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상반기 주요 국제영화제가 주목한 여성들
양자경, 아시아계 최초 오스카 여우주연상
소피아 오테로, 베를린영화제 주연상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주인공 에블린 역으로 아시아계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량쯔충(61·양자경). 영화 ‘2만 종의 벌’에서 주인공 ‘코코’로 분해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주연배우상을 받은 소피아 오테로(8). ⓒAP/뉴시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서 주인공 에블린 역으로 아시아계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량쯔충(61·양자경). 영화 ‘2만 종의 벌’에서 주인공 ‘코코’로 분해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주연배우상을 받은 소피아 오테로(8). ⓒAP/뉴시스

할리우드의 인종·성차별과 싸워온 60대 여성이 올해 아시아계 최초로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데뷔작에서 트랜스젠더를 연기한 8세 소녀는 베를린영화제 주연상을 거머쥐었다. 연초부터 더 대담하고 다채로운 영화계의 내일을 상상케 하는 소식이 잇따랐다. 이들이 던지는 키워드는 가볍지 않다. 편견을 거두라.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양자경(에블린 역).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속 양자경(에블린 역).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

양자경, 전성기는 바로 지금

“여성들이여, 전성기가 지났다는 말은 절대 믿지 마세요.” 량쯔충(61·양자경)의 오스카 여우주연상 수상 소감은 무게가 남다르다. 말레이시아 화교 출신 여성이 ‘오스카의 별’이 되기까지, 그가 두드려온 벽은 높고 견고했다.

량쯔충은 본래 발레를 전공했다. 15세에 영국 왕립무용학교에 입학했으나 척추를 다쳐 꿈을 접었다.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고 홍콩으로 떠났다. ‘예스 마담’ 시리즈 주연을 맡으면서 1980년대에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액션 연기는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시대에 호쾌한 쿵푸 액션을 선보이는 여성의 인기는 상상 초월이었다. 청룽(성룡)의 ‘폴리스 스토리3’ 등 다수의 홍콩영화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1987년 결혼해 영화계를 떠났다가 이혼 후 5년 만에 돌아왔다. 1997년 ‘007 네버다이’ ‘본드걸’로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남성 주인공 제임스 본드에게 의존하는 곱고 연약한 캐릭터가 아니라, 본드의 생명을 구하고 본드와 나란히 서는 강인하고 새로운 여성을 연기했다. 이후 ‘와호장룡’(2000), ‘게이샤의 추억’(2005) ‘미이라3:황제의 무덤’(2008),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VOL.2’(2017), ‘샹치와 텐 링즈의 전설’(2021) 등 블록버스터에 잇따라 출연했다.

강인하고 아름다운 액션, 섬세한 연기로 대중과 평단의 찬사를 받았지만, 할리우드의 유리천장은 단단했다. ‘007 네버다이’ 이후로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지만 “사람들은 내 국적이나 내가 영어를 할 줄은 아는지에 대해서도 몰랐다. 내게 아주 큰 소리로 말을 걸거나 느리게 이야기하곤 했다. ‘와호장룡’ 이전까지 약 2년간 일거리가 없었다. 내게 주어지는 전형적인 역할에 동의할 수 없어서였다.” (지난 1일 ‘피플’지 인터뷰 중)

그의 영화 인생은 환갑에 출연한 ‘에에올’(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또 한 번의 변곡점을 맞았다. 영화는 미국 이민 1세대로 코인세탁소를 운영하며 가장 노릇을 하는 ‘에블린’(량쯔충)이 다중 우주를 넘나들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아시아계 미국인 가족, 특히 모녀 간 현실적인 고충과 갈등과 사랑을 감동적으로 그렸다는 평을 받았다.

“지난 수년간 나는 우리가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는 게 무척 자랑스럽다. ‘립서비스’가 아니다. 변화는 일어나고 있고, 나에게 찾아왔다.” 그의 오스카상 수상 소감이 뭉클하다. “오늘밤 이 시상식을 지켜보고 있는 나와 닮은 어린이들에게, 나의 수상이 희망과 가능성의 불빛이 되길 바랍니다. 큰 꿈을 꾸세요. 꿈은 이루어집니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량쯔충(양자경)이 12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시아계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은 처음이다. ⓒAP/뉴시스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량쯔충(양자경)이 12일(현지시간) 오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아시아계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거머쥔 것은 처음이다. ⓒAP/뉴시스

8세 소피아 오테로, 트랜스젠더 연기로 베를린영화제 주연상

8살에 ‘별의 순간’을 맞은 배우도 있다. 스페인 배우 소피아 오테로(8)는 데뷔작에서 트랜스젠더 연기로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주연배우상을 수상했다. 영화제 최연소 수상 기록이다.

오테로가 주연을 맡은 영화 ‘2만 종의 벌’은 남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아홉 살배기 ‘코코’의 이야기다. 스페인 여성감독 에스티발리즈 오레솔라 솔라우렌(Estibaliz Urresola Solaguren)의 작품이다.

스페인 배우 소피아 오테로는 영화 ‘2만 종의 벌’에서 남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아홉 살배기 ‘코코’를 연기했다. ⓒLUXBOX
스페인 배우 소피아 오테로는 영화 ‘2만 종의 벌’에서 남자로 태어났지만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아홉 살배기 ‘코코’를 연기했다. ⓒLUXBOX

극중 코코는 엄마에게 자신을 여자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고, 소년들이 입는 옷이 아닌 드레스를 입고 싶어 하고, ‘죽어서 다시 태어나면 여자가 될 수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성 정체성을 고민하는 섬세한 감정선을 오테로는 자연스럽고 훌륭한 연기로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연기로 지난 2월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열린 제73회 베를린영화제 폐막식에서 경쟁부문 주연배우상(은곰상)의 주인공이 됐다. 베를린영화제는 2021년부터 성별 구분 없이 연기상을 수여하고 있다.

당연히 앞날이 더 기대되는 배우다. 무척 의욕적이고 열정적인 자세로 촬영 스태프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고도 한다. 스페인 출신 인기 싱어송라이터·프로듀서 로살리아(Rosalía)의 열성 팬으로, 촬영 현장에서도 늘 (로살리아의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고 한다. 수상 소감도 당차다. “제 인생을 연기에 바치고 싶습니다.”

스페인 배우 소피아 오테로(8)가 지난 2월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열린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경쟁부문 주연배우상(은곰상)을 수상했다. ⓒAP/뉴시스
스페인 배우 소피아 오테로(8)가 지난 2월25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베를리날레 팔라스트에서 열린 제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경쟁부문 주연배우상(은곰상)을 수상했다. ⓒAP/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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