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타클래라=AP/뉴시스] 13일(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타클래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에서 나온 밥이라는 남성이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SVB 고객이었다는 이 남성은 파산한 SVB에 돈을 찾으러 왔다고 밝혔다.
[산타클라라=AP/뉴시스] 13일(현지시각) 미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실리콘밸리은행(SVB) 본점에서 나온 밥이라는 남성이 기자들과 얘기하고 있다. 지난 25년간 SVB 고객이었다는 이 남성은 파산한 SVB에 돈을 찾으러 왔다고 밝혔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한데 이어 시그니처은행이 파산했고 스위스에서 두 번째로 큰 은행인 크레딧 스위스가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

은행들의 파산과 위기는 각각 원인이 다르지만 세계 금융시장에 신뢰성 위기를 키우고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불러온 리먼 브러더스 사태와 비교되면서 해당 금융당국이 파장을 줄이기 위해 발빠른 대처에 나섰다.

실리콘밸리은행 폐쇄…역대 두번째 규모 은행 파산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큰 상업은행인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지난 10일(현지시각) 파산했다.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산타클라라의 예금보험국립은행'이라는 새 법인을 설립, SVB의 예금 등을 모두 이 은행으로 옮겼다.

이번 파산은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무너진 워싱턴뮤추얼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은행 파산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설명했다.

모회사인 SVB파이낸셜그룹은 이날 오전 22억5000만 달러(약 3조 원)의 주식 매각을 취소한 뒤 구매자를 물색 중이었으나, 규제 당국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몇 시간 만에 은행을 폐쇄하고 FDIC의 통제 아래 뒀다고 WSJ는 보도했다.

FDIC에 따르면 SVB는 지난해 말일 기준 약 2090억 달러(274조원)의 자산을 보유한,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다.

SVB는 지난 8일 보유 중이던 국채에 대한 대규모 손실을 발표한 뒤 급속도로 무너졌다. 예금이 줄어 보유 중이던 채권을 팔아 약 20억 달러의 손실을 냈다고 발표했다. 이 은행은 그동안 초과 현금 대다수를 미국 국채 등에 투자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모회사 SVB파이낸셜그룹의 주가는 80% 이상 하락했고, 결국 대량예금인출 사태에 직면했다.

SVB 파장, 시그니처·크레딧 스위스까지 

SVB 파산 이후 하루만에 폐쇄된 시스니처은행 ⓒ[뉴욕=AP뉴시스]
SVB 파산 이후 하루만에 폐쇄된 시스니처은행. ⓒ[뉴욕=AP뉴시스]

미국 실리콘밸리은행이 붕괴한 지 이틀 만에 폐쇄된 뉴욕 시그니처은행(ignature Bank)에서 하루 10조원이 넘는 대량 인출 사태(뱅크런)이 벌어져 폐쇄됐다.

13일(현지시각) CNBC 방송에 따르면 지난 10일 하루에만 100억 달러(약 13조원) 이상의 예금이 빠져나갔다. 

은행 이사인 바니 프랭크 전 하원의원은 이는 “순전히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에서 전염된 것”이라면서 SVB발 공포 심리가 퍼진 탓에 고객들이 예금을 인출해 체이스 은행이나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대형 은행으로 옮겼다고 프랭크 전 의원은 전했다.

CNBC에 따르면 지난 2001년 뉴욕주에서 설립된 시그니처은행은 부동산, 법조계와 주로 거래하며 대형 시중은행과 달리 ‘기업 친화적’으로 운영됐다.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업에 종사하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집안과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사업 자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요일인 12일 저녁 뉴욕주 금융서비스부가 시그니처은행을 폐쇄하고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를 파산관재인으로 임명하면서 이 은행은 SVB의 전철을 그대로 밟게 됐다. 은행 측이 지난해 말 공시한 자료에 따르면 시그니처은행은 모두 40개 지점을 운영하며 총자산 1103억6000만 달러, 총예금 885억9000만 달러를 각각 보유 중이었다.

시그니처은행 파산은 미국에서 이달들어 세번째 은행폐쇄다.

미국 가상화폐 거래 은행인 실버게이트은행이 SVB 폐쇄 전인 지난 8일 결국 청산하기로 했다. 실버게이트 은행의 모회사 실버게이트 캐피털은 은행 부문의 영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크레딧 스위스(Credit Suisse)의 최대 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국영은행(SNB)이 15일(현지시각) CS에 추가 투자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SNB는 지난해 지분 9.9%를 매입해 단숨에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CS의 주가는 SNB의 발표 이후 폭락했다. 스위스중앙은행의 유동성 지원으로 일단 큰 위기는 넘겼다.

WSJ에 따르면 16일(현지시각) 취리히에서 거래된 CS의 주가는 19% 상승 마감했다. 그러나 전날 30% 가까이 떨어졌던 하락분을 되찾지는 못했다. 

◆ 왜 위기가 왔나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크레딧 스위스 ⓒ[쮜리히=AP/뉴시스]
유동성 위기를 맞고 있는 크레딧 스위스 ⓒ[쮜리히=AP/뉴시스]

실리콘밸리은행의 파산은 미 금융당국의 고금리 정책에 경영진의 관리 잘못 때문이라고 미 언론들은 보도했다. 

SVB는 실리콘밸리의 IT 창업기업들로부터 보유현금의 대부분을 미국 국채에 투자했다.

미국 재무부 채권은 이른바 ‘안전 자산’의 대명사로 통하기 때문에 은행들이 전통적으로 선호해 온 투자처라는 점에서는 SVB의 선택에 큰 허점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영향으로 역대급으로 상승한 물가를 위해 고강도 인상에 나서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기준 금리가 잇따라 인상되면서 미 국채 금리도 크게 오르는 결과를 낳을 수 밖에 없었고 국채 금리 상승은 국채 투자자들에게도 큰 손실을 안겨줬다. 국채 금리가 오르면 그만큼 국채 가격도 떨어질 수 밖에 없다.

SVB에 자금을 위탁했던 실리콘밸리의 상당수 창업기업들이 지난 2020년 찾아온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침체되자 보릿고개를 넘기 위한 차원에서 SVB에서 자금을 대거 인출하기 시작했다. 현금 부족 사태에 직면한 SVB는 막대한 손해를 무릅쓰고 미 국채를 팔았다. 

결국 채권 가격이 폭락한 뒤에 내다 팔면서 손실만 18억 달러( 2조3000억 원)에 달했다. SVB가  자금 확보를 위해 22억5000만 달러를 신주 발행에 나서자 위기를 감지한 예금자들의 대규모 인출사태가 벌어졌다. 은행은 더 많은 증권을 헐값에 내다 팔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시그니처뱅크는 가상화폐에 특화된 은행이다. 2020년 초 전체 예금 가운데 27%가 가상화폐 투자 고객이 예치한 돈이었다

지난해 11월 가상화폐 거래소 FTX가 전격 파산하면서 불똥이 시그니처뱅크로 튀었다. 앞서 파산한 가상화폐 전문 은행인 실버게이트뱅크와 비슷한 상황에 몰렸다. 

당시 은행은 FTX 사태로 80억~100억달러 규모 예금이 인출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후 10만달러 미만 가상화폐 거래는 지원을 중단했다. 뱅크런 염려에 가상화폐와 거리를 두려는 전략이었으나 위기에서 벗어나지는 못했다.

크레딧 스위스의 위기는 신뢰의 추락 때문이다.

크레딧 스위스는 2007~2008년 불가리아 마약 밀매상의 돈세탁을 방조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지난해 6월 법원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스위스의 대형은행이 돈세탁 혐의로 유죄 선고를 받은 건 이 사건이 처음이다.

2020년에는 은행 측이 사설탐정을 고용해 은행 임원을 미행, 감시한 사실이 드러나 당시 최고경영자(CEO) 티잔 티엄이 사임했다..

2021년에는 크레딧 스위스가 2012~2016년 모잠비크 정부가 후원하는 참치 관련 산업에 대출하는 과정에서 은행의 일부 직원이 최소 1억3700만달러(약 1800억원)의 리베이트를 받은 사실이 들통났다.

각종 추문에 휩싸인 크레디트스위스의 재무 상태와 신뢰도에 결정타를 가한 것은 2021년 영국 그린실캐피털과 한국계 투자자 빌 황의 아케고스 캐피털에 투자해 막대한 손실을 본 사건이었다. 미국계 헤지펀드인 아케고스와 관련한 투자 손실이 약 44억 스위스프랑(약 6조원)에 이르렀다.

CS는 사우디국립은행의 투자를 유치하고 2025년 말까지 직원 9000명을 감원하는 내용의 자구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우량 고객들이 예금 90조원가량을 인출하는 등 주요 고객이 이 은행을 떠났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CS의 수신 잔액은 지난해 3분기 3713억스위스프랑(약 524조원)에서 4분기 2332억스위스프랑(약 329조원)으로 37.2% 급감했다.

◆ 제 2의 리먼 브러더스 사태 될까

[뉴욕=AP/뉴시스]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월가 표지판이 걸려 있다.
[뉴욕=AP/뉴시스]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월가 표지판이 걸려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는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으로 시작됐다.

리먼 브러더스는 1850년 설립된 세계적인 투자은행(IB, Investment Bank)으로 미국 내에서 골드만삭스, 모건 스탠리, 메릴린치사 다음으로 큰 규모였다. 리먼 브러더스는 2008년 9월 15일 미국 연방법원에 파산을 신청했다. 

리먼 브러더스 자산 6390억 달러, 부채는 6130억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파산이었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의 붕괴가 원인이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집을 살 때 융자를 받는 모기지 제도의 하나다. 주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주택담보대출상품으로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저금리 상황과 주택가격 상승이 맞물리면서 가입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미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금리가 인상되자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사용하는 저소득층들은 이자 부담에 시달렸다.

2007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연체율이 16%를 넘어섰으며 많은 금융회사가 자금난에 빠졌다. 2007년 4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회사인 뉴센트리파이넨셜이 파산신청을 냈으며 같은 해 8월에는 아메리칸홈모기지인베스트먼스가 파산 절차를 진행했다. 

리먼 브러더스 역시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을 통해 큰 수익을 올리고 있었으나 부실 채권이 급증하면서 결국 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파산을 신청했다.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은 다른 기업과 중소은행의 파산과 손실로 이어졌으며 전 세계로 확산돼 금융위기를 불러왔다.

은행 부문 위기가 잇따르면서 CS 사태가 전체 금융시장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  당시 세계 금융위기를 예측했던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블룸버그TV에 "CS 위기는 유럽과 글로벌 시장에 '리먼 모먼트(리먼브러더스의 순간)'가 될 것"이라며 "CS가 보유한 증권과 자산의 미실현 손실이 얼마인지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몇가지 면에서 리먼 브러더스와 SVB는 다르다. 때문에 SVB 파산으로 2008년의 위기가 재현될 것이라는 우려는 과도하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SVB는 지난해 말일 기준 약 2090억달러(약 276조5000억원)의 자산에 총예금을 1750억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에서 16번째로 큰 은행이다. 일단 2008년의 리먼 브러더스보다 규모가 훨씬 적다.

미 은행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파산은행이었던 워싱턴 뮤추얼(Washington Mutual)은 2008년 파산 당시 자산 3070억 달러, 예금 188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었다. 

2007년 말까지 WaMu는 직원 4만3000명과 15개 주에 지점 2200개의 지사를 갖고 있었다. 

리먼 브러더스의 몰락은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라는 위험 자산의 부실이 도화선이었고, SVB는 미국 장기국채라는 우량자산에 투자했으나 급격한 금리인상의 충격을 버티지 못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이유가 다르다.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은행들이 당국의 제재 하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체질을 개선했다는 점도 시스템 리스크 확산을 막을 것이라는 진단이다. 

뉴욕타임스(NYT)는 “금융위기 이후 국내 최대 은행들에 대해 시행된 규제에는 엄격한 자본 요건이 포함돼 있다”며 “위기 순간에 대비한 일정 수준 이상의 적립금 보유와 함께 사업이 얼마나 다양화돼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도 있다”고 전했다.

미국 정부는 위기 확산을 막기 위해 신속하게 나섰다. 미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이날 비보호 예금을 포함한 SVB 고객 예금 전체를 보증하겠다고 밝혔다. 또 유동성이 부족한 금융기관에는 자금을 대출하기로 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도 SVB 파산 사태와 관련, "미국의 은행 시스템은 '안전'하다"고 강조했다.

스위스 중앙은행(SNB)은 최대 500억 스위스프랑( 70조3000억원)의 유동성을 크레딧스위스에 지원하기로 했다. SC는 유동성을 강화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다.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는 워싱턴포스트(WP)에 “SVB의 붕괴가 시스템 전반의 문제로 이어질지를 논의하는 것은 아직 이르다”면서 “2008년에 비해 경제가 현저히 강한 것은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SVB 파산 이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직 확실하게 알 수는 없다며, “불안한 순간이지만 정부가 (위기를) 관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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