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혜란/

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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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을 갓 넘긴 며느리는 이래저래 사는 게 심드렁한데 여든이 다 된 시어머니는 살면 살수록 사는 게 재미가 난다면서 보약을 챙긴다기에 아이고, 참 욕심 많은 노인네도 다 있지 싶었다. 이 풍진 세상에 그 연세까지 살아 내려면 온갖 풍파를 겪을 대로 겪었을 텐데 천지간에 무슨 재미가 또 있을 거라고 며느리를 괴롭힐까 열나게 흉을 보았다.

젊었을 땐 그저 며느리 편이었다. 내 시어머니 남의 시어머니 할 것 없이 공연히 비죽거렸었다. 시간이 흘러 며느리 자라 시어머니 되고 보니 내 시어머니 남의 시어머니는 물론 세상 모든 어르신들에게 죄송스럽기만 하다. 나이 들면 사는 재미가 하나하나 줄어들어 결국에는 젊은이 괴롭히는 재미 밖에 안 남으리라고 제멋대로 넘겨짚었으니.

뜬금없이 웬 '며느리의 고백?' 언제부터인가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내 마음 나도 몰라'가 아니라 '내 손가락 나도 몰라'다. 경지에 오른 건지, 치매의 신호인지 아직 확실치 않다.

그렇지, 실은 엊그제 막을 내린 이번 올림픽이 참 재미있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거다. 스포츠 중계를 하도 좋아하는 남편에 대한 반작용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난 평소 스포츠만 나오면 그게 무슨 종류든 채널을 돌려버리곤 했다. 이번 올림픽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밤 늦은 시간에 경기가 열리니 대책 없는 잠보인 나로선 아예 접속불가였다. 그런데! 이런 무감각한 국민이 어느 순간 올림픽 폐인으로 변신하는 계기가 나타났다. 바로 여자 양궁 개인전.

우리나라가 양궁강국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고 여자양궁선수 이름도 두엇 외우고 있었지만 양궁이 그렇게 재미있는 스포츠인 줄은 정말 예전엔 미처 몰랐다. 숨을 멎게 만드는 긴장감도 짜릿했고 무엇보다 젊디젊은 선수들의 그 무서운 집중력이 매혹적이었다. 나 같으면 와들와들 떨려서 과녁조차 보이지 않았을 결정적 순간에도 흔들림 없는 표정과 자세로 화살을 날리는 그들, 갓 스물을 넘은 그 세 명의 여성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니 한국여성은 참 활을 잘 쏜다. 올림픽을 여섯 번이나 제패했다. 엄청난 기록이다. 물론 양궁에 대한 체계적이며 지속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겠지만 내 생각엔 한국여성들에겐 특별한 집중력이 있는 것 같다. 여성의 신경을 산지사방으로 분산시키는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건만 주어지면 세계 어느 나라의 여성보다 뛰어난 집중력을 발휘하곤 한다. 요즘 줄지어 두각을 나타내는 여자골퍼들을 봐도 그렇잖아.

뜻밖에 양궁의 묘미를 흠뻑 느끼게 되면서 나는 올림픽 폐인이 되어 낮에는 비몽사몽으로 지냈다. 그리고 밤마다 다양한 나라에서 온 멋진 여성들을 만나는 재미에 푹 빠졌다. 미안하지만 누가 메달을 따느냐에는 그리 큰 관심이 없었다. 올림픽에 출전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들은 대단한 여성들이니까. 그런데 놀라운 건, 탁구선수건 육상선수건 수영선수건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들 아름다운지. 단련된 몸과 빛나는 눈빛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러다가 장미란 선수를 만났다. 듬직하고 귀여운 우리의 역도선수. 자신의 기록을 넘는 무게를 번쩍 들어 올린 순간, 만면에 번지던 그 성취감. 평소 역도선수들에 대해 미련하게 왜 그 무거운 걸 들어 올리느냐고 빈정거렸던 나는 장 선수의 아름다움에 완전 두 손을 들고 말았다.

건강과 자신감. 올림픽에 출전(솔직히 난 이 출전이란 말이 영 못마땅하다. 위에서 쓴 제패란 말도 그렇고. 운동경기대회에 나가는 거지 무슨 전쟁에 나가는 건가? 요즘은 결승전에서 졌다고, 금메달이 아니라 은메달이라고 땅을 치며 우는 선수들을 안 봐서 정말 다행이다. 아직도 은이나 동메달을 영 시답지 않아 하는 방송인이 있긴 하지만)한 여성들이 아름다운 건 그 두 가지를 몸으로 이뤄냈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많은 사람들이 올림픽 기간 내내 아름다움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을 거다.

요즘 강남에 문을 닫는 성형외과들이 늘고 있다는데 혹시 올림픽의 영향이 아닐까 내 마음대로 추측하고 있는 중이다.

그건 그렇고, 살면 살수록 이렇게 새로운 재미가 새록새록 나타나니 이러다가 나중에 죽기 싫다고 떼쓰는 거 아냐? 앞일은 아무도 모른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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