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7일 한국노총과 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 현장에서 근무하는 가사노동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사근로법 개정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박상혁기자
지난 3월 27일 한국노총과 한국노총전국연대노조 가사·돌봄유니온, 현장에서 근무하는 가사노동자들이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가사근로법 개정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박상혁 기자

저출산에 대한 정책 일선의 관심이 크다. 하지만 아무리 급해도 다른 문제를 야기하는 식으로 정책방향을 잡아선 안 된다. 최근 시대 전환의 조정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 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이 우려를 낳고 있다. 개정안의 핵심은 “외국인 근로자인 가사근로자는 최저임금법의 적용(이) 제외”되는 대상으로 정하자는 것이기 때문이다. 1978년 싱가포르가 도입한 저임금 외국인 가사근로자 제도를 모델로 한 것이란다. 이런 법률 개정이 여성의 경제활동 장려와 저출산 해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설명이 제안 이유에 들어있다. 이런 개정이 저출산 해결에 끼칠 효과가 있을 것인지도 논란거리지만, 한국 여성들의 삶과 저출산 해결을 위해 외국인 여성노동자에게 저임금을 주는 법을 만들자니, 가사노동과 이주여성노동자를 바라보는 시각이 놀랍고 걱정스럽다.

보도에 따르면, 근저의 논리는 외국인 가사근로자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임금을 낮게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현행 가사근로자법에는 입주형의 경우 기숙조건을 근로계약에 담도록 되어 있고, 가사노동과 양육노동은 구분되며 계약 외의 근로는 요구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서비스 제공기관을 통하지 않은 사적 계약에 관해서는 규정과 관리가 모호하다. 법의 사각지대에서 처참한 근로조건이 만들어질 수 있고 임금마저 낮추게 되면 근로조건은 더욱 열악해질 것이다.

국제가사노동자연맹 아시아 코디네이터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최혜영씨에 따르면, 집값이 비싼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입주가사근로자에게 사생활이 보장되는 방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홍콩에서는 세탁실에 선반을 달고 그 위에서 잠을 자게 하거나 화장실에서 휴식을 하게 하는 등의 처참한 사례들이 보고되었다고 한다. 국내 일부 언론은 이러한 현실은 눈감은 채로 홍콩과 싱가포르의 가사근로자들이 최저임금 이하로도 한국에서 일할 생각이 있다는 취재내용을 보도했다.

2011년 국제노동기구는 가사노동자협약을 만들어 가사노동자의 노동과 인권 가이드라인을 수립했다. 한국 정부는 이 협약에 찬성하고도 필요한 법제도 마련 등 후속조치를 미뤄왔다. 한국의 현행 가사근로자법은 가사근로자에 대한 착취를 막기 위해 2021년에야 만들어졌다. 하지만 지금도 한국의 가사근로자는 근로기준법에서 제외되어 노동관계법과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다.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한국과 송출국 사이의 양해각서에 근거한 고용허가제 하에 있기 때문에 최저임금제의 예외대상이 될 수 없다. 예외로 한다면 명백한 차별이 되는 것이다.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는 이주노동자의 유입과 고용이 민간회사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반인권적 상황이 빚어지고, 국제사회로부터 비판을 받고 있다. 조의원의 개정안은 가사근로자법의 기본 관념에도 국제노동기구의 협약에도 위배된다.

조 의원 발의안의 입주외국인가사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 예외 이유는 무엇인가? 이유가 ‘입주’라면, 모든 한국의 입주가사근로자, 나아가 모든 기숙노동자들에게도 같은 논리로 최저임금 예외가 확산될 수 있다. 이유가 ‘외국인’이라면, 국적에 따른 차별로서 외교적 문제가 된다. 이유가 ‘가사근로’라면, 전통적으로 여성의 일로 여겨 온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다.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에서 가사노동 가치인정이 강령으로 채택됐다. 한국의 국회는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노력에는 더디더니 돌봄의 사회적 책임이나 인권 등의 개념이 발달하지 않은 50년 전의 싱가포르나 홍콩을 닮자고 하고 있다. 이렇게 여성을, 노동자를 갈라치기하는 것을 저출산 대책이라고 하다니. 인간에 대한 도구적 발상부터 멈추어야 한다.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박혜경 충북여성재단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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