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여성노숙인 쉼터 '내일의 집'

“죽어라 일해도 가난의 끝이 안보여

우리아이도 나처럼 살까 잠도 안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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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자녀 세대의 양육을 떠맡은 여성노인 가구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남성노인에 비해 자녀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노후소득이 보장되지 않아 빈곤화될 우려가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무관. <여성신문DB>

“정말 살 수 없으니까 나온 거죠. 밖에 나오려면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데…”

2년 전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해 초등학교 2학년, 여섯 살 난 아들을 데리고 집을 나온 김영희(36·가명)씨. 친척집을 전전하던 김씨는 지난 해 성수동에 위치한 '내일의 집'을 알게 돼 2년 전부터 아이들과 함께 기거하고 있다. 노동안정고용센터에서 직업 훈련을 받고 사무직 일을 하는 김씨의 급여는 월 70만 원. 방은커녕 저축도 어려운 처지여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이만저만 아니다.

“애들 표정이 밝지가 않아 부모로서 마음이 안 좋죠. 우리처럼 살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최미정(36·가명)씨는 남편의 카드빚 때문에 신용불량자로 등록된 경우.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98년 국내 첫 여성노숙인 쉼터로 문을 연 성수삼일교회 부설 '내일의 집'에는 이들처럼 남편의 폭력과 이혼, 경제적인 문제로 집을 나온 32명의 여성 노숙인들이 자녀와 함께 지내고 있다. 서울역, 영등포역 등에서 볼 수 있는 남자 노숙인들과 달리 이들은 '말끔한' 차림으로 자신들의 처지를 설명했다. 노숙인에 대한 선입견에 대해 김씨는 “여성 노숙자란 말은 잘못됐다. 여자한테는 남편의 폭력을 피해 아무 것도 없이 살아야 되는 게 바로 노숙자다”라고 말한다.

대부분 주변 공장이나 쉼터가 알선해 준 직장에서 일하며 방과 후 공부방에 아이들 교육을 위탁, 인근 병원에서 의료지원을 받는 이들은 “다 비슷한 처지니 서로 말을 많이 안 하고 애들 싸움이 날 때를 제외하곤 의지가 되어 좋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에서 노숙인 문제가 불거진 것은 IMF 이후. 지난 2001년 서울시정개발원은 증가하는 노숙인 6500명 가운데 여성 100여 명을 '홈리스'로 규정했다. 현재 정확한 추산은 어렵지만 600여 명의 여성 노숙인이 쉼터를 전전하거나 거리를 떠돌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들은 대부분 빈곤으로 인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집을 나온 여성들로, 남편이 알코올중독자이거나 카드빚을 부인에게 떠넘긴 경우, 경제적인 문제로 이혼한 경우다. 본인이 알코올중독이거나 정신질환인 경우도 많아 이들의 재활을 돕는 쉼터 다음의 중간단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내일의 집'을 운영하는 정태효(51·여) 목사는 “여성노숙자가 생기는 이유는 절대빈곤 때문이다. 요즘은 카드빚 때문에 거리로 나오는 이들이 많은데 아예 중산층이면 친지들의 도움을 받거나 이혼해서 위자료를 받아 집을 얻어 살면 되지만 단칸방에 사는 경우 남편에게 되돌아간다는 건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무작정 거리로 나온다”고 전했다.

현재 '내일의 집'은 모자가정쉼터로 성격을 바꾸고 여성들이 쉼터를 나가기 전 독립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자활의 집'을 만들기 위해 서울시와 협의 중이다. 정 목사는 “여성 노숙인들은 아이들 학교문제로 인해 본거지를 떠나지 못하고 교회에서 철야를 하거나 기도원을 전전하거나 찜질방, 여인숙, 고시원, 쪽방 등에서 숨어 지내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쉴 곳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임인숙 기자isim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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