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현재, ‘페미니즘과 연대의 정치학’ 강의를 듣고
< 차별너머 아카데미,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감리교 기독교인들의 목소리>
기독교의 금욕 전통은 힘없고 약한자와 함께 하는 신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하지만 가부장으로 오염된 기독교는 검소하고 자족하는 금욕의 전통을 혐오로 변질시켜버렸다. 몸의 욕망을 불결하게 여겼으며, 사랑의 대상인 여성을 혐오했다. 최근 시끄러운 JMS 사건과 교회안에서 빈번히 발생하는 목사들의 성범죄는 혐오와 무관하지 않다. 기독교는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성찰하여 건강한 성문화를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 최근 성소수자 혐오로 나아갔다.
성소수자들의 연이은 죽음, 퀴어축제에서 축복식을 한 이동환 목사(영광교회)의 교단내 징계, 성소수자의 벗팀목이었던 임보라 목사(섬돌향린교회)는 죽음은 우리가 침묵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차별너머는 페미니즘, 섹슈얼리티, 퀴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각 분야의 학자 활동가들을 초대해 토론의 장을 열었다. 강의를 준비한 학자에게 모욕하는 전화가 걸려오고, 기독교 원로들은 ‘성문화가 극도로 타락한 시대’라며 차별너머의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혐오가 사랑을 이길 수는 없다. 신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이번 강연을 통해 오랫동안 묵은 오해와 무지의 때를 조금이라도 벗겨내고 싶다. 6주간의 강연을 목사, 인권운동가, 신학생으로 구성된 기독교인들이 자유로운 형식으로 리뷰글을 연재한다. -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차별너머> 공동대표, 여성학자 최형미

목사님, 안녕하세요.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죠? 벌써 4월이네요. 저도 벌써 3학기째 신대원을 다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 차별을 넘어서는 감리회 모임에서 주최한 시리즈 강의 1강을 들었습니다. 1강은 '페미니즘과 연대의 정치학'이라는 주제로 강사는 이현재 서울시립대 교수였습니다. 이현재 교수는 페미니즘 운동이 처음부터 연대의 운동이었고, 연대를 확장하는 흐름으로 나아갔으며, 페미니즘의 나아갈 방향 역시 차이를 배제하지 않는 연대의 정치학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강의에서 반성적 연대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는데, 목사님이 떠올랐습니다. 목사님과 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먼저 제가 강의에서 인상적으로 들었던 점 몇 가지를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페미니즘 운동 역사에 대해서는 이미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가 강의에서 흥미롭게 들었던 부분은, 페미니즘 운동은 처음부터 연대하는 운동이었다는 점입니다, 제1물결의 자유주의 페미니스트들은 노예제 폐지 운동과도 연대했습니다. 제2물결의 급진적 페미니스트, 슐라미스 파이어스톤은 여성 착취가 인종차별과 계급 착취와 어떻게 결합하는지를 예리하게 지적했습니다. 제3물결의 페미니스트들은 인종 문제와 경제적 차이, 성 소수자 운동을 함께 고려하며 연대의 지평을 넓혔습니다. 이현재 교수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가부장 젠더 체제에 도전했을 뿐 아니라 약자를 희생양으로 삼는 모든 논리에 도전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목사님이 이전에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으로 해석하는 설교를 하셨던 것이 떠오르는 대목이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페미니즘 운동이 희생양 논리에 대한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페미니즘 운동은 처음부터 연대하는 운동이었고, 점차 연대의 지평을 넓혀가는 흐름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연대 방식은 운동이 진행됨에 따라 변화해왔습니다. 1세대 페미니즘 운동은 여성도 남성과 같이 이성적이고 자율적인 '주체'임을 주장하는 운동이었습니다. 2세대 페미니즘 운동 역시 남성과는 다른 여성성을 긍정하며 단일한 정체성에 기반해 연대했습니다. 그들의 연대 방식은 동일성에 기대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이현재 교수는 동일성에 기반한 운동의 위험성을 지적했습니다. 여성 정체성을 강조할수록 여성성을 고정하고 반대의 모습을 평가절하하거나 소멸시키려는 방식으로 흐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종교도 신의 이름으로 동일성을 강조할 때, 이것은 타자를 배제하기 위한 논리로 활용될 수 있고요. 저와 목사님이 공유하고 있는 전통, 복음주의 선교 운동이 위기에 봉착한 요즘, 하나 됨을 강조하고 같은 정체성 위에서 운동의 동력을 되찾고자 하는 구호가 가진 강점과 위험성을 고민해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주디스 버틀러 같은 퀴어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적인 것이 하나로 통일될 수도, 본질적인 개념으로 파악될 수도 없다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남성 중심적인 동일성 이론, 여성 중심적인 대안적 정체성 모두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페미니즘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3세대 페미니스트들은 여성이라는 같은 정체성에 기대지 않는 연대, 차이에도 불구하고 연대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현재 교수는 그 고민의 예로 조디 딘의 '반성적 연대'라는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조디 딘은 '우리는 하나'임을 강조하는 정서적이고 관습적인 연대 대신 외부와 내부의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소통하는 방식의 연대를 제안합니다. 같은 생각, 정체성을 갖지 않더라도 우리는 의사소통 상황 안에서 우리라고 얘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너와 나의 차이를 계속 묻는 과정이 연대라고 말합니다. 동일성에 기반한 연대에서 오는 굳건한 일치감은 느끼기 어렵지만, 타자에게 주는 '그 자신일 수 있는 공간', 타자성을 묻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친밀감이 반성적 연대의 미덕입니다. 딘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녀의 차이를 존중하고 그녀와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믿을 뿐이다.”
저와 목사님이 피부로 접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안타깝게도 이러한 유연한 연대의 흐름을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2010년 이후, 특히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주의 내부에서도 소수자를 배제하는 경향이 나타났습니다.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여성주의 흐름도 등장했고, 여성의 성공을 위해 다른 소수자를 돌볼 여유가 없다는 논리 역시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현재 교수는 이것이 희생양 논리를 깨려다 또 다른 희생양 낳기를 정당화하는 안티페미니즘일 수 있다며 염려했습니다. 포용 없는 정의, 배제의 동력으로 움직이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목사님의 염려 역시 여기에 닿아 있다고 봅니다. 이현재 교수는 다만 이들이 강박적으로 동일성에 기대어 움직이려고 했던 절박한 이유를 묻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강의에서 반성적 연대라는 개념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반성적 연대가 다양한 페미니즘들 사이의 연대 방식이면서, 페미니즘 바깥의 운동과의 연대 방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복음주의와 페미니즘은 함께 갈 순 없다며 선을 긋는 시도들이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반성적 연대 방식을 받아들인다면, 우린 서로 다르지만 그런데도 어디까진 함께할 수 있는지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려면 복음주의 운동 안에서도 일치만을 외치기보다는 이 안의 많은 차이에도 불구하고 공존하고 연대할 수 있을지 묻고 대화해야겠지요.
글이 길어졌습니다. 조만간 만나서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일교차도 크고, 먼지도 짙은 봄입니다. 건강히 지내시길 빕니다.
이슬기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