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더하는 말풍선]
오은·이세릴 작가 웹툰 ‘나쁜 쪽으로’
여성 취약계층 노린 사이비 종교
사회 안전망 부재 실태 다뤄
구원은 ‘더 나은 종교’ 아닌
친구·동료시민 간 사랑·연대에

*이 글은 작품의 줄거리와 결말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이비 종교들의 만행을 폭로하는 MBC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이 넷플릭스에 공개된 후, SNS는 사이비 종교 이야기로 가득하다. 교주들의 범죄, 연관된 기업·연예인 고발, 탈교자들의 생존 기록이 이어졌고, 특히 사이비 종교를 피하는 방법에 많은 관심이 쏟아졌다.

이러한 사회적 논의가 단순히 사이비 종교 구별법, 사이비 종교 피하기 등 일차원적 해결책으로 그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인 비평과 사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가 필요해 보인다. 첫째는, 사이비 종교의 기승은 우리 사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했음을 증명하는 지표 중 하나임을 아는 것이다.¹ 둘째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경각심이 사람과 사람 간의 이유 없는 친절과 선의를 의심하게 만드는 상황에서 연대와 우정의 자리를 고민하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의 출몰에 사회 시스템의 책임은 하나도 없을까? 반대로, 사이비 종교에 대응할 우리의 태도는 냉정함과 의심뿐일까?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 ⓒ네이버웹툰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 ⓒ네이버웹툰

2022년 완결작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는 두 문제를 모두 다룬다. 작품은 개인을 덮쳐오는 불행의 이유를 추적해 가는 빠른 호흡의 서스펜스와 다양한 여성 인물들 사이의 복잡하고도 애틋한 감정선을 동원해 사이비 종교와 여성의 문제를 놀라운 몰입도의 서사로 풀어낸다. 사이비 종교에 현혹되는 사람들의 사회적 불안정성을 조명함으로써 이들을 보호해야 할 사회 시스템의 부재를 고발하는 동시에, 구원은 ‘더 나은 종교’가 아니라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연대하는 동료 시민들, 친구들에게서 온다고 제안한다.

‘나쁜 쪽으로’의 주인공 정선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꿈보다는 하루 끼니를 고민해야 하는 고등학생이다. 정선의 모친은 안수기도를 받아야 한다며 사이비 종교 교주에게 거금을 바치고, 딸들에게도 맹목적인 신앙을 강요한다. 이야기는 그런 정선에게 교주의 딸인 윤마리가 접근하면서 시작한다. 둘은 서로의 비밀과 잘못을 덮어주며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사랑에 빠진다. 정선은 윤마리를 따라 사이비 교회에 나가며, ‘세례’도 받기로 한다. 그런데 바로 그즈음 윤마리가 정선의 비밀을 온 학교에 퍼뜨려 강제 전학을 가게 만들면서 1부가 마무리된다.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의 한 장면. ⓒ네이버웹툰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의 한 장면.

1부 이후, 정선은 사랑했던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트라우마를 직면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개인적 미션과, 이해할 수 없던 불행들의 배후에 서 있는 거대한 사이비 종교의 실체에 다가서는 공적 미션을 함께 수행하게 된다. 주목할 것은, 그가 스스로를 구하는 과정과 사이비 종교 희생자들을 구하는 과정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작품은 절박한 사람들의 고통을 이용해 그들을 착취하려는 사이비 종교 단체에 대한 정당한 분노를 일으키는 한편, 사람들을 벼랑 끝으로 내몬 사회의 책임에 대해서도 고민하도록 유도한다. 폭력에서 벗어나고자 집을 나왔지만 갈 곳이 없는 여성 청소년들, 사이비 종교 단체 신도들의 몸에 난 멍과 상흔들은 사회 취약계층 여성들의 불안정성을 고발한다. 복지와 안전의 사각지대에 서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종료청소년, 장애인 여성들이 작품 안에서도 밖에서도 사이비 종교 단체의 주요 타깃이 되고 있다.

이들의 입을 통해 끊임없이 반복되는 절규, 즉 세상에 이유 없는 호의는 없으며, 모든 믿음은 반드시 배신당할 거라는 생각은 어쩌면 유용한 조언이다. 소수자를 위한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더딘 한국 사회에서 생존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이 조언은 축적된 경험에 근거한 진실이기도 하다.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의 한 장면.

그러나 정선이 생존하고, 사이비 신도들을 구출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친절과 호의를 의심하는 이성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그에게는 전화 한 통에 달려오는 친구들과, 함께 싸우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비슷하게 약하고 비슷하게 겁쟁이지만, 비슷하게 선량한 탓에 타인을 외면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서로에게 귀 기울일 때. 그때 우리는 종교 없이도 사랑과 연대가 가능함을 발견한다.

역설적이게도, 정선이 그토록 두려워했던 대가 없는 친절과 신뢰가 그와 그의 친구들을 사이비 종교로부터 분리한다. 선의를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와는 다른 쪽으로 걷기 위해, 우리는 계속해서 타인을 존중하고, 궁금해하고, 사랑해야 한다. 상호 신뢰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도전이 필요하겠지만,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어찌 됐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단순한 진리가 가장 절실한 순간이다 (‘나쁜 쪽으로’ 후기 중).

누가 사이비인지 구별해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사이비 종교가 드러내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성찰이다.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는 사이비 종교의 기만에 맞서는 것은 결국 타인의 고통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다짐, 함께 어려움을 타개해보겠다는 용기다. 지금의 사이비 종교 문제를 고민하는 데 있어 ‘나쁜 쪽으로’가 유용하고 또 즐거운 문학적 계기가 되어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의 한 장면.
네이버 웹툰 ‘나쁜 쪽으로’(글 오은·그림 이세릴)의 한 장면.

참고문헌

¹ 신형철. ‘신천지로 떠난 청년들.’ 신형철의 뉘앙스, 경향신문, 2020.03.24.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003042034005#c2b

오은, 이세릴. ‘나쁜 쪽으로.’ 네이버웹툰, 2022.
https://comic.naver.com/webtoon/list?titleId=739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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