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피해자 주소 노출 장면 화제
실제론 가해자 등본 열람제한 가능
상담확인서·임시조치결정서 등만 내도 돼

제도 빈틈도...경찰·공무원 등 부주의로 노출
손해배상 소송했다 되려 개인정보 노출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인 엄마 정미희(박지아)가 18년 만에 딸 문동은(송혜교)의 집을 찾아내 괴롭히는 장면. ⓒ넷플릭스 화면 캡처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가정폭력 가해자인 엄마 정미희(박지아)가 18년 만에 딸 문동은(송혜교)의 집을 찾아내 괴롭히는 장면. ⓒ넷플릭스 화면 캡처

“(동사무소 가서) 주소 다 떼보고 왔어. 너 여기 있는 거 다 아니까 얼른 문 열어!”

가정폭력 피해자가 아무리 도망쳐도 주민등록등본을 떼어 보면 주거지가 드러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에 등장한 끔찍한 장면이다. 폭력엄마 정미희(박지아)는 그렇게 18년 만에 딸 문동은(송혜교)의 집을 찾아낸다.

결론부터 말하면 현실과는 다르다. 가정폭력·성폭력 피해자는 가해자가 직계혈족 또는 세대주의 직계혈족의 배우자 자격을 이용해 피해자의 주민등록표를 보거나 등·초본을 떼어 보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

가까운 주민센터를 찾아가 신청하면 된다.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사실확인서나 성폭력피해자 보호시설 입소확인서, 또는 성폭력피해자통합지원센터(해바라기센터)의 상담사실확인서나 가정폭력피해자에 대한 임시조치결정서 등만 내면 된다. 절차가 까다로웠는데, 지난해 정부가 피해자들의 호소를 받아들여 절차를 간소화했다. (관련기사▶ 정부, 1년 만에 가정폭력 피해자 주소 노출 방지 신청 간소화 https://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7487)

또 가정폭력 가해자가 피해자의 주민등록번호를 알고 있어서, 피해자의 생명, 신체, 재산 등에 피해를 입거나 입을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주민등록번호를 바꿀 수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한국여성의전화가 공유한 가정폭력 가해자로부터 개인정보를 보호하는 방법(https://blog.naver.com/hotline1983/223043909986)에서 확인할 수 있다.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에서 발급한 ‘피해상담 사실확인서’만으로도 가해자의 주민등록 열람 제한을 신청할 수 있게 한 개정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행정안전부
가정폭력·성폭력 상담소에서 발급한 ‘피해상담 사실확인서’만으로도 가해자의 주민등록 열람 제한을 신청할 수 있게 한 개정 주민등록법 시행규칙.  ⓒ행정안전부

경찰·공무원 등 부주의로 개인정보 노출
손해배상 소송했다 되려 주소 노출
법 개정 시도 잇따라도 국회 문턱 못 넘어 
비밀엄수 의무 확대 적용해야 

물론 제도의 빈틈은 존재한다. 신고·상담·수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의 개인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최나눔 한국여성의전화 여성인권상담소 정책팀장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피해 회복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는데 비밀엄수가 잘 되질 않는다”고 지적했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주거지원, 기초생활보장 등을 신청할 수 있는데, 공무원·관계기관 담당자가 신중하게 판단하지 않고 가족이라는 이유로 가해자에게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노출하는 식이다. 2020년엔 폭력 남편이 코로나19 긴급재난지원금을 신청하면서 아내 몫이 빠졌다면서 주민센터에 민원을 넣자 담당 공무원이 피해자의 소재지를 알려주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했다. 

최 팀장은 “가정폭력에 대한 인식 부족, 피해자에 대한 불신이 맞물려 발생하는 문제”라며 “가정폭력 인식 개선과 지침 숙지가 필요하다. 온라인 등으로 이수하는 가정폭력 예방교육 효과도 의문이다. 실질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사소송 시 개인정보 노출도 현장에서 오랫동안 지적해온 문제다. 피해자들이 가해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면, 피해자의 성명, 주소, 직장 정보 등이 담긴 소송 서류가 가해자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보복이 두려워서 민사소송은 엄두도 못 내는 피해자도 많다.

일부 피해자들은 궁여지책으로 온라인 전자소송 사이트에서 ‘사전포괄동의’ 신청을 받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1년간 소장 등 법원 서류를 전자송달로 받겠다고 신청하면, 소장이 직접 송달되지 않아 상대방에게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노출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피해자가 이러한 절차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고 매번 연장 신청을 해야 하는 등 번거로움이 있다. 

관련 입법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김영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손해배상청구소송 시 피해자의 인적사항이 상대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내용의 민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 2월 대표발의했다. 앞서 2020년에도 박주민 민주당 의원,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비슷한 민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으나 아직 국회에 머물러 있다.

최 팀장은 가정폭력방지법 제16조 ‘비밀엄수의 의무’ 조항을 개정해 경찰, 공무원, 의료 관계자 등 직무상 가정폭력 피해자를 대하는 이들까지 포괄해야 한다고도 봤다. 현행법은 긴급전화센터, 상담소 또는 보호시설의 장이나 이를 보조하는 자 또는 그 직에 있었던 자만 비밀엄수 의무를 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등 여성폭력 관련 신고와 상담 안내도. ⓒ여성신문
가정폭력, 성폭력, 스토킹 등 여성폭력 관련 신고와 상담 안내도. ⓒ여성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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