 입양인의 인권단체를 조직하기도 했다. 그는 자작시를 낭독했다. “내가 나에 대해 몰랐던 때를 생각하면/산에 올라가 소리를 지르고 싶어/그 뒤엔 오직 침묵만이/나는 어둠 속에 서 있네/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노르웨이 사회는 나를 행운아라 부릅니다. 입양은 ‘행복한 동화’라고 하지요. 그러나 내겐 아동권과 인권 침해였습니다.” 노르웨이로 입양된 우마 피드(Uma Feed) 작가·인권운동가가 말했다. 지난 21일 국회에서 증언도 했던 그는 “내게 예술 활동은 가장 개인적인 이야기, 하나뿐인 이야기를 하는 일”이라면서 “다른 입양인들도 각자의 이야기를 하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 리스버거, 만약 나였다면(What If This Were me #4) ⓒKADU 제공
수 리스버거, 만약 나였다면(What If This Were me #4) ⓒKADU 제공
희자 킴 크람호프트, 타냐 인월 소렌슨, ‘엄마들에게 쓰는 편지들’ 영상 작업 ⓒKADU 제공
희자 킴 크람호프트, 타냐 인월 소렌슨, ‘엄마들에게 쓰는 편지들’ 영상 작업 ⓒKADU 제공

해외입양인이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파고들며 시작된 작업은 한인 디아스포라, 여성‧이민자에 대한 관심 등 사회의 소수자들과 교감하는 작업으로 확장됐다. 희자 킴 크람호프트(Hee Ja Kim Kramhøft), 타냐 인월 소렌슨(Tanja In Wol Sørensen) 작가는 ‘엄마들에게 쓰는 편지들’이라는 5분짜리 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덴마크로 입양된 두 입양인은 여성 예술가이자 엄마라는 정체성, 서러움, 행복, 버려지는 일에 대한 공포 등을 나누며 이번 작업을 준비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지아 세르고비치(Gia Sergovich) 사진작가는 서구 사회에서 경험한 아시아여성에 대한 혐오를 표현했다. “예술은 질문을 던지는 일”이라며 “한국에 와서 다양성, 나의 자아를 받아들이고 수치심, 죄책감, 친부모를 용서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고 말했다.

지아 세르고비치, Untitled Nude #1 ⓒKADU 제공
지아 세르고비치, Untitled Nude #1 ⓒKADU 제공
킴 올리버 스페를링 작가는 입양국을 떠나 한국에 돌아온 입양인들의 초상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이세아 기자
킴 올리버 스페를링 작가는 입양국을 떠나 한국에 돌아온 입양인들의 초상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이세아 기자

킴 올리버 스페를링(Kim Oliver Sperling) 작가는 입양국을 떠나 한국에 돌아온 입양인들의 초상사진 작업을 선보였다. 한국 관람객들은 익숙한 외모에 서양 이름을 가진 사람들의 사진을 보고 어딘가 맞지 않다, 어긋났다(discrepancy)는 인상을 받게 된다. 독일로 입양됐다가 지난해 한국에 온 작가에겐 익숙한 감정이다. “우리는 ‘한국인’인가요? 여러분들은 ‘네’라고 하시지만, 당사자인 우리들은 쉽게 ‘그렇다’고 할 수 없습니다.”

키무라 별 르무완(Kimura Byol Lemoine) 작가도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느끼기도 하고, 그렇지 않다고 느끼기도 한다. 꼭 우리를 ‘한국인’으로 정의해야만 우리의 존재가 인정받는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입양’이라는 주제를 넘어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활동을 지켜보고 격려해 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키무라 별 르무완 작가의 사진작업들. ⓒ이세아 기자
키무라 별 르무완 작가의 사진작업들. ⓒ이세아 기자

참여 작가들은 해외입양 산업 내 폭력과 착취에는 눈감은 채 ‘포용’, ‘사랑’의 이름으로 입양을 옹호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이들은 컨베이어벨트로 물건 옮기듯이 고아원, 아동 보호소를 통해 해외로 수출됐어요. 정부는 아동기관에 어떤 아이가 필요하다면서 찾아달라고 요청했고요. 남의 일일까요? 여러분 주위에도 (불법 입양으로) 친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지 생각해 보셨나요.” (셰블룸 작가)

이번 전시는 2022년 만들어진 ‘해외입양인들과 함께하는 문화예술협회’(KADU, 대표 박찬호)가 주최하는 ‘대동예술제’의 하나다. 박찬호 대표는 “한국이 선진국이 된 지금도 돈을 받고 아이들을 해외에 보내는 현실이 너무 창피하다. 해외입양 당사자들은 심지어 한국 사회의 무관심과도 싸워야 한다”며 “KADU는 해외입양인들이 겪는 문제를 널리 알리고 해결하는 일을 돕기 위해 앞으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예술은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 힘을 믿습니다.” 전시는 5월2일까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