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지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리는 최고위원회의에 앞서 지난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더불어민주당이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을 받고 있다. 당시 송영길 당대표 후보의 당선을 목적으로 선거 캠프 관계자들이 20~40명 안팎의 의원 및 당 관계자에게 불법 자금(돈 봉투)을 전달했다는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저희 민주당은 이번 사안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이번 일로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당 대표로서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또한, 수사 기관에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요청했으며 프랑스에 체류 중인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도 요청했다. 이 대표의 사과는 돈 봉투 의혹을 진상 규명이 필요한 심각한 사안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의미다. 민주당이 자신들의 비리 의혹이 터지면 덮어 놓고 ‘정치 보복, 야당 탄압, 국면전환용 기획 수사“라고 주장했던 기존의 상투적인 대응과는 다른 모습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돌발 악재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사안의 중대성으로 당 전체에 악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구나, 돈 봉투 사건의 빌미를 제공한 이정근 전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녹취록이 3만 개에 달하면서 사건의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모른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이 대표가 대장동 특혜개발 의혹으로 기소된 상황에서 전직 대표마저 연루 의혹을 받는 돈 봉투 사건은 자칫 민주당에 부패 집단 이미지가 덧씌워 질 수 있다는 것도 중요 고려 사항이 된 것 같다.

민주주의 강조하던 민주당, 금권선거 자행했나

민주당 돈 봉투 사건은 정치 부패를 넘어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째,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다. 유권자들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선거는 민주주의의 핵심 기제다. 그런데, 매표를 통해 유권자의 표심을 왜곡·변질시키는 것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으로 선거의 정통성을 훼손시키게 된다. 고민정 민주당 최고위원이 “돈 봉투 사건은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우리의 정당성마저 잃게 만들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여하튼 민주당이 앞에선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뒤에서는 돈 봉투를 살포하며 금권선거를 자행했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둘째, ’패거리 정치‘ 악습이다. 돈 봉투 의혹에는 현역 의원, 대의원 등 수십 명이 연루돼 있고, 유력 당 대표 후보는 돈과 당직을 매개로 줄을 세웠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예일대 에이미 추아 교수는 『정치적 부족주의 ( Political Tribes )』라는 책에서 인간에게는 누구나 ‘부족 본능’이 있다고 말했다. 이 부족은 개인에게 소속감과 애착을 느끼게 하는 집단을 뜻한다. 당 대표 경선에서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모인 집단은 계파가 되어 마치 ‘정치적 부족’처럼 기능한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고, 소속 구성원들에게 정보와 돈을 부여한다. 돈 봉투 사건이란 이미 사라지고 없어져야 낡은 정치 문화가 이런 정치적 부족의 형태로 반복·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낡은 정치 문화로 인한 피해자는 정치 신인과 여성

이 과정에서 가장 피해를 보는 사람은 정치 신인과 여성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특정 계파에 속하지 않고 스스로 역량을 키워 도전하려고 하지만 기득권들이 쳐놓은 진입 장벽에 막혀 불이익을 당하기 쉽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이재명 대표가 당 차원의 공식 사과와 송영길 전 대표의 조기 귀국을 요청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참으로 옳은 지적이다. 이번 돈 봉투 사건을 계기로 잘못된 한국 정당 시스템을 혁신해야 한다. 특히 중앙집권화되고 비대화된 원외 정당 체제를 개혁하는 것이 급선무다. 대의원과 당원들 뽑는 당 대표 제도를 종식시키고 미국처럼 원내대표가 대신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임의 단체에 불과한 정당이 아니라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 될 수 있다. 더불어, 당 대표 선출에서 불거지는 돈 봉투, 줄서기, 패거리 정치도 사라 질 것이다. 정당 개혁의 또 다른 핵심은 여성과 신인이 차별 없이 동등한 기회를 갖도록 제도화하는 것이다. 단언컨대, 변화의 시작은 기득권 패거리 정치를 청산해서 평등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것이다.  

©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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