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창선의 문화이야기]

2011년 11월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회고전 ‘모두(ALL)’가 열렸다. 128점의 작품 모두가 건물 안에 뻥 뚤린 원형 홀의 로툰다에 주렁주렁 매달렸다. 밧줄에 들려 매달린 작품들은 마치 교수대에 오른 것 같은 모습들이었다. 구겐하임 수석 큐레이터였던 낸시 스펙터는 “전체적으로 설치물은 대량 처형처럼 보이며 그 자체로 중요하고 비극적인 예술 작품을 구성한다”고 설명했다. 큐레이터 프란체스코 보나미는 “최후 심판의 날 천국으로 올라 가는 영혼들” 같다고도 했다. 구겐하임 전시회는 화제를 낳는데는 어김없이 성공했지만, 실패했다는 비평들도 있었다. 공중에서 내려온 많은 밧줄들 때문에 작품을 제대로 볼 수도 집중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카텔란은 이렇게 의미를 부여했다. “편집하지 않는 민주적인 방식이다.” 중요한 작품의 권위는 박탈당했고 주목받지 못하던 작품들은 승격되었다는 얘기였다.

구겐하임 전시회에서 카텔란은 전격적으로 은퇴를 선언해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언제부터인가 자신이 자기 작품들을 복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제 떠나야겠다는 설명이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카텔란은 쇼에 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농담처럼 받아들이기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5년 뒤에 카텔란은 파리에서 화려한 복귀 전시회를 가졌다. 그래서 우리도 서울 리움에서 카텔란 전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많은 비평가들과 언론은 카텔란의 작품들에 나타나는 웃음의 코드를 부각시켜 그를 악동, 장난꾸러기, 익살꾼, 문제아 같은 용어로 부른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가볍지도 않고 웃음을 주기 위한 것도 아니다. 카텔란의 작품들에는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슬픔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리움미술관 입구와 로비에 설치된 노숙자를 거쳐 주 전시장에 입장하면 천장에 매달려 축 늘어진 말의 사체가 강렬하게 시선을 모은다. 이탈리아어로 20세기를 뜻하는 ‘노베첸토’(1997)다. 역사와 신화 속에서 말은 빠르고 용맹스러운 위용을 가진 동물이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들은 힘찬 말들이 이끄는 마차를 타고 이동했다. 『오딧세이아』에서 아킬레우스가 헥토르와 결투를 할 때 빠르고 죽지 않는 말 크산토스와 발리우스를 탔다. 그랬던 말이 공중에 매달려 처연하게 죽어서 고개를 떨구고 있는 모습은 한 시대의 좌절과 절망을 의미한다.

리움미술관의 주 전시장에 입장하면 천장에 매달려 축 늘어진 말의 사체가 강렬하게 시선을 모은다. 이탈리아어로 20세기를 뜻하는 ‘노베첸토’(1997)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리움미술관의 주 전시장에 입장하면 천장에 매달려 축 늘어진 말의 사체가 강렬하게 시선을 모은다. 이탈리아어로 20세기를 뜻하는 ‘노베첸토’(1997)다.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빨간 카펫 위에서 운석에 맞아 쓰러진 교황은 십자가 지팡이를 악착같이 꽉 쥐고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 쓰고 있다. (‘아홉 번째 시간’, 1999) 원래 ‘아홉 번째 시간’은 예수가 숨을 거둔 시간을 말한다. 관람자의 시선에 따라 의미는 다의적이다.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서 벌받고 있는 교황처럼 탐욕을 부리다가 심판을 받은 모습일 수도 있다. 운석에 맞았으면서도 어떻게든 버티는 교황의 모습은 생에 대한 강인한 의지일 수도 있다.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해줄 것으로 믿었던 교황이 전시장 한복판에 쓰러져 있는 장면은 어쨌든 슬프다. 종교에 대한 불신이 강했던 사람이라면 권위가 해체된 광경을 보면서 속 시원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아홉 번째 시간, 1999, 실리콘 고무, 머리카락, 옷, 십자고상, 액세서리, 돌, 카펫,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미술비평가 세라 손튼의 설명처럼 ‘죽음’은 카텔란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다. 전시장 곳곳에서 죽음의 형상들이 이어진다. 시신 9구가 흰색 천에 덮여 누워있는 모습의 조각 작품 ‘모두’(2007)가 주는 느낌은 숨이 막힐 정도로 강렬하다. 역사에는 그런 집단적 죽음들이 너무도 많았다. 카텔란은 이 작품 전시를 결정할 때 우크라이나 전쟁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이태원 참사가 있기 전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 같은 비극적이고 집단적인 죽음을 겪은 우리는 바로 이곳에서의 죽음을 담은 것으로 느끼게 된다. 카텔란이 무엇을 생각했는가 보다 내가 무엇을 떠올리는가가 중요하다. 카텔란은 관람객에게 “절대 아티스트의 얘기를 듣지 말라, 당신이 본 것을 토대로 스스로 해석하라”고 주문한다. “작품이 끝나면 작가는 죽어야 한다, 화자(話者)는 자기 작품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장미의 이름 작가 노트』)고 했던 움베르트 에코의 말과 같은 의미이다. 카텔란의 작품 제목에 ‘무제’가 많은 이유일 것이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마우리치오 카텔란, 모두, 2007, 카라라 대리석, 가변크기 ⓒCourtesy of Maurizio Cattelan/사진 김경태

히틀러가 무릎끓고 있는 ‘그’(2001)는 관람객으로 하여금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뒤에서 보면 영락없는 소년인데 앞으로 가서 누구인가 얼굴을 보니 홀로코스트의 주범 히틀러다. 끝내 반성하지 않고 에바 브라운과 동반자살한 히틀러가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니 후련하다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가 올려다 보는 시선이 어쩐지 불편하다. 용서를 비는 것인지 조롱하는 것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관람객은 무릎 끓은 히틀러 앞에서 잠시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실제로 바르샤바에서 이 작품이 전시되었을 때 희생자들을 조롱한다며 유대인 단체들이 항의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냥 히틀러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웃고만 지나갈 작품은 아니다.

마우리치오 카텔란, 그,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옷, 신발, 101 × 41 × 53 cm ⓒ이세아 기자
마우리치오 카텔란, 그, 2001, 플래티넘 실리콘, 유리섬유, 머리카락, 옷, 신발, 101 × 41 × 53 cm ⓒ이세아 기자

장례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 허공을 바라보는 두 명의 카텔란(‘우리’ 2010)은 섬뜩한 느낌을 준다. 검은 장례복을 입었는데 눈은 뜨고 있고, 한 명의 카텔란은 관람객을 쳐다보고 있다. 죽음을 떠올리는 작품들에서도 이렇게 카텔란 자신이 등장한다.

카텔란은 어린 시절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이것저것 고생스러운 일들을 많이 했다. 꽃집이나 세탁소에서 배달도 하고 장례식장에서 잡일도 했다. 전시장 구석에 있는 ‘찰리는 서핑은 안 하잖나’(1997)도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이 담겨있는 작품이다. 양손에 연필이 못처럼 박혀서 책상을 떠날 수 없는 학생이 등을 돌리고 앉아있다. 멀리서 보면 연필이 박혀있는 손이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 책상 위를 살펴봐야만 처참한 상황이 이해된다. 학교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카텔란 자신의 모습이라는 해석도 있고, 카텔란이 학창 시절 동급생을 괴롭힌 자기 모습을 담은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마침 드라마 ‘더 글로리’, 정순신 전 국가수사본부장 아들의 학교폭력 전력 논란이 있은 시점인지라 그렇게 책상에 앉아있는 찰리(카텔란)의 모습은 오랫동안 뇌리에 남는다. 카텔란은 자기 삶의 경험들을 종종 작품에 담는다. 그런 작품들이 눈길을 사로잡는 이유는 개인만이 아닌 우리의 공감을 낳기 때문이다.

카텔란은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현실이 내가 만든 예술보다 더 자극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만들어낸 가짜 노숙자 말고, 길을 걸으며 현실의 노숙자를 만나보셔야 한다.” (W코리아, 2023. 2. 26.)

우리는 리움미술관에 설치된 카텔란의 작품들을 보면서 놀랐지만,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이미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일지 모른다. 우리가 애써 시선을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을 뿐이다. 카텔란은 “나는 예술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동아일보> 2023. 2. 8.)고 말한다. 그러니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장면들을 기어코 마주치게 했다고 불만스러워 한다면, 당신은 카텔란에게 진 것이다.

리움미술관의 카렐란전 ‘우리(WE)’는 7월 16일까지 계속되는데 예매 경쟁이 아직도 뜨겁다. 12년전 구겐하임 전시회 ‘모두(ALL)’의 입장료는 성인 기준 18달러였다. 이번 리움미술관 전시회는 무료다. 이렇게 좋은 기회인데 예매 사이트로 들어가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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