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이 맞이한 제주 4·3 75주년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기념관에 4.3의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제주도기자협회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기념관에 4.3의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제주도기자협회

제주 제주시 명림로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기념관. 4·3의 역사를 담은 ‘진실의 그릇’ 형태로 지어진 이곳 전시실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커다란 ‘백비(白碑)’를 마주한다. 이 커다란 비석에는 글자 하나 새겨지지 않았다. 그 대신 “언젠가 이 비에 제주4.3의 이름을 새기고 일으켜 세우리라”는 백비 앞 안내 글귀가 적혀있다. 백비는 75년이 지나도록 ‘사건’ ‘항쟁’ ‘사태’ 등으로 불리며 아직 제 이름을 얻지 못한 ‘제주 4·3’의 현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4·3은 75년째 현재진행형 지난 3월 17일부터 1박2일간 제주특별자치도와 제주도기자협회가 주관한 프레스투어에 참가했다 4·3평화기념관을 시작으로 알뜨르비행장, 섯알오름 학살터, 너븐숭이 4·3 기념관과 애기무덤까지 4·3의 상흔이 깊게 패인 길을 걸으며 4·3의 의미와 교훈을 되새길 수 있었다. 제주에서 만난 도민들은 “제주 4·3은 아직 살아있다”고 말했다. 75년이 흘렀지만 제대로 된 진실규명과 보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란 뜻이다. 4·3특별법 제정과 정부의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채택,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공식 사과에 이어 지난해부터 국가 보상, 4·3수형인 직권재심 등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첫 걸음을 내딛었다. 화해와 상생의 가치를 담은 제주 4·3 기록물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시키는 노력도 시작됐다.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 근처 알뜨르 비행장.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위해 만든 군사 비행장이다. 비행기 격납고 지하벙커가 남아있다. ⓒ여성신문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송악산 근처 알뜨르 비행장.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위해 만든 군사 비행장이다. 비행기 격납고 지하벙커가 남아있다. ⓒ여성신문

하지만 아직도 4.3을 폄훼·왜곡하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최근 우리공화당 등이 제주 곳곳에 ‘제주4·3사건은 대한민국의 건국을 반대하여 김일성과 남로당이 일으킨 공산폭동이다’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걸었고, 4·3 당시 도민학살을 주도한 단체를 추종하며 같은 이름을 쓰는 ‘서북청년단’까지 등장했다. 진상 조사와 명예회복 작업이 시작됐지만 양 극단의 평가에 정명(定名)은 표류 중이다.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도 성격 규명은 미룬 채 ‘1947년 3월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만 정의한다. 모두가 같은 이름으로 4·3을 부를 때는 언제쯤 올까.  

여성의 4·3 경험, 성인지 관점 담은 ‘역사’로 기록해야

백비에 이름을 새겨 일으켜 세우는 정명(正名)을 마무리 짓고 4·3의 책임을 묻는 추가 진상조사가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4·3을 경험하고 4·3 이후 마을을 재건한 여성들의 경험을 ‘고생담’이나 ‘신세타령’이 아닌 ‘역사’로서 제대로 기록하는 작업은 중요하다. 관련 기록과 전시에는 성인지 관점이 반영돼야 제대로된 기록도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4·3평화기념관은 문화공간이자 추모공간으로서의 의미가 충분히 담겨 있으나 성인지적 관점에선 아쉬움이 남았다. 상설전시관 2관 설치된 1947년 3·1절 기념대회 발포 사건 전시물이 대표적이다. 당시 경찰의 총격으로 민간인 6명이 사망하고 6명이 다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민과 미군정의 갈등과 대립이 본격화되면서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2관에는 당시 사망자 6인의 이름과 나이, 직업, 거주지를 소개하는 전시물이 설치돼 있다. 6명 중 4명은 ‘농부’, 1명은 ‘제주북교 5학년’으로 소개하고 있으나, 유일한 여성 희생자인 박재옥씨는 ‘젖먹이 안은 여인’으로만 표기했다. 주부나 농부가 아닌 ‘어머니’로만 소개한 것이다.  

제주4·3평화공원 내 4·3평화기념관에 4.3의 희생자들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제주도기자협회
4·3평화기념관 내에 설치된 1947년 3·1절 기념대회 발포 사건 전시물. 왼쪽 사망자 소개 중 여성 희생자를 ‘젖먹이 안은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기자협회
4·3평화기념관 내에 설치된 1947년 3·1절 기념대회 발포 사건 전시물. 사망자 소개 중 여성 희생자를 ‘젖먹이 안은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제주도기자협회
4·3평화기념관 내에 설치된 1947년 3·1절 기념대회 발포 사건 전시물. 사망자 소개 중 여성 희생자를 ‘젖먹이 안은 여인’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성신문

최근 제주 여성의 4·3 경험을 성인지 관점에서 역사로 기록하기 위한 작업이 시작되고 있다. 지난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 제주여성가족연구원(원장 민무숙)과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회장 강능옥)는 공동포럼을 개최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부녀회가 포럼이라는 형식으로 아픈 역사를 알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주4·3 여성유족 100인이 갈암수다’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서 80세 전후의 여성 유족을 비롯해 희생자의 딸, 며느리 등 참가자들은 4·3 이후 노동, 가족부양, 교육기회, 양자 문제, 마을 재건, 가족관계등록 등 아픈 역사를 공유하고, 미래세대에게 전달하고픈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눴다.

강경숙 전 제주여성가족연구원 연구위원은 ‘4·3 이후 제주 여성의 삶과 향후 과제’ 발표를 통해 “4·3의 역사에서 군사적 사건들은 공식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인정받았지만 여성들의 자녀 양육과 마을 재건을 위한 노동과정은 인정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한 연구가 계속되면 4·3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담론의 한계를 넘어서는 가능성이 확장될 수 있다”면서 “4·3희생자와 유족들이 안전하게 말할 수 있고 이를 통해 치유에 이를 수 있는 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 3월 8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공동포럼 ‘제주4·3 여성유족 100인이 암수다’에 참석한 제주 여성들이 여성의날을 상징하는 장미꽃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세계여성의 날인 지난 3월 8일 제주시 아스타호텔에서 열린 공동포럼 ‘제주4·3 여성유족 100인이 암수다’에 참석한 제주 여성들이 여성의날을 상징하는 장미꽃을 들고 기념촬영하고 있다. ⓒ뉴시스·여성신문

‘가족관계 불일치’ 여성이 76%

4·3과 관련해 여성의 목소리는 냉전시기, 반공국가, 가부장적 사회의 중첩 속에서 침묵될 수밖에 없었다. 강 전 연구위원은 제주 여성들은 아픈 가족과 아기 돌보기, 밭일·물질·장사 등 생계노동, 바깥물질 등 국내외 이주노동, 성담 쌓기 등 4·3 이후 가족의 생계와 마을재건 활동에 기여했지만 가족 재산 분배와 상속권, 교육받을 권리 등에서 철저히 배제됐다고 했다.

강 연구위원은 “4·3 당시 남아들은 양자 또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됐지만 여아들은 그렇지 못했다”며 “4·3을 경험한 제주 여성들은 고령이 된 지금까지도 실제 부모의 가족관계등록부에 등록되지 못한 사례가 많다”고 했다. 그는 “제주 여성들은 자신의 처지와 어려움을 탓하기보다는 4·3의 상처를 치유하며 폐허 속에서 가족과 마을의 생존과 재건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며 “사회가 앞으로 할 일은 제주 여성들이 지키고자 했던 삶의 가치를 함께 실천하는 길이다. 이러한 가치가 제주여성사이자 4·3의 역사가 말하는 교훈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4·3 비극으로 제주에서는 친척의 호적에 오르거나, 혼인신고와 사망신고가 뒤틀린 사례가 상당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끌려간 4.3 피해자들이 많아 같은 피해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제주4·3희생자유족회에서 실시한 ‘제주4·3희생자에 대한 가족관계 등록부 불일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희생자 유족 가운데 가족관계등록부가 일치하지 않는 사례 78건 중 76.9%(60명)가 여성이었다.

4·3특별법 개정으로 희생자에 대한 특별재심과 보상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으나 당시 4·3이라는 비극으로 인해 친척의 호적에 오르거나, 혼인신고와 사망신고 등이 뒤틀린 유족의 경우 제대로 된 보상을 받는 것도 어려웠다. 최근 이처럼 법적으로 확인되지 않아 보호받지 못해 외면 받은 이들이 국가로부터 유족으로 인정받고 명예 회복될 길이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송재호 국회의원(제주시 갑)이 대표발의한 4.3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출생연월일 정정과 인지청구 특례, 혼인신고 특례, 입양신고 특례 등 가족관계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