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차별너머 아카데미] 2강
-한채윤 비온뒤 무지개 재단 상임이사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 강의 리뷰

서울퀴어문화축제가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렸다.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깃발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2022년 7월 16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퀴어문화축제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깃발을 펼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지난 4월 6일, 차별을 넘어서는 감리회모임에서 주최한 차별너머 아카데미에서 ‘차별금지법과 성소수자’라는 제목으로 한채윤 비온뒤 무지개 재단 상임이사의 강의를 들었다.

강의는 차별금지법의 정의부터 입법목적, 적용대상, 구제절차 등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특히나 보수 개신교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반대하는 선동 문구로 퍼져있는 “목사가 교회에서 설교를 하다가 차별금지법에 접촉이 되어 잡혀갈 수 있다”, “목사가 동성 커플의 결혼 주례를 거부하였더니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잡혀갔다” 등의 이야기들이 가짜뉴스라는 사실을 퀴즈를 통해 알아볼 수 있었다.

지난 달 내가 속해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도 일명 ‘교회발 가짜뉴스’가 돌았다. 차별금지법이 입법되면,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은 남성이 합법적으로 여자화장실에 출입하여 여성들이 위험해진다는 내용의 만화였다. 만화 한 켠에는 “여성들이 위험해진다!”, “무서워서 못살겠다”라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불안을 조성하며 혐오를 선동하는 가짜뉴스가 교회에서부터 시작되는 현실에 새삼 마음이 무거워졌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제작한 차별금지법 입법행동 카드뉴스의 대표 슬로건은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예수는 가난한 이들, 장애를 가진 이들, 여성들을 혼자 남겨두지 않았다. 혼자 남겨두지 않겠다는 약속은 곧 예수의 행동과 다르지 않았다. 예수가 함께한 이들을 한국 교회는 무슨 이유에서 함께할 수 없다 우기는 것일까. 그들은 혐오와 차별을 뛰어넘는, 예수의 참 사랑을 알지 못한다.

한채윤
한채윤 비온뒤 무지개 재단 상임이사

4월 한 달 간 기독교대한감리회(이하 감리회)는 지역별로 연회가 열리고 있다. 연회는 지역별 연례 회의로, 연회에서 건의된 안건이 총회에서 다뤄진다. 이번 연회에서 일부 회원들의 주도로 WCC(세계교회협의회), NCCK(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를 탈퇴해야한다는 의견의 자료집이 배포되었다. 자료집의 골자는 WCC와 NCCK가 차별금지법 입법에 동의하는 집단이며 성소수자를 지지하는 집단이라는 것이었으며, 차별금지법에 대한 가짜뉴스들이 주를 이뤘다. 공식적인 회의자리에서조차 혐오 섞인 거짓선동들이 기세를 부리고 있는 꼴이었다.

혹자는 ‘그깟 교회 안 나가면, 그만이지’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교회가 이 모양, 이 꼴이라도 쉬이 떠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도 그들 중에 한 사람임을 고백한다. 떠날 수 없어서 개신교 내에 성소수자 인권 운동을 해보겠다며 단체(한국교회를 향한 퀴어한 질문, 큐앤에이)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2년이 채 안된 단체의 실무자로 일을 하며 막막한 교계 현실에 지쳐가던 요즈음이었다.

강의를 듣는 내내 나는 ‘어떻게 싸워야 할까’ 고민했다. 낙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어떻게 하면 잘 싸울 수 있을지’ 궁금했다. 강의 끝에 참지 못하고 질문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한채윤 활동가는 “행복하자”고 답했다. “우리가 행복한 것이 그들을 엿 먹이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생각해보면, 행복은 참 어렵다. 내 이름이 거론된 성명서를 받아보는 일이나 카카오톡 방에 오르내리는 일은 그나마 괜찮았다. 연회별로 혐오 선동들이 나부낄 것을 뻔히 알고도 특별히 대응할 여력이 안 되는 현실은 괜찮지 않았다. “WCC와 NCCK는 동성애를 지지하는 집단이기에 탈퇴해야한다.”라는 의견에 맞서는 발언이 고작 “동성애를 지지하는 집단이 아니다.”라는 말인 것은 괴롭고 부끄러운 일이다. 행복은 참 어려운 일이다.

강의가 끝나고 내가 행복한 일에 대해 생각했다. 근래 내 행복은 교회학교 어린이들과 함께 그림책을 읽는 일이다. 그림책을 든 내 앞으로 옹기종기 모여있는 어린이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난다. 그림책을 다 읽고, “자, 기도하자”라고 말할 때 지긋이 눈을 감는 어린이들을 보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내가 기도를 시작하면 몸이 근질근질한 것을 참지 못한 어린이가 어느새 내 등 뒤로 와 업히는 일은 참 좋다. 나는 되도록 이 어린이들과 계속 행복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 누구도 혐오주의자로 태어나지는 않으니까, 이들과 함께 누구하나 홀로 두지 않는 예수를 닮아가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너희들이 백날 혐오해봐라. 나는 행복하겠다. 나는 예수를 닮아가는 일을 포기 하지 않겠다.

“선한 일을 하다가, 낙심하지 맙시다. 지쳐서 넘어지지 아니하면, 때가 이를 때에 거두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한 구절이다. 오늘은 이 구절에 밑줄을 그어본다.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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