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에서 안으면 심쿵 아니에요?”

“남주(남자 주인공)들이 여주 손목 그렇게 잡던데….”

양민영 작가가 3월 29일 서울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자기방어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본인제공
양민영 작가가 3월 29일 서울 중랑구성평등활동센터에서 여성을 대상으로 자기방어 수업을 하고 있다. 사진=본인제공

자기방어(Self defense,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태도나 행위) 수업에서 참가자 가운데 일부가 한 말이다.

이날 수업은 특별히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사이의 여성 청소년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이들은 자기방어에 기대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서도 가해자가 뒤에서 껴안거나 손목을 잡는 등의 위험한 상황을 영화나 드라마의 로맨틱한 설정과 혼동하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여성 전용으로 진행되는 자기방어 수업은 해마다 증가하는 여성 대상 폭력에 여성이 직접 대응하자는 일종의 자구책이다. 주변인이나 불특정한 가해자가 휘두르는 무차별적인 폭력에 노출된 여성들과 함께 어떻게 하면 위험을 빨리 알아차리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지 해결책을 모색한다.

여성 대상 폭력은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여성의전화가 2022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언론에 보도된 남성 배우자와 연인, 주변인 등에 의해 여성이 살해된 사건 기사를 분석한 결과, 여성 피해자의 수가 최소 372명이었다. 매일 한 명 이상의 여성이 주변 남성에 의해서 살해되거나 살해위협을 받고 있다.

바로 지난달 29일에도 처참한 사건이 발생했다. ‘강남 납치 살인사건’이라고 알려진 이 사건은 남성 3명이 서울의 강남 주택가에서 귀가하던 여성을 납치, 살해했다는 점에서 큰 충격을 주었다. 공개된 CCTV 영상을 보기만 해도 피해자가 느꼈을 극심한 공포와 두려움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자문한다.

‘나에게 비슷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수준 높은 치안을 일컫는 ‘K-치안’이라는 신조어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에서 여성들을 만나서,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치안을 향한 자긍심이 무색할 지경이다. 똑같은 환경에서 살고 있어도 성별에 따라서 안전에 관한 인식의 차이가 얼마나 다른지 실감하게 된다.

참가자들이 자기방어 수업을 신청하는 가장 주된 동기도 여성 대상 폭력으로 인한 불안과 두려움이다. 폭력으로 인해서 직접적인 피해를 본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친족에 의한 폭력을 빈번하게 겪었다는 참가자들도 있다.

여기까지 설명한 바로는 수업이 마냥 진지하고 무겁게 진행될 것 같지만 의외로 분위기는 밝다. 막상 실습을 시작하면 참가자들은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직접 몸을 움직임으로써 막연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위험에 맞설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기기 때문이다. 또 수업을 통해서 약자 간의 공감대가 형성되기 때문에 처음 만난 이들이 급격히 친해지기도 한다.

한 가지 특징은 질문 시간이 길다는 거다. 목을 졸리면 어떻게 하느냐, 발에 차이면 어떻게 하느냐, 무기를 들고 위협하면 어떻게 하느냐 등 평상시에 궁금해도 답을 알 수 없었던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또 질문과 함께 과거의 피해 사실을 털어놓기도 한다.

“대낮에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어떤 남자가 가슴을 만지고 도망쳤어요.”

“밤에 골목길을 걷다가 주먹으로 배를 맞은 적이 있습니다.”

수업 때마다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여성이 최소 두세 명이다. 지금까지는 주로 성인 여성을 대상으로 수업을 진행했는데 참가자들이 입을 모아서 하는 말이 있다. 바로 ‘여성 청소년들에도 자기방어를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매일 한 명 이상의 여성이 주변 남성에 의해서 살해되거나 살해위협을 받는 미래를 청소년들에게까지 물려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제 우리의 목소리에 국가가 응답할 때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