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첫 민간교류는 소떼 아닌 '여성'이 최초

97년 '평화여성회' 창립…풀뿌리 운동 조직화

9·11 테러 이후 젊은 세대 중심 지형도 다양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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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여성평화운동은 '평화'라는 개념을 표방하며 집단적 여성의 목소리를 독자적으로 내기 시작한 90년대를 거쳐, 현재는 여성주의적 관점과 글로벌한 시야의 측면에서 전문성과 다양성을 마련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있다. 세계적 냉전이 해체되고 문민정부가 들어서며 여성운동의 이슈도 다양화하는 90년대의 흐름을 타고, 당시 여성평화운동의 성격은 남북여성교류와 평화군축운동으로 집약되어 나타난다.

91년부터 93년까지 남북여성들의 공동관심사를 정치화했던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는 통일문제를 아시아의 평화라는 맥락에서 보았던 남북여성교류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판문점을 통해서 방문한 최초의 남북 민간교류가 소떼가 아닌, 여성들이었다는 점만으로도 역사적 의의가 컸던 여성통일운동에는 많은 여성지도자들의 공헌과 함께 이우정(전 평화여성회 대표)의 지속적인 활동이 주요한 토대를 이룬다.

평화운동의 '대모' 이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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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타계한 이우정은 평화운동의 대모로서 여성통일운동의 주요한 기반을 만든 주역이다. 이러한 맥은 98년 남·북·일 베이징대회, 2001년 6·15 남북여성통일대토론회, 2002년 남북여성통일대회의 재개로 이어졌는데, 그 동안 잠시 중단된 남북여성 교류의 물꼬를 여는 데는 이김현숙(현 대한적십자사 부총재)의 밤낮을 가리지 않고 뛰는 가열찬 의지가 있었다. 97년부터 시작된 북한여성과 어린이돕기, 2000∼2001년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과 여성인권조항신설 요구,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활동 등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여성활동에는 이현숙의 발빠른 대응이 주효했다.

김엘리 방위비 삭감 운동

또 한편의 큰 흐름을 이루는 평화군축운동은 91년 여성단체들의 방위비 삭감 서명운동이 기반이 되어 결성된 '방위비 삭감을 위한 연대모임'을 통하여 나타난다. 연대모임은 92년부터 96년까지 방위예산 삭감, 패트리어트 미사일 배치 반대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걸프전쟁과 한국군 파병을 반대'하는 반전운동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94년부터는 국회 예산 편성 일정에 따라 본격적으로 방위예산 삭감을 위한 다각적 운동을 전개하는데, 김숙임(현 평화를만드는여성회 대표), 김엘리(현 평화를만드는여성회 정책위원)의 집요한 추진력이 기반이 되었다. 이후 2000년도에도 계속되는 '군예산 낭비 방지를 위한 의정 감시단', 무기도입 반대운동 등은 가시적 성과를 내기 힘든 불모지에서 김숙임의 끈질긴 노력 없이는 지속되기 힘든 것이었다.

무엇보다 90년대 여성평화운동의 전환은 97년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 토론회' 실행위원들이 모체가 되어 창립한 '평화를 만드는 여성회'의 등장이다. 그 동안 남북여성교류, 반전평화군축운동, 여성평화연구 등으로 각각 활동했던 여성들이 한 조직 안에 모여 시의성 있게 대응하는 전문적인 여성평화운동체를 구성했다는 점만으로도 역사적 의의는 컸다.

김정수 등 일상 속 평화운동

더욱이 평화운동을 정치적 이슈 투쟁에 머물지 않고 일상적 여성의 삶에서 찾으려고 한 운동 방향은 2000년도에 이르러 평화교육, 평화문화 확산, 갈등해결 프로그램으로 구체화된다. 이러한 흐름이 보다 심화될 수 있었던 것은 90년대부터 평화운동의 현장에서 뛰어온 활동가들의 축적된 역량과 맥을 같이한다.

한반도 통일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해왔던 김정수(평화여성회 일상센터소장)는 평화심성을 고양시키는 평화교육에 주력함으로써 일상적 평화문화 확산에 주요한 기틀을 잡고 있다. 교사와 청소년들을 위한 갈등해결 교육을 주도하며 사회문제를 둘러싼 집단 간의 갈등이 발생할 때 중재자로서 뛰는 박수선(평화를만드는여성회 갈등해결센터소장)은 갈등의 평화적 해소방식을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김엘리는 '방위비를 삭감하고 여성복지예산을 확대하라'는 90년대의 모토를 군사주의와 여성의 삶의 문제로 전환함으로써 평화운동의 여성주의적 관점을 자리매김하는 데 주력한다.

이러한 모든 한국평화운동의 활동을 외국에 알리면서, 한국평화운동의 국제화, 국제평화운동의 국내화를 위해 활동하는 정경란(평화를만드는여성회 국제위원장)은 최근 반전운동과 북한 핵문제와 관련한 국제적 연대를 만들고 강화하는 데 국내외적으로 매개역할을 한 주역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2001년 9·11 테러 사건에 이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략과 이라크의 침략으로 평화운동의 대중화와 다양화는 더욱 가속이 붙었다. 9·11 테러 직후 여성신문, 웹진 언니네, 이화여대 여성학과 '평화를 위한 여성주의자들의 모임', 여성 성적소수자 인권운동모임 '끼리 끼리'가 모여 '전쟁을 반대하는 여성연대'를, 이에 앞서 손이덕수 고은광순 이정옥 등이 '평화어머니회'를, 한소리회 두레방 한국교회여성연합회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평화를만드는여성회가 '군사주의를 반대하는 여성평화네트워크'를 결성했다. 여성해방연대에서는 이라크 한국 반전평화팀에 합류해 '인간방패'로 회원을 이라크에 급파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무엇보다 여성평화운동을 보다 값지게 하는 데 간과할 수 없는 것은 김윤옥 전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 정현백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 김귀옥 한성대 사회학과 교수(전 한국여성평화연구원 원장), 심영희 한양대 사회학과 교수(평화를만드는여성회 공동대표)로 이어지는 여성평화통일 연구물의 생산이다.

김엘리 성균관대 여성학 강사, 여성평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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