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살고 있을 때는 남한 여성들도 우리와 별반 차이 없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혼할 나이가 되면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남편을 섬기고 시부모님을 공양하고, 나를 위해서보다는 나와 연결된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덕으로 알고 살고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남한에 와서 본 남한 여성들의 모습은 상상 밖의 당당함으로 내 눈에 비쳤고 마음에 새겨졌다.

화사한 화장과 세련된 외모, 누구 앞에서도 주눅들거나 눈을 내리깔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당당한 모습은 여성은 희생하는 존재로만 살아 온 북한 여성의 눈으로 볼 때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때로는 무서운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깝게 지내고 있는 한 친구가 있다. 나이도 한 두 살 차이로 비슷한 또래여서 처음 한국에 와서 아무 하는 일이 없을 때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내다시피 했다. 남편이 시장에서 배달을 하면서 두 아들을 키우는 소박한 주부였는데 내가 보기에는 남편이나 아이들뿐 아니라 그 친구도 착한 마음을 가진 주부였고 가정의 화목을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 친구 집에 들렀더니 친구가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사연인즉 남편이 어제 저녁에 동료들과 술을 마셨는데 빨리 귀가하라고 14번이나 전화를 했는데도 모임이 끝날 때까지 자기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것이다. 친구가 화내는 이유는 남편이 자기의 요구를 거역하고 무시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면 화낼 만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14번이나 전화를 했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면서 너무했다는 생각도 들고 조금 놀랍기도 했다. 더 궁금한 것은 14번의 전화를 받았다는 남편의 태도였다.

동료들과의 술좌석에서 집에서 온 전화를 14번이나 받은 남편은 얼마나 짜증이 나고 열받았을까 하는 것이다. 나의 상식으로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자는 남편의 일에 간섭을 하지 말고 속상하고 마음이 언짢아도 남편이 들어오기를 기분좋게 기다렸어야 하는 것이다. 또 남편의 입장에서도 서너번 반복되는 전화였다면 당연히 전화기의 전원을 꺼놓는 것이 당연할 것 같았다. 그러나 친구의 남편은 그 14번의 전화를 다 받았단다.

남편에게 물었다. 받지 말지 왜 계속 받아주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친구 남편의 대답이 더 가관이다. 그 상황에서 전화도 받지 않으면 집에 들어와서 더 야단맞는다고 했다. 그것이 두려워 휴대폰을 꺼놓을 수도 없고 받을 수밖에 없었단다.

한없이 당당하고 기세 등등한 한국 여성들의 모습이 처음에는 많이 낯설었지만 점차 한국생활에 익숙해지면서 많은 부분을 이해하게 됐다. 여성신문이라는 독자적인 매체를 가지고 있는 것도 한국 여성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남한에서 살아가려면 권리를 강하게 주장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준 남한 여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필자 김지은(39)씨는 99년 북한을 탈출해 2002년 3월 한국에 들어왔다. 북한에서 10년간 한의사로 일했으며 지난 8월 “남한에서도 한의사 자격취득 시험에 응시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국회에 청원서를 제출해 화제를 모았다. 현재 실향민 커뮤니티 사이트인 북마루에서 콘텐츠기획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번 주부터 여성신문에 격주 1회씩 '남한사회 체험기'를 기고할 예정이다.

김지은

실향민 커뮤니티 사이트 '북마루'

콘텐츠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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