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경애 변호사 ⓒ뉴시스·여성신문
권경애 변호사 ⓒ뉴시스·여성신문

권경애 변호사가 일으킨 문제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상식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학교폭력 피해자 유족의 소송을 대리하면서 항소심 재판에 세차례나 불출석해 원고 패소 판결이 내려지게 만들었다. 설혹 잊고 있었다 해도, 소송을 대리하는 변호사에게는 기일을 알리는 문자나 이메일이 온다. 세상과 연을 끊고 지내는 사람이 아니라면 재판 기일을 모르고 지나칠 수는 없다. 건강 문제라든가 다른 개인적 사정이 있었다면 다른 변호사에게 맡기면 되었을 일이다. 이로써 유족은 1심에서 일부 승소했던 부분(5억원 배상)까지도 패소당한 채 모든 재판이 종료되고 말았다. 유족들로서는 힘겹게 버텨온 8년의 삶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그렇다고 권 변호사에 대한 비난이나 분노를 반복하기 위해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돌을 던지는데 거기에 끼어들어 돌 하나 더 던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대한변호사협회가 회장 직권으로 권 변호사를 조사위원회에 회부했다고 하니 그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징계는 지켜볼 일이다. 변호사들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막기 위해서도 대한변협은 제대로 된 결과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유족의 무너진 8년 복원할 수 있는 길 없는가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유족들의 무너진 8년이 다시 복원될 수 있는 길이 없는가 하는 문제이다. 이 믿기 어려운 사실이 알려지자 소송에 무관심했던 수많은 언론과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하고 있다. 유족은 이런 일이 터지니까 이제서야 관심을 갖는 세상을 원망한다.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그런 원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그래도 이제라도 피해자 유족의 잃어버린 8년이 복원될 수 있는 길은 없는지 우리는 찾아보아야 한다. 공정한 2심과 3심을 받을 기회도 놓친채 가해자가 승소하고 피해자가 패소하는 것이 법이 추구하는 정의일 수는 없지 않은가. 

물론 이런 얘기가 소송의 내용에 관한 결론을 섣부르게 예단하는 것은 아니다. 유족의 소송에 대해 어떤 판결이 내려져야 하는지는 공정한 재판에 의해 가려질 일이었다. 1심에서 유족은 일부 승소 했을 뿐이다. 하지만 학교폭력이 갖는 특성, 더구나 피해학생이 이로 인해 세상을 등졌던 일임을 감안하면 2심과 3심에서 다시 공정한 재판을 받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했다. 지금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기회가 어떻게든 다시 열려야 한다는 점이다. 

많은 법조인과 전문가들이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한다. 관심의 초점인 재심 가능 여부에 대해 회의적인 전망도 많다. 많은 전문가들이 방송에 나와 해결책을 말하지만 공허하다. 대표적인 것이 유족이 권 변호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 청구 소송을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유족은 자산도 없어 배상능력이 없는 사람을 상대로 ‘또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지난한 소송’을 하라는 말들의 부질없음을 탓한다.

외면 당한 학폭 피해, 다시 재판 받을 수 있어야

당장은 해결책이 쉽게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유족 측이 최근 양승철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새로 선임했다고 하니, 구체적인 법리적 판단과 대응책에 관해서는 그가 고민하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 여기서 이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결말이 결코 온당하지도 않고 정의롭지도 못함을 모두가 뻔히 알고 있다. 그럼에도 법리라는 것 때문에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은 인간사회가 지켜야 할 기본 상식에 어긋난다. 나쁜 행동을 한 사람이 벌을 받고,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이 도움을 받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 공동체가 포기해서는 안 될 대전제이다. 사람을 위해 법이 존재하는 것이지, 법을 위해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닐 게다. 여기서 마침표를 찍고 지나가버릴 정도로 우리 사회가 비정해는 안 될 일이다. 법적 절차를 준수하고 법원과 법관의 독립성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유족에게 다시 재판받을 기회가 열릴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가 찾아지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반짝’이 아닌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유창선 시사평론가 사진=홍수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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