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유가족 등 14인 ‘피해자 권리선언’
진상규명·일상회복·참사추모 등 10개 권리 보장 촉구
녹색병원, 참사 피해자들에 건강검진·치료비 지원

재난·산재 유가족 및 피해자 14인(이하 참사 피해자들)이 모여 사회적 참사 피해자가 보장받아야 할 제도적 권리들을 촉구하는 ‘피해자 권리선언’을 20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발표했다. ⓒ박상혁 기자
재난·산재 유가족 및 피해자 14인 등은 20일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사회적 참사 피해자가 보장받아야 할 제도적 권리들을 촉구하는 ‘피해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박상혁 기자

세월호 참사 유가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등 재난·산재 유가족 및 피해자들이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피해자들의 △알 권리△안전할 권리 △2차 가해와 인권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을 받을 권리 등을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의 ‘피해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 어머니 등 참사 피해자 14인과 생명안전 시민넷은 이날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고 이후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진상규명 활동 등으로 건강을 돌보지 못함에도 재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지원제도가 전무하다고 비판했다. 

참사 피해자들은 참사 발생 후 트라우마와 2차 가해 등으로 지속적인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린다. 20일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 받은 '10.29 이태원 참사 사상자 의료비 지원 진료월별 주상병 내역'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피해자들은 올해 2월까지 근골격계 증상과 스트레스·우울·불안 증상으로 인한 진료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스트레스·우울·불안 등으로 진료를 받은 건수는 43건으로 전체 진료 건수(439건)의 10%에 해당한다. 지난해 12월 159번째 희생자 이재현 씨는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로 극단적 선택을 한 바 있다. 

2005년 UN이 발표한 피해배상권리장전을 비롯한 주요 국제인권조약들은 이러한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적극적 권리와 국가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UN 피해배상권리장전은 국제법에 위반하는 범죄 피해자의 권리로 △재판에 대한 평등하고 효과적인 접근 △피해에 대한 적절하고 효과적이고 즉각적인 배상 △위반행위와 배상 장치와 관련한 정보들에 대한 접근을 규정하고 "국가는 국제법이 요구하는 바와 같이 자국의 국내법을 자국에 대한 국제의무와 일치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참사 피해자들은 이러한 국제인권조약들과 달리 한국의 법제도는 피해자라는 법적 정의조차 없고 지원체계 역시 갖추지 못하고 있다며 피해자 권리선언을 촉구하게 된 배경을 밝혔다. 

마이크를 쥔 이영문(스텔라데이지호 침몰참사 실종선원 허재용씨 어머니)씨는 “오는 3월 31일은 스텔라데이지호가 침몰한 지 6년 되는 날”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아직도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지 못했다. 이씨는 “아들이 죽은 이유를 밝히기 위해 싸우는 동안 무릎 연골 손상과 이명 현상이 심해져 진통제마저 듣지 않는다”며 진상 규명과 의료 지원에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한다고 강조했다. 

김혜영(산재 피해자 고 이한빛PD 어머니) 씨는 “특별법을 제정해도 대상과 지원이 제한적이며, 산업재해 역시 신청이 까다롭고 영세사업장, 플랫폼 노동자 등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이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상혁 기자
산재 피해자 고 이한빛PD의 어머니 김혜영씨는 “특별법을 제정해도 대상과 지원이 제한적이며, 산업재해 역시 신청이 까다롭고 영세사업장, 플랫폼 노동자 등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이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상혁 기자

김혜영(산재 피해자 고 이한빛PD 어머니) 씨는 “특별법을 제정해도 대상과 지원이 제한적이며, 산업재해 역시 신청이 까다롭고 영세사업장, 플랫폼 노동자 등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이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안전시스템이 미비한 현실에서 국민 누구도 참사 피해자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며, “이러한 아픔을 다른 국민들이 겪지 않도록 피해자 권리보장과 지원체계 제도화가 필요하다”며 피해자 권리선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참사 피해자들의 요구가 반영된 ‘생명안전기본법’은 2020년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대표발의 했으나 3년 넘게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이에 참사 피해자들과 ‘생명안전 시민넷’은 피해자 권리선언을 토대로 5월 10일 ‘시민단체 제정운동본부’를 발족해 참사 피해자들의 권리 법률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자리에는 녹색병원이 참사 피해자들의 건강검진 및 의료비를 지원하는 협약식이 함께 진행됐다. 녹색병원은 연 30명씩 참사 피해자들에게 MRI, 대장내시경, 골밀도검사 등이 포함된 종합건강검진을 무료로 실시하기로 했다. 또한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질병은 자부담 금액의 100%, MRI, 예방 접종 등은 50%,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질병에 30%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피해자 권리선언>

1. 가족의 생사와 이동경로, 사망에 이르게 된 경위와 원인, 향후 수습과정 등 관련 정보를 정확하게 알 권리

2. 독립적이고 객관적인 진상규명을 통해 책임자들이 법적, 사회적 책임을 지고 국가나 기업이 재발방지대책을 수립하도록 요구할 권리

3. 신속하게 구조받을 권리, 유가족이 시신과 유류품을 조속하고 인도적으로 인계받을 권리

4. 피해자들끼리 만나고 위로하며 연대할 권리

5. 언론과 정부, 온라인, 타인 등의 2차 가해와 인권침해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6. 다친 마음과 몸을 충분히 치료받고 필요한 법률적 지원을 받는 등 일상 회복을 위한 지원을 받을 권리

7. 사고의 원인조사와 재발방지대책 수립, 피해지원책 마련 등 모든 과정에 참여하고 의견을 존중받을 권리

8. 희생자를 추모하고 기억할 권리

9. 합당한 배상 보상을 받을 권리, 그로 인해 혐오나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을 권리

10. 무너진 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상호 연대하고 국가와 공동체 회복 노력과 과정에 참여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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