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남자들이 떼로 몰려나와 춤을 추며 노래한다. 비명 같은 환호성, 딱딱 맞추는 응원소리, 사랑해요, 넌 내 거야 등의 글이 쓰인 플래카드, 이어 보이는 열에 들뜬 어린 소녀들의 모습… 소위 오빠부대, '빠순이'들의 이미지는 늘 이렇다. 나의 딸도 지금 열 다섯 살, 주변의 남자친구들보다는 가수나 배우 등을 흠모할 나이다. 텔레비전에서 정신없어 보이는 그런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면 나는 짐짓 고루하게 딸에게 말한다. “너는 저렇게 되진 말아라”라고. 그러나 저러나, 아이는 2년 전부터 착실하게 빠순이의 길로 접어들었다.

또래 아이들은 다 그러려니 싶어 그냥 넘어가긴 했지만 머리 속에 들어와 박힌 빠순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해서 좋아보이진 않았다. 그러던 중 내 딸을 포함한 빠순이들에 대한 생각을 바꿀 기회가 생겼다. 얼마 전의 일이다.

아이는 어딘가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이 당첨되었다며 같이 가주기를 원했다. 멋진 모습을 보면 엄마도 반할 거라면서. 장소는 지방 놀이공원. 시간은 저녁, 날씨는 태풍, 당첨도 되었다는 데 같이 가주자 결정했다.

공원 노천무대에서 예정된 공연은 취소될 것 같았다. 비는 내리 쏟아졌고 바람마저 상당히 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쏟아지는 비를 가릴 아무 것도 없는 노천에 소녀들이 모두 모여 앉아 콘서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앉을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30분이나 지나도, 비바람이 몰아쳐도 어떤 아이도 자리에서 일어나질 않았다. 그리고 세상에! 그 폭우 속에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가수들이 등장하자 소녀들은 모두 일어서서 환호했다. 가수들도 그 비를 몽땅 맞으며 노래를 불렀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말끔하고 멋있던 머리카락과 옷차림은 이내 망가졌다. 넘어지고 미끄러지면서 그들은 노래했고 춤을 추었고 속옷과 신발까지 몽땅 젖은 것은 거기 모인 모든 이들이 똑같았다. 옆을 보았다.

얻어 입은 비닐 우의를 걸치고 스커트까지 몽땅 젖은 채, 신발에는 물이 가득 찬 채, 가수의 일거수 일투족에 완벽하게 집중해 있는 열 다섯 살의 아이. 그 가수들이 내가 생각한 것처럼 사회의식이 없고 저항의식이 적고 노래도 잘 못 부르고 다만 얼굴과 몸매만 뛰어나다고 욕을 해도 꿋꿋이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 변호하던 아이는 함께 비를 맞으면서 혼신을 다해 공연하는 가수에게 절대적인 애정을 퍼붓고 있었다.

그들이 부르는 노래가 허접한 사랑과의 이별이라 한들 그건 내 생각일 뿐 아이는 한시절을 아주 뜨겁게 몰입해 있었다. 앞도 옆도 뒤도 내 딸 같은 아이들이 한가득이었다. 나는 빗속에서 그 가수들과 진지한 그 소녀들에게 깊은 감동을 받았다. 빠순이 이미지의 새로운 탄생이었다.

권혁란/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 편집위원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